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헌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연합뉴스>
이혜연 SK텔레콤 고객가치혁신실장(부사장)이 지난 18일 서울 을지로 페럼타워에서 열린 설명회에 참석해 한 말이다. SK텔레콤은 이날 '현장 중심 소통 통해 신뢰 강화 나선다'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 실장 말을 전했다.
보도자료는 'SK텔레콤이 고객의 목소리를 경영과 서비스 전반에 충실히 반영해 고객 경험 가치를 높이는 한편, 고객 신뢰 강화에 나선다'로 시작된다.
SK텔레콤은 "전국 고객 접점과 디지털 취약 계층을 찾아 상담, 교육, 휴대폰 케어 서비스 등의 활동을 연중 진행하고,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를 위해 고객가치혁신실 산하에 CX(Customer Experience) 조직을 신설했다"며 "이 조직은 고객의 요구 사항을 듣고 구체화해, 이를 상품이나 서비스에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등 '고객 중심' 변화 실행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이와 관련해 "올해 고객과의 현장 중심 소통을 대대적으로 확대해 고객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답을 모든 접점 채널과 상품·서비스에 반영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미리 밝혀두지만, SK텔레콤이 고객을 이해하고, 고객의 요구를 살피며, 고객의 경험 가치를 높이겠다고 하는 것에 딴죽을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다소 뜬금없다. SK텔레콤이 지난해 해킹 사고 후 보여준 행보와 결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이날 설명회 현장을 취재한 SK텔레콤 출입 기자들 사이에선 '고객 신뢰는 쌓는 것이지, 주입시키는 게 아닌데'라는 뒷말이 오갔다.
SK텔레콤이 고객 요구는 외면한 채 '고객 신뢰 강화' 내지 '고객 신뢰 회복'을 내거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걸 꼬집은 것이다.
우리나라 '1등 이동통신 사업자' SK텔레콤은 통신망 보안을 소홀히 하다 '사상 최악' 해킹을 당한 것으로 지난해 4월 드러났다. 2300만 전체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민관합동조사단 조사 결과, 통신망 보안이 매우 허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후 대책도 고객 신뢰를 잃었다. 제대로 준비도 없이 유심 보호 서비스를 내놓고, 유심 칩 교체를 진행해 가입자들을 오픈런 시키고 대리점 앞에 줄을 서게 했다. 2차 피해 가능성에 불안감을 느껴 이탈하는 가입자의 중도 해지 위약금을 면제하라는 요구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외면하다가, 민관합동조사단의 해킹 조사 결과 발표 뒤에야 단 열흘 동안만 위약금을 면제했다.
SK텔레콤은 가입자 신청으로 이뤄진 이용자 분쟁 조정도 잇달아 거부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당시는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이용분쟁조정위원회가 SK텔레콤 가입자들의 분쟁조정 신청에 따라 중도 해지 위약금 면제 기간을 연말까지 연장하라고 권고했으나, SK텔레콤은 거부했다.
SK텔레콤은 개인정보 유출 피해 가입자 1인당 30만 원씩 보상하라는 개인정보조정위원회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분쟁조정도 역시 거부했다. SK텔레콤은 이어 가입자 1인당 10만 원씩 보상하라는 한국소비자보호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분쟁조정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회사 측은 "고객 신뢰 회복 위한 '책임과 약속'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많이 보상했다"는 이유를 댔다.
고객 피해를 살피고 신뢰를 쌓기보다는 당장의 비용부터 따졌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SK텔레콤은 지난해 7월4일 민관합동조사단의 'SK텔레콤 침해사고 최종 조사결과' 발표 한 시간여 뒤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책임과 약속'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8월 사용분 이동통신 요금을 50% 할인하고,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 매달 데이터 50기가바이트(GB)씩 추가 제공하며, 특정 피자·빵 브랜드에 한해 T멤버십 할인율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이에 대해 "총 5천억 원 규모"라고 강조했다.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고객신뢰회복위원회 심의를 거쳤다는 점도 내세웠다.
▲ SK텔레콤이 '고객의 신뢰는 SK텔레콤이 존재하는 이유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는 점을 두고, 일각에선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5개월 동안 매달 데이터를 50기가바이트씩 추가 제공한다고 했는데, 월 6만 원대 이상의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선택해 이미 데이터를 사실상 무제한 쓰고 있는 가입자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어린이·청소년 요금제 가입자와 피처폰 사용자들도 마찬가지다.
T멤버십 할인율 확대 역시 어르신 등 멤버십 활용이 익숙치 않거나 오지 가입자에게는 그림 속 떡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가 2024년 8월 기준으로 조사한 '2024년 디지털 소비자 인사이트'를 보면, 우리나라 통신사 멤버십 프로그램 이용률은 36%에 그쳤다.
8월 사용분 요금 50% 감면과 관련해서는 월 정액요금에 따라 감면액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월 정액요금에 따라 유출된 가입자 개인정보의 가치가 다르냐'는 반문이 제기됐다.
앞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해 4월 열린 정책 포럼에서 실질적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보상을 위해, 이용자 피해 보상안에 따라 과징금을 감경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과징금은 정부 수입으로 잡혀 피해자 보상 재원으로 쓸 수 없으니 차라리 보상안을 과징금과 연계해 사업자로 하여금 충분한 보상안을 내놓게 하자는 취지였다.
SK텔레콤은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과징금 산정 시 '5천억 원 고객 보상'이란 명분으로 과징금을 감경받았다.
SK텔레콤은 1위 사업자로서 고객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는 진정성을 보였는지 스스로 자문해봐야 한다.
'고객 신뢰는 쌓는 것이지 주입하는 게 아니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재헌 SK텔레콤 사장은 3월1일(현지시각)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26'이 열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며 "그동안 SK텔레콤은 '1등 사업자'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위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AI 중심 기업 전환을 촉구하는 취지로 한 말이다.
하지만 SK텔레콤 가입자 마음 속에서 회사의 AI 중심 기업 전환은 큰 의미를 줄 수 없다. 1등 사업자 위상과 신뢰는 고객을 만족시키는 행동으로 쌓아야지, 결코 말만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