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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
요즘 정치권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는 뭐니뭐니 해도 ‘반기문’이란 이름 석자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여야 정치인들과 해외에서 계속 만나고 내년 1월 중순 귀국한다는 소식만으로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둔 정치권 안팎에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부산주공이란 회사는 20일 주가가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반 총장의 사촌동생이 대표를 맡고 있는 자산운용사가 투자한 기업이란 점이 알려져 반기문 테마주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제이에스티나란 회사도 최대주주가 과거 반 총장의 요청에 화답해 아프리카 성금 등을 쾌척한 사실만으로 주가가 급등했다.
이 쯤되면 반기문 신드롬이 대단하긴 한가보다. 주식시장에서 정치인 테마주의 급등락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반기문 테마주란 회사들도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반기문 대망론은 이제 대세론으로 옮겨갈 태세다. 여야를 막론하고 갑론을박과 아전인수가 뜨겁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최근까지 여론조사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리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연인으로든, 대선 예비주자로서든 개인적으로 지지 혹은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선은 장기 레이스다. 반 총장이 현재의 여세를 몰아 롱런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고건 전 총리나 박찬종 이인제 전 의원 등 과거 ‘반짝’ 급부상했던 주자들과 비교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작금의 반기문 현상은 유감스러운 차원을 넘어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인기의 진원도, 반기문이란 브랜드를 원하는 이들의 실체적 저의도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반기문 현상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에 선출됐을 때도 비슷했다. 출판계에서 아동용 혹은 청소년용 반기문 전기 등 관련 서적이 쏟아져나왔다. 글로벌리더를 꿈꾸는 중고생들치고 반 총장을 롤모델로 꼽지 않은 이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유엔사무총장=세계 대통령’이란 인식이 자리 잡은 탓이다. 세계적 지도자란 타이틀만으로 공과는 따져묻는 법도 드물다. 마치 소설가 한강씨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맨부커상을 수상하자마자 ‘채식주의자’가 날개 돋친 듯 팔리는 현상과 다를 게 없다. 세계가 인정하는 순간 우상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충북 음성군에 반기문평화랜드란 곳이 있다. 반 총장의 고향 생가에 해당 지자체 차원에서 조성된 곳인데 최근 반 총장 동상이 철거됐다. 살아있는 인물의 동상을 세우는 일이 외국인 기자 눈에 신기하게 비쳤는지 이곳을 다녀간 외국인 기자는 “북한에 온 것 같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반기문 우상화의 현주소다.
흥미로운 것은 대선을 앞두고 개인 우상화 논란에 철거하긴 했으되 음성군은 여전히 이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이 끝나고 나면 다시 세울 속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흔히 대권은 하늘이 내린다고 한다. 이는 바꿔 말하면 시대적 요청에 걸맞는 지도자여야 한다는 얘기일 듯하다. 국제사회로 눈을 돌려보면 각국 지도자들의 부침에서도 이를 확인하기 어렵지 않다.
19일 방송된 JTBC 비상정상회담이란 예능프로그램에 필리핀 청년이 1일 패널로 등장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공포정치가 이날 찬반토론 주제로 올랐다.
그는 마약과 전쟁을 선포하며 취임 이후 석 달 만에 약 3천 명의 용의자를 사살했다. 이 가운데는 일반인도 섞여 있었던 모양이니 국제사회는 물론 필리핀 내부에서도 인권 논란이 불거진 것은 물론이다.
두테르테 데스노트는 온 나라를 벌벌 떨게 만들지만 정작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지율은 94%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와 마약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가 공포정치에 대한 공포보다 더 크다는 반증이다. 필리핀의 경우 인권보다 안전이 더 시급한 시대적 요청인 셈이다.
대한민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시대가 바라는 지도자는 어떠해야 할까.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끌어올리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면 반 총장의 경쟁력은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인기에 영합해 특정 정당의 집권연장 의도는 물론 특정 지역, 특정 기업의 욕망을 채워주는 반기문 현상은 곤란하다. 물론 반 총장이 대선예비주자로서 결단의 순간이 오면 바로 시험대에 오를 테고 그 때도 반기문 현상이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