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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국제 플라스틱협약의 5차 회의 주최국으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플라스틱 저감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지만 정부는 플라스틱 저감의 방향성을 놓고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정부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의 국제적 위상뿐 아니라 국내 산업구조에서 플라스틱이 차지하는 적잖은 비중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플라스틱 생산제한 등 적극적 저감정책 기조를 분명히 하지 않고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 아니냐는 국제 사회 일각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 플라스틱 소비와 관련한 정책에서는 선진국의 적극적 플라스틱 규제정책에 비해 온건한 정책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9일 환경단체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환경규제보다 경제산업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의 플라스틱 저감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환경단체들은 정부의 플라스틱 규제 완화 기조를 근거로 들었다.
정부는 당초 지난 4월30일부터 ‘택배 과대포장 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2년 동안 단속을 유예키로 했다. 택배 과대포장 규제는 제품을 소비자에 수송하기 위한 일회용 포장에서 포장 공간 비율이 50% 이하로, 포장 횟수는 1차례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택배 포장에는 비닐 포장재, 비닐 테이프, 각종 완충재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 규제가 시행되면 플라스틱 감소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계도기간 차원에서 2년 동안 단속을 유예하기로 한 탓에 규제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환경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각종 예외 규정도 많아졌다. 일단 연 매출 500억 원 미만의 업체는 택배 과대포장 규제 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또 보냉재는 포장공간 비율을 산출할 때 제품 일부로 간주해 제외키로 했다. 식품과 보냉재를 밀착시키기 위한 비닐 포장은 포장 횟수에 산입하지 않고, 포장재를 회수한 뒤 재사용한 경우나 소비자가 요청한 선물 포장에도 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특히 일회용품 관련 규제 완화가 뚜렷하다.
당초 2022년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시행키로 했지만, 현 정부는 이를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겼다. 현재 제주와 세종에서만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회용 컵 보증급제의 전국 확대와 관련해 “제주와 세종의 성과를 분석하고, 전국으로 확대했을 때 비용과 부담을 따져보고 있다”고 했다.
한 장관은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는데, 구체적 개선안은 조금 더 기다려 달라”며 당장은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확대 시행할 계획이 없음을 시사했다.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비닐봉투 등의 일회용품 사용 금지도 무기한 연장되며 사실상 백지화됐다.
정부는 또 플라스틱 생산과 관련된 정책에서도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환경단체들은 주장한다.
한국은 올해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5차 회의의 주최국으로서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세계가 직면한 플라스틱 과다 배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국제사회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위상에 걸맞게 생산 단계에서부터 플라스틱을 줄여야 한다는 선진국 그룹 의견에 동참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선진국 그룹은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을 적극 제한해 생산 단계서부터 플라스틱을 줄여야 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 4위권 플라스틱 강국이라는 점에서 선진국의 플라스틱 저감 기조에 섣불리 동참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한국은 플라스틱 원료, 소재부터 고부가 플라스틱과 플라스틱 응용 제품 등 다방면에 걸쳐 플라스틱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더욱이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장기간 부진한 상황인 만큼, 정부로서도 강력한 플라스틱 규제 시행으로 산업을 더 위축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국제적 플라스틱 사용규제를 결국 피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는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사후처리를 강화하고, 생분해 플라스틱이나 바이오 플라스틱을 통해 기존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방식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플라스틱 생산과 사후처리 과정에서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는 한편 새로운 사업모델을 발굴해 신사업으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환경단체들은 이 같은 대응책이 올바른 해결방안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아프리카 가나 청소년들이 아크라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하천을 바라보고 있다. <그린피스 홈페이지 갈무리>
생분해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보다 이른 시간 내 분해될 수는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오히려 생분해 플라스틱이 아주 미세한 입자로 줄어들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바이오 플라스틱 역시 원료만 바뀔 뿐 일회용 플라스틱이 지닌 부정적 영향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게다가 바이오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작물을 재배하며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생태적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환경단체들 주장이다.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의 메흐디 레만 콘텐츠편집자는 “플라스틱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현재 시급한 것은 플라스틱 생산을 극적으로 줄이고 재사용, 리필 시스템을 활성화해 플라스틱 오염을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규제협약 체결”이라고 주장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