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Who] 당내 입지 좁은 주호영,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대응 버겁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4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태원참사 국정조사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대통령실과 친윤계는 국정조사를 반대하고 있지만 야당 단독으로 국정조사안이 통과된다면 현실적으로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 있어 주 원내대표로서는 고심할 수밖에 없다.

주 원내대표는 14일 당내 3선 이상 중진들과의 회의를 마친 뒤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만나 이태원참사 국정조사를 논의했다.

주 원내대표 주재로 진행된 중진의원 간담회에서는 국정조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 강하게 개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국정조사 불참 의견이) 만장일치”라며 “이거(국정조사)는 그야말로 정치 공세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경찰 수사를 지켜보는 게 가장 진상 규명을 빨리 할 수 있는 방법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 원내대표도 이날 원내대표 회동에서 당 중진들의 견해와 궤를 같이 하며 국정조사에 선을 그었다.

그는 “오늘 이곳에 오기 전 3선 이상 중진 17분이 모여서 논의했지만 지금은 국정조사를 할 때가 아니라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였다”며 “개인적으로도 강제성이 없는 국정조사 방법으로 정쟁만 유발만하는 것이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로서는 친윤계의 강경한 국정조사 반대 목소리를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 원내대표는 최근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김은혜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퇴장시킨 일을 두고 일부 친윤계 의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대표적 친윤계 의원인 장제원 의원은 주 원내대표의 퇴장결정에 “부글부글 하는 의원들 있다”고 말했다.

또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을 수행했던 이용 의원은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주 원내대표를 향해 “왜 이들을 퇴장시켰나”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선인 이용 의원의 '과감한' 행동에 대해 대통령실의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시선도 나온다.

주 원내대표로서는 친윤계 의원들로부터 공격을 받은 마당에 국정조사 수용 카드를 배제하고 협상을 풀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강경전략만을 내세우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국민의힘이 국정조사에 불참하면 대통령실,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등이 여당 의원들의 도움 없이 야권의 공세에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폼나는 사퇴'라는 표현을 사용해 여론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태원 참사 관련 정부 대응에 비판 여론이 우세한 점도 주 원내대표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국갤럽이 1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정부수습이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으며 ‘적절하다’는 응답은 20%에 그쳤다. 같은 날 미디어토마토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태원참사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56.4%로 반대(35.0%)보다 높았다.

금태섭 전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보수 측에서 세월호참사의 기억 때문에 방어적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국민들 마음에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않고 있다”며 “국민의힘에서도 전향적·선제적으로 국정조사를 받으면서 정쟁으로 흐르지 않도록 뭔가를 보여줘야지 지금처럼 방어적으로 나오는 것은 잘못 대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주 원내대표 개인으로서도 과거 강경한 태도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전례가 있다.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 협상에서 강경한 자세를 고수하다 상임위원장 자리 모두를 민주당에 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주 원내대표는 2021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로서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물러서지 않으면서 모든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이 맡은 채로 국회 원 구성 협상이 마무리됐다. 당시 민주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맡게 해 국회운영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여론전을 펼친다는 전략이었지만 실질적 소득은 없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국민의힘을 향해 이태원참사 국정조사 수용을 거듭 촉구하며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은 14일부터 닷새 동안 광역시도당별로 이태원참사 국정조사 및 특검추진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 발대식을 개최하며 장외 여론전에 나섰다. 

이에 앞서 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이 제출한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 국정조사 요구서’가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야권은 국민의힘이 국정조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오는 24일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요구서를 채택하고 야당 의원들로만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발동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표 회동에서 “(국민의힘이) 거대한 민심과 반대되는 입장을 계속한다면 국회의장께서는 국회에 여야가 함께 만들었던 국정조사법에 규정된 대로 절차를 이행해주십사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국정조사에 반대하는 당내 강경 여론을 대표하면서도 예산안 처리 등에선 야권의 협조를 구해야 해 주 원내대표로서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표 회동에서도 민주당을 향해 거듭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주 원내대표는 “예산이 제때 통과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특히 지금은 퍼펙트스톰(심각한 세계 경제의 위기를 일컫는 말)을 얘기할 정도로 경제상황이 어렵다”면서 “민주당이 국정운영을 해본 정당이니까 협력해줄 것이라고 믿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