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트럼프 정부가 엔비디아와 AMD 이외 기업에도 사실상의 수출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대기업이 돈을 지불하고 유리한 정책 방향을 얻어내는 사례를 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러한 ‘수출 관세’는 법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대기업이 돈을 내고 유리한 정책을 얻어내는 선례를 만들어 미국의 정치와 경제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는 13일 “엔비디아와 AMD를 대상으로 한 방침은 다른 기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창의적이고 좋은 해법이라고 생각한다”는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의 말을 전했다.
트럼프 정부가 엔비디아 및 AMD에 인공지능 반도체 중국 판매 재개를 허가하는 대신 매출의 15%를 미국에 납부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 점을 언급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수출 관세를 적용하기 원한다”며 “정부가 민간 기업을 통제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엔비디아와 AMD는 미국 정부의 이러한 요구를 큰 반발 없이 받아들였다. 수출 허가를 받지 못한다면 실적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매출을 완전히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트럼프 정부가 다른 기업에도 수출 관세를 비롯한 금전적 압박을 강화하는 데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영향력을 국가 정책에서 민간 경제 영역까지 확대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얻어낸 금전적 이득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여러 기업들이 이미 엔비디아 또는 AMD와 비슷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을 예측하고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는 씽크탱크 CSIS의 분석을 전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조치의 실행 방식과 적법성은 상무부에서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며 향후 시행 방식은 상무부를 통해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국 빅테크를 비롯한 주요 기업을 압박해 왔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관세 정책이 주된 무기로 활용됐다.
결국 애플과 엔비디아, TSMC 등 주요 기업은 트럼프 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 위협에 대응해 미국에 최대 수천억 달러 규모의 설비 투자와 지출 계획을 발표했다.

▲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다만 트럼프 정부에서 추진하는 수출 관세는 충분한 법적 근거를 확보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시행 자체가 어려워지거나 소송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정치전문지 더힐은 “미국 헌법에 따라 수출 허가와 관련한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는 행위는 분명히 금지되어 있다”며 상황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씽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도 더힐에 “미국 대통령이 개별 기업과 직접 협상에 나서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정부가 수출 통제 기능을 수익 창출 수단으로 바꿔내는 일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던 방식”이라는 비판을 내놓았다.
미국 의회가 이와 관련해 분명히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점이 의아하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트럼프 정부의 수출 관세 부과와 관련해 소송을 제기할 만한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현재 상황이 해결되기 쉽지 않은 배경으로 분석된다.
엔비디아나 AMD가 중국에 반도체 수출 허가를 어렵게 얻어낸 만큼 직접 소송을 할 가능성은 낮다.
워싱턴포스트는 해당 기업 주주들이 트럼프 정부 정책으로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거론했다.
그러나 다수의 주주들은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로 피해를 보는 것보다 거래를 통해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낫다고 판단할 공산이 크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트럼프 정부가 개별 기업과 협상을 통해 정책에 변화를 추진하는 사례가 이어진다면 미국의 정치 및 경제 질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막대한 자금을 동원할 여력을 갖추고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미국 정부에서 유리한 정책을 얻어내기 위해 지출을 확대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컨정책자문그룹은 더힐에 “지금과 같이 정책이 사실상 판매되는 상황은 다른 기업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전례를 제공하고 있다”며 “규모와 영향력이 큰 기업은 트럼프 정부에서 사실상 원하는 정책을 쇼핑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될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