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기업 인텔이 주력사업인 PC반도체 의존을 낮추고 사물인터넷과 서버 등 신사업에 집중하는 체질개선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인텔이 선택과 집중으로 특정 사업분야에 역량을 집중하는 성장전략을 새로 짤 가능성이 높아 반도체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촉각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3D낸드와 반도체 위탁생산 등 삼성전자의 경쟁분야에서 인텔이 공세를 강화하면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 인텔 신사업 놓고 선택의 기로
블룸버그는 20일 “인텔의 신사업 전망이 점점 어두워지며 실적전망치와 주가가 모두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며 “이전에 약속했던 성장전략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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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CEO. |
인텔은 3분기에 매출 158억 달러, 영업이익 45억 달러를 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이 이전분기와 비교해 239%, 지난해 3분기보다 6% 늘어났지만 인텔 주가는 하루만에 6% 급락했다.
글로벌 PC수요 회복에 따른 일시적 효과로 실적이 개선됐지만 서버와 사물인터넷 반도체 등 인텔이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신사업의 성장속도가 예상보다 늦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인텔이 매년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약속했던 서버분야에서 몇분기째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성장을 보이며 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텔은 서버용 프로세서에서 99%에 가까운 점유율로 시장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최근 엔비디아와 AMD 등 그래픽반도체기업들이 서버시장에 진출을 확대하며 독주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서버분야에 투자를 점점 줄이며 업황 자체가 악화하는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율주행 플랫폼과 사물인터넷 반도체 등 인텔의 신사업도 실제 실적개선에 기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가 자율주행기술에서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인텔의 사업전망도 불투명하다.
인텔이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으로 신사업에 중심을 둔 체질개선을 하고 있지만 실적으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으로 특정 사업부문에 더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경제전문지 벤쳐비트는 “인텔이 퀄컴과 미디어텍 등 여러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 차세대 반도체 경쟁에서 얼마나 우위를 확보할지 불투명하다”며 “향후 3~5년 동안 투자를 어디에 집중하는지가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인텔은 10나노 미세공정을 활용한 반도체 위탁생산과 메모리반도체인 3D낸드 시장에 내년부터 새로 진입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인텔은 이런 다양한 사업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은 채로 무리하게 진출했다가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전문지 시킹알파는 “인텔은 이미 투자부담을 느껴 내년으로 예정됐던 반도체 위탁생산 진출시기를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며 “삼성전자와 TSMC 등 경쟁이 예상됐던 업체들이 한시름을 놓게 된 셈”이라고 분석했다.
◆ 삼성전자에 영향줄까
인텔이 어느 신사업에 투자를 집중할지를 놓고 글로벌 반도체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인텔이 3D낸드와 반도체 위탁생산 등 삼성전자와 정면으로 경쟁하게 되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할 경우 삼성전자가 타격을 받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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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겸 시스템LSI 사업부 사장. |
삼성전자는 3D낸드 기술력에서 글로벌 경쟁업체에 가장 앞서있는데 독주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내년부터 기술과 생산투자를 더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영우 SK증권 연구원은 인텔이 막대한 자금력을 확보한 중국업체와 협력하는 등 3D낸드 성장전략을 본격화하면 삼성전자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라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파악했다.
삼성전자가 최근 공개한 D램과 낸드플래시를 모두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Z-SSD’의 경우도 유사한 인텔 ‘3D크로스포인트’와 경쟁을 앞두고 있다. 인텔이 크로스포인트 시장확대에 속도를 낼 경우 삼성전자는 시장진입에 고전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 통합반도체 ‘아틱’도 인텔의 ‘큐리’와 쓰임새가 같은 제품이다. 인텔이 사물인터넷사업 성장을 가속화할 경우 삼성전자가 사업확대에 걸림돌을 만나게 된다.
인텔이 여러 신사업에 동시진출하며 낸 성과가 부진해 전략을 선회할 가능성이 높은만큼 삼성전자가 이런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춰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인텔은 최근 6개월 동안 이어진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23억 달러의 누적비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비용부담이 큰 만큼 이른 시일 안에 집중할 신사업분야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인텔은 그동안 같은 반도체사업분야에서 맞설 일이 없었지만 이런 상황이 곧 바뀌게 될 것”이라며 “인텔의 변화에 촉각을 기울여 효과적인 대응을 고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