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 설계업체 ARM이 모회사인 일본 소프트뱅크의 심각한 자금난에 이어 연구개발 인력을 비롯한 대규모 임직원 이탈에 따른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ARM과 삼성전자의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인력 손실 문제가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소프트뱅크 자금난에 ARM 인력 이탈 ‘이중고’, 이재용 손정의 협력에 변수

▲ 소프트뱅크에 인수된 ARM 임직원 다수가 최근 1년 사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ARM의 반도체 설계기술 안내.


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뒤 ARM에서 상당수의 인력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파악된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영국 기업인 ARM을 인수하면서 당시 1770명 가량이던 영국인 임직원 수를 5년 안에 두 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ARM 임직원 수는 6950명, 이 가운데 영국인은 3500명가량으로 집계됐다. 소프트뱅크가 고용 확대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약 1년 동안 ARM의 전체 임직원 수는 18%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뒤 고용된 영국 직원들이 대거 회사를 떠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ARM 경영진이 사업 방향을 바꾸고 임직원들도 회사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면서 대규모 인력 이동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ARM 임직원들이 불확실한 상황에 놓인 것은 소프트뱅크가 지난해 말까지 미국 엔비디아에 ARM 매각을 추진했지만 전 세계 경쟁당국의 반대로 계획이 무산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손 회장은 이후 ARM을 매각하는 대신 미국 또는 영국 증시에 상장하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 증시 상황 악화로 소프트뱅크가 IT기업 전문 펀드 ‘비전펀드’를 통해 투자한 기업들의 지분가치가 급락했고 결국 소프트뱅크의 재무구조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했다.

내년 초를 목표로 추진되던 ARM 상장 계획도 증시 약세 장기화로 불투명해지면서 여러 임직원이 불확실성을 고려해 회사를 떠나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약 1년 동안 영국 직원 700명을 포함해 약 1250명이 ARM을 떠났고 내년 초 상장을 위해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계획도 검토되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이른 시일에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에 이는 ARM의 추가 인력 구조조정이나 연구개발 여력 부족에 따른 기술 경쟁력 약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ARM의 한 투자자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ARM의 인력 이탈은 미래 사업 경쟁력 측면에서 우려를 키우고 있다”며 “인력 구조가 안정되지 않으면 상장에 약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ARM은 한때 전체 임직원 가운데 기술 전문인력의 수가 525명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 가운데 373명은 영국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현재 영국 출신 기술인력이 166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미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전체 인원 수가 대폭 축소되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ARM이 인력 이탈로 사업 경쟁력에 타격을 받는 일은 삼성전자와 협력 논의에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손 회장은 1일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약 일주일 정도 출장 일정을 보내며 이재용 부회장과 ARM에 관련한 협력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소프트뱅크 자금난에 ARM 인력 이탈 ‘이중고’, 이재용 손정의 협력에 변수

▲ 마사요시 손(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성전자가 ARM 지분 인수 가능성을 타진하거나 시스템반도체 기술 측면에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손 회장이 ARM을 상장하는 대신 완전히 다른 계약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형 반도체기업에 ARM 매각이 다시 검토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ARM이 다수의 인력 이탈로 경쟁력을 되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삼성전자가 ARM 지분 인수나 협업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성과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손 회장은 ARM을 상장하며 500억 달러(약 71조 원)에 이르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ARM 지분을 일부만 인수하더라도 상당한 금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ARM 지분 인수에 들이는 비용에 비해 거두는 실익이 분명하지 않다면 무리하게 ARM과 협력을 추진할 이유는 크지 않다.

결국 ARM의 기술 인력 이탈에 따른 영향이 삼성전자와 협력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반도체업계 주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ARM은 인력 이탈에 따라 더욱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직업이 보장되기 어려우면 임직원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