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1. 대학 시절 방학 때마다 주로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 속칭 '노가다'로 일했다. 힘들었지만 두어 달 방학 기간에 고학생이 등록금을 벌기엔 이만한 일이 없었다. 

특히 '공구리', 즉 콘크리트 타설이나 방수 작업은 일이 더 힘들어 일당이 셌다. 이런저런 노가다를 하며 별별 일도 겪었다. 
 
[데스크리포트 8월] 이재명 대통령, 건설사 사망사고 근절 해법 제대로 짚었다

▲ 건설사 공사 현장에선 사망사고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학 2학년 때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당시 일당 7천 원을 받기로 하고 아파트 배수관 공사 조수로 뛰었다. 밧줄이 연결된 갈고리에 쇠로 된 주철관을 달아 위층에서 잡고 있으면 이를 용접공이 이어 붙이는 작업이었다.

3, 4층 정도까지야 버틸 만한 데 7, 8층 넘어가면 밧줄을 쥔 팔이 덜덜 떨렸다. 요즘 쓰는 PVC 관과 달리 주철관은 정말 무거웠다. 

하지만 밧줄을 자칫 놓쳤다간 배수관이 떨어져 밑에서 작업하던 용접공이나 다른 인부가 크게 다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초인적 정신력으로만 버텨야 했다. 이렇다 할 다른 안전장치는 전혀 없었다. 

30년도 더 예전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선 그렇게나 무식하게 일이 진행됐다. 그런데 뒤에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됐다. 

#2. 한동안 고용주였던 '십장(공사 감독자)' 아저씨에게 공사 현장에서 직접 일당을 정산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시내에 있던 건설사로 일당 받으러 직접 나오라는 공지를 받게 됐다. 

뒤에 들으니 십장 아저씨는 하청의 밑 단계에 있던 분이었다. 그 위로 하청 구조가 몇 겹인지 몰라도 쌓여 있었는데 십장 아저씨에게 하청을 준 업체 대표가 부도를 내고 잠적해 버렸다. 

이에 그 위 도급을 준 건설사에서 현장 잡부들에게 직접 일당을 정산한 것이었다. 그런데 내 일당은 십장 아저씨에게 들었던 7천 원이 아니라 1만 원이었다. 십장이 중간에서 떼먹은 것이었다. 

그렇게 일당을 받고 나오니 십장 아저씨가 서 있었고 으슥한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겁을 줬다. 결국 하루 3천 원어치에 일한 일수만큼의 돈을 뺐겼다. 

물정 모르는 순진한 대학생으로선 극악스러운 십장 아저씨에게 대적하기가 힘들었다. 그 뒤 건설업 담당 데스크로 일하면서 건설사 분들에게 예전 일을 말했다. 요즘엔 투명해져서 일당 갈취하는 일은 생길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거듭된 재하청 구조와 이에 따른 안전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은 듯 하다.

#3. 이재명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지난 7월29일 산업안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국무회의를 생중계로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던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사망한 일을 강하게 질타했다.
 
[데스크리포트 8월] 이재명 대통령, 건설사 사망사고 근절 해법 제대로 짚었다

▲ 이재명 대통령이 생중계로 공개된 7월29일 국무회의에서 포스코이앤씨를 직접 거론하며 산재 사망사고 대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 4월에도 경기 광명시 신안산선 5-2공구 지하터널 내부에서 균열이 발생하면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 사망자를 냈는데 3달 만에 또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 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라며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사람이 죽어 나가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건설업계에 깔린 게 아니냐는 얘기다.

삼성물산, 현대엔지니어링, HDC현대산업개발, 현대건설 등 올해 들어 사망자가 발생한 건설사에선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간담이 서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대통령은 사망사고를 낸 건설사에게 처벌뿐 아니라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방법을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안전 문제에서 비용을 아끼는 것 이상으로 금융 제재를 비롯한 경제적 불이익을 줘야 사람이 안 죽도록 신경 쓰게 된다는 취지다. 한국적 현실에 맞는 실질적 접근법으로 여겨진다.

그러면서 건설사의 불법 하도급 문제를 안전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네다섯 번씩 하청을 주다 보면 원도급 금액의 절반으로 공사가 이뤄지고 결국 안전시설은 빠지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은 건설사의 산재 사망이 줄어들지 않는 주요한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낸 것으로 보인다.

#4.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건설사의 재하도급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기본적으로 발주자, 원도급사, 하도급사의 구조만 허용된다. 전문 공사인력이 필요한 경우를 포함해 극히 예외적 경우에만 재하도급할 수 있다.

하지만 불법 재하도급은 건설 현장에서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국토교통부의 지난 7월 발표를 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총 1607곳의 건설현장을 조사한 결과 불법 하도급 적발 건수는 197건에 달했다. 이는 총 불법행위 적발 건수 520건의 37.9%에 해당하는 수치다.

불법하도급은 공사 단가를 후려치는데 유용하고 원청이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도 쉽다. 거듭된 하청 과정에서 손쉽게 공사 단가를 떼먹으려는 건설업계의 관행화된 구조도 불법하도급이 끊이지 않는 데 한몫한다.

이 대통령은 이런 불법하도급을 건설업계에서 끊이지 않는 산재 사망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물론 직접적 인과관계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논리적으로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 보고서를 보면 건설사에서는 지난해에만 276명이 죽어 나갔다. 다친 사람은 약 4만6천여 명에 이른다.

수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일터로 나섰다가 생명을 잃거나 다치는 일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반복됐다. 하지만 부패 사슬과 잘못된 관행 속에 이런 악순환은 근절되지 않았다.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없애려는 정부의 노력에 이런저런 저항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잘못된 고리를 단호히 끊어내야 한다. 

작게는 건설업의 미래를 위해서도, 크게는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말이다. 박창욱 건설&에너지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