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용 기자 srkim@businesspost.co.kr2024-02-07 11: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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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개인이 소비를 촉진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는 주력 산업 대부분이 위기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산업이 불황 여파에 아직도 놓여 있다. 그나마 반도체는 조금씩 회복할 것이라고 하지만, 조선·철강·석유화학·항공·무선통신기기·디스플레이·가전 등 대부분 주력 산업은 정체를 넘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엔지니어들이 3나노 미세공정으로 제작한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그 이유는 중국이 무섭게 발전해 우리 주력 산업을 밀쳐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발표한 ‘글로벌 핵심기술 경쟁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AI 알고리즘, 자연어 처리, 백신, 유전공학, 소형위성, 전기 배터리, 3D 프린터, 사이버보안, 고성능 양자 컴퓨터 등 64개 핵심 미래 기술 중 중국이 AI, 우주·항공, 배터리 등 53개 기술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미국이 자연어 처리, 유전공학, 양자컴퓨터 등 11개 분야에서 1위에 올랐다. 한국은 단 하나의 기술에서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현재 우리나라가 1위를 하고 있다는 반도체, 배터리 등도 10년 뒤엔 중국에 크게 밀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발간한 ‘6대 국가첨단전략산업 수출시장 점유율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미래차 △바이오 △로봇 등 6대 산업의 수출시장 점유율이 2018년 8.4%에서 2022년 6.5%로 감소했다.
우리 조선업이 아직은 고부가가치 LNG선박, 친환경 선박 등을 수주하며 버티고는 있지만, 중국 조선사들이 무섭게 기술력을 높여 한국 조선사들을 따라잡고 있다.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산업인 철강은 중국의 대대적 투자로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있고, 세계 각국의 탄소규제에 따라 석탄을 사용하지 않는 청정 수소환원 공정으로 전환하는데 수백 조원을 투입해야 하는 코너에 몰린 상황이다.
▲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세계 최초 메탄올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 '아네 머스크호'의 모습.< HD현대 >
석유화학 산업도 중국의 물량 공세와 기술 수준 상승으로 계속해 밀리고 있다.
항공산업은 치열한 세계 시장 경쟁 속에 국적사가 하나로 줄어드는 상황에 처해 있다.
스마트폰 등 무선통신기기는 미국 애플에 치여 기를 펴치 못하고 있고, 무서운 기술력으로 쫓아오는 중국 제조사들에게 언젠간 자리를 내어줘야 할 판이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선 이미 LCD는 중국이 세계 1위이고, 아직 제대로 피지 못한 올레드(OLED)도 중국 기술이 턱 밑까지 쫓아왔다.
TV, 냉장고, 세탁기 등 이른바 백색 가전도 언젠가는 중국이 세계 시장을 지배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 LG전자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스거스 CES 2024에서 선보인 투명 올레드(OLED) TV.
자동차는 또 어떤가. 대표적 친환경차인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의 기세는 실로 놀라운 상황이다. 중국 비야디(BYD)로 대표되는 중국 전기차 기술력은 함부로 싸구려라 치부하지 못할 정도로 상위 수준으로 올라왔다.
복잡 다단한 내연 엔진이 없어도 되는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이 세계 시장을 지배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이같은 한국 주력산업의 대위기 속에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산업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언제까지 반도체로만 먹고 살 순 없는 노릇이다.
바이오는 신약 원천기술을 가진 외국 제약사에게 주문을 받아 위탁 생산해주는 수준으로, 아직 주력산업이라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미국 구글이나 애플처럼 그들만의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가진 것도 아니고, 엄청난 인공지능(AI) 기술을 지닌 것도 아니다. 무엇하나 '아 이 산업이 앞으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겠구나' 하는 게 없다.
이런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10년 뒤면 우리나라는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다. 국가 살림은 쓸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은 줄어드는 재정고갈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각종 기금 고갈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상황이다.
산업 붕괴, 노동인구 감소, 소비 감소, 고용 감소 등 우리 사회는 가까운 미래 저성장이 아니라, 마이너스 성장이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다.
제발 이 나라를 이끄는 정치 지도자들을 비롯해 정부 공무원들은 '언제나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가 최우선'이라는 역사 속 교훈을 잊지 말길 바란다. 둘로 나뉘어 패싸움, 진영싸움에만 몰두하는 와중에 우리 경제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 땅의 후손이 풍요롭고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새로운 먹거리 산업과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다시 한 번 깨우치기 바란다. 김승용 산업&IT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