
▲ 중국 베이징에서 7월16일에 열린 국제 공급망 박람회에 관람객이 중국석유화공그룹(시노펙)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글로벌 석유화학 업계에서 중국발 공급과잉이 해소될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에 힘이 실리는 만큼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 구조조정 노력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일본 석유화학 업체들이 최근 대규모 합병 계획을 밝힌 배경은 중국발 공급과잉이 계속되고 있는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일본 3대 석유화학 회사인 미쓰이화학과 이데미쓰코산, 스미토모화학은 플라스틱 소재 사업부를 내년 4월까지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산 석유화학 제품의 공급과잉이 장기화되며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지자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 절감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기업은 여전히 공장 증설에 속도를 내며 업황 악화에도 사업 확장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시노펙 상하이석유화학이 최근 213억 위안(약 4조1400억 원)을 투자해 연간 120만 톤의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착공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궈샤오쥔 시노펙 상하이석유화학 회장은 8월 말 콘퍼런스콜에서 과잉 생산 문제와 관련한 투자자 질문에 “에틸렌 소비 성장률은 상당히 높다”고 답변했다. 생산 증설에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에틸렌을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 등 제품은 중국 수출 품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올해 7월까지 중국산 플라스틱과 유기화학 제품 수출량은 금액 기준으로 각각 830억 달러(약 115조 원), 490억 달러(약 68조 원)로 집계됐다.
물론 중국 석유화학 기업들도 공급과잉에 따른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
시노펙 상하이페트로켐의 상반기 순손실 규모는 4억6212만 위안(약 9천억 원)에 이른다.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 계열사인 페트로차이나의 화학 부문 상반기 영업이익도 13억9천만 위안(약 2700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결국 중국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9월 중 석유화학 기업의 과잉 생산을 방지하는 대책을 마련해 발표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 울산 울주군 온산 국가산업단지에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생산 설비 건설 현장에서 7월3일 한 노동자가 공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당국의 이러한 시도에도 시노펙 상하이석유화학과 같이 대규모 증설 투자를 강행하는 기업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구조조정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 석유화학사 영성석화의 리 신화 국제거래 책임자는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석유화학 제품 정제 능력을 1억 톤 줄이기 위해서는 최장 5년이 걸린다”고 전망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상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제시됐다.
한국 석유화학 업계도 중국발 공급과잉에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
과거 한국 석유화학 산업은 에틸렌을 중국에 수출하는 등 방식으로 성장해 왔는데 중국이 자급체제를 구축한 뒤에는 수요 부진과 공급과잉을 피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석유화학 업체들은 사업재편 자율 협약식에서 에틸렌 연간 생산량을 전체의 약 25%에 해달하는 370만 톤 가량 줄이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한국 정부가 연말까지 구조조정 계획을 제시한 석유화학 기업에 세제혜택 및 연구개발 지원 등을 제공하는 업계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율 협약이라는 한계가 있는 데다 업체들 사이에서 생산량 감축을 두고 의견을 조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석유화학 업황 개선에 희망으로 꼽혔던 중국의 생산 축소와 관련한 기대도 낮아진 만큼 한국 업체들이 지속성장 기반을 확보하려면 더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과 일본 석유화학 업체들이 모두 계속되는 중국발 공급과잉 문제에 대처해야 하는 과제가 무겁게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닛케이아시아는 “중국의 석유화학 제품 생산 능력이 증가할수록 일본 업체들은 어려운 시험대에 놓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