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하 롯데면세점 '벼랑 끝 전술', 매출 떨어져도 수익성 개선에 '올인'

▲ 김동하 롯데면세점 대표이사는 그동안 업계에서 꺼내들기 쉽지 않았던 중국 보따리상(따이공)과의 거래 중단이라는 카드로 수익성 개선에 나서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면세점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이 올해를 수익성 개선 동력을 얻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동하 호텔롯데 면세사업부 대표이사(롯데면세점 대표)는 그동안 업계에서 꺼내들기 쉽지 않았던 중국 보따리상(따이공)과 거래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냈는데 사실상 수익성 개선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로 비춰진다.

중국 보따리상과의 거래를 끊으면 매출 순위가 3위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수익성 개선을 향한 김 대표의 부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17일 면세점업계에서는 김동하 대표가 롯데면세점 수장에 선임된 지 1달 반 만에 중국 보따리상과 거래하지 않기로 한 파격적 전략을 꺼내든 것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면세 사업을 처음 경험해 업계 상황과 특성을 모르고 너무 무리한 전략을 펼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 대표는 롯데그룹 다양한 계열사에서 전략, 정책, 조직문화 등을 다룬 인물이다. 면세전문가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생산성 향상에 기여해온 ‘혁신전문가’라는 평가를 롯데그룹 안팎에서 받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면세점에서만 30년 정도 경력을 쌓아온 롯데그룹 ‘면세전문가’인 김주남 전 대표를 2년 만에 김동하 대표로 바꾼 것만 봐도 김동하 대표에게 거는 기대를 알 수 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중국 보따리상과 거래 중단은 김 대표가 추진한 전략으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옳은 방향성이라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며 “영업손실이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보따리상과 거래를 할수록 오히려 손해를 보는 구조라면 개선하는 것이 맞다고 봤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최근 기업형 중국 보따리상들의 발주를 담당하는 특판 조직도 해체했다. 김 대표가 중국 보따리상과의 거래 중단에 대해 얼마나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롯데면세점의 행보를 놓고 김 대표가 혁신전문가라는 평가에 걸맞게 내린 결정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김 대표는 수익성 개선을 위해 매출 상당 부분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김동하 롯데면세점 '벼랑 끝 전술', 매출 떨어져도 수익성 개선에 '올인'

▲ 롯데면세점은 2023년 매출 3조796억 원을 내며 국내 면세점 가운데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중국 보따리상 매출 50%를 제외하면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에 이어 매출 순위가 3위까지 떨어진다. 롯데면세점 싱가포르 창이공항점 전경. <롯데면세점>


면세업계에서 중국 보따리상과 거래를 중단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 보따리상은 롯데면세점 전체 매출 가운데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롯데면세점은 2023년 매출 3조796억 원을 내며 국내 면세점 가운데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중국 보따리상 매출 50%를 제외하면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에 이어 매출 순위가 3위까지 떨어진다.

호텔롯데 실적에서도 롯데면세점 매출은 중요하다. 롯데면세점은 한 때 호텔롯데 매출 가운데 80% 정도를 차지했다. 최근 비중이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호텔롯데 매출의 65% 안팎이 롯데면세점에서 나온다.

호텔롯데 상장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중장기 과제로 꼽힌다는 점을 생각하면 호텔롯데 실적은 더욱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신 회장은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를 상장해 일본계 주주들의 지분을 희석하고 장기적으로는 롯데지주에 편입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면세점 매출이 절반이나 줄어든다는 것은 호텔롯데와 롯데면세점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일 수 밖에 없다.

매출이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면 구매 협상력(바잉파워)에 있어서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면세 사업 경쟁력 약화로까지 이어져 현재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아직 결과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롯데면세점 결정을 놓고 업계에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라며 “중국 보따리상이 가져가는 수수료를 계속 낮춰가면서 조정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거래를 중단할 필요까지 있느냐는 얘기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가 중국 보따리상과 거래를 끊기로 한 것은 현재 상황대로라면 롯데면세점의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다고 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롯데면세점은 코로나19 이후 중국 보따리상과 거래를 대폭 확대했다. 많게는 비중이 80~90%까지 늘어난 때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중국 보따리상과 거래는 면세업계 수익성을 갉아먹었다. 면세점은 통상 상품 가격에 최소 20%의 마진을 붙여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면세업계는 중국 보따리상에게 상품 가격의 40~50%를 수수료 명목으로 환급했다. 사실상 팔 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고착화한 것이다.

롯데면세점은 2019년까지만 해도 영업이익을 냈지만 2020년 영업손실 220억 원으로 적자 전환한 뒤 2021년 영업손실 288억 원, 2022년 영업손실 1395억 원 등으로 적자 규모를 키웠다. 2022년 영업손실 규모가 크게 확대한 주요 원인은 중국 보따리상에 지출한 수수료의 확대다.

롯데면세점은 2023년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했지만 2023년 3분기부터 2024년 3분기까지 5개 분기 연속으로 다시 적자를 보고 있다.
 
김동하 롯데면세점 '벼랑 끝 전술', 매출 떨어져도 수익성 개선에 '올인'

▲ 김동하 롯데면세점 대표이사. 

유통업계에서 1위 사업자들이 꺼내드는 전략은 하위 사업자들도 따라가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중국 보따리상과의 거래 중단은 매출 감소라는 부담도 상당하기 때문에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도 선뜻 따라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히려 롯데면세점과의 거래가 끊긴 중국 보따리상들이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 등과 거래하면 롯데면세점과 경쟁사의 매출 차이가 더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중국 보따리상과 거래 중단으로 빠지는 매출을 어떻게 메꿀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정해진 것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당장에는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겠지만 최대한 매출을 방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우선은 개별관광객(FIT)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강화해 공략하는 쪽으로 집중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