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의 뒤집어보기] 그들은 왜 "꼭 'SK 주식회사 AX'라고 표기해달라"고 고집할까, 소소한 반항?

▲ 최태원 SK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비즈니스포스트] 국내 기업 가운데 사명 표기와 관련해 기자들을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곳이 `SK 주식회사 C&C'다.

이 긴 사명을 한 자도 빼지 말고 다 써 달라고 요구한다. '너무 길다'며 '주식회사는 당연한 거니 빼도 되지 않냐?', 'C&C는 사실상 사업부문 이름인데 넣는 게 더 이상하지 않냐?', '사람들이 더 헷갈려하지 않겠냐?'고 해도 막무가내다.

길어서 제목에는 절대 그렇게 못쓴다고 하면 `SK C&C' 정도로 한 발 물러선다. SK 지주회사에 합병되기 전 이름이다.

SK그룹 시스템통합(SI) 계열사 'SK C&C'는 2015년 지주회사 'SK'에 합병됐다. 지금은 지주회사의 한 사업부문 형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 쪽은 "사장은 물론 홍보실 같은 지원 조직도 따로 있는, 사실상 별도 회사처럼 운영되고 있다"라며 `풀 네임'을 적어줄 것을 고집한다.

오는 6월부터 사명 가운데 `C&C' 부분이 `AX'로 바뀐다고 한다. AI 전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같은 뜻을 가진 이름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그들은 왜 "꼭 'SK 주식회사 AX'라고 표기해달라"고 고집할까, 소소한 반항?

▲ 4월12일 윤풍영 SK 주식회사 C&C 사장이 새로운 사명의 의미와 성장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때부터는 `SK 주식회사 AX'로 써야 한단다. 사명을 표기하는 쪽에서 보면, 글자 수가 한 자 줄어든 것 빼고는 달라지는 게 없다.

왜 그럴까.

최태원 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 목적을 빼고는 합쳐질 이유가 전혀없는 두 회사를 합친 결과다. 사업 목적과 내용 모두 전혀 다른 두 회사를 그냥 붙여놓은 것이다. 

지주회사 SK와 시스템통합(SI) 계열사 SK C&C 합병 전, SK그룹의 지배구조는 최 회장이 SK C&C를 통해 지주회사 SK를 지배하는 모습이었다. 지주회사 위에 총수의 개인회사가 위치하는 '기이한' 구조였다.

당시 최 회장의 지주회사 지분은 0.01%에 불과했고, SK C&C 지분은 40%를 넘었다. 당연히 SK C&C가 이익을 보는 내부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총수 개인회사 지원' 비판이 일며 공정거래위원회 눈치를 봐야 했다.

지주회사와 SK C&C 합병 전, `V프로젝트'라는 게 주목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SK C&C 매출과 이익을 올려 몸 값을 높이는 프로젝트로 알려지며 비판을 받았다.

꽤 긴 역사를 갖고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 SK그룹(당시는 선경그룹)은 제2 이동전화 사업권을 따기 위해 계열사들의 출자를 받아 `선경텔레콤'을 설립했다. 대한텔레콤으로 사명을 바꾸고 사업권을 땄으나, 김영삼 정권으로 바뀌면서 `사돈 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이 일자 사업권을 반납했다. 노 전 대통령은 최 회장의 장인이다.

이로써 대한텔레콤은 껍데기 회사로 전락했고, 최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주당 400원(액면가 5천원)에 대한텔레콤 지분 전량을 인수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는 민영화 형식을 빌어 KT(당시는 한국통신공사) 자회사로 있던 한국이동통신을 SK그룹에 안겼고, 대한텔레콤은 한국이동통신을 대상으로 통행세(거래 중간에 끼어 수수료를 챙기는)와 사업기회 챙기기(SK텔레콤의 신사업 기회를 넘겨받는) 등을 하며 급성장했다. 사실상 총수 개인회사였으니, SK그룹 계열사들은 이익을 빼앗기면서도 토를 달지 못했다.

이렇게 몸집(시가총액)을 불린 대한텔레콤은, SK에너지 계열 시스템통합업체 YC&C와 선경정보시스템의 합병회사 SK컴퓨터통신과 합치며 SK C&C로 탈바꿈했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 가족의 회사 지분 가치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급기야 SK C&C를 SK그룹 지주회사와 합치는 `화룡점정'을 통해, 최 회장 가족은 단돈 4억 원의 종잣돈으로 시가총액이 201조 원(3월21일 기준 글로벌이코노믹 집계)에 달하는 SK그룹의 경영권을 거머쥐는 `기적'를 완성했다.

동시에 최 회장이 개인회사를 통해 SK그룹 지주회사를 지배하는 기이한 지배구조 모습도 해소됐다. 지금은 최 회장이 SK 지주회사 지분 17.73%를, 부인 노소영이 0.01%, 최 회장 동생 기원과 재원이 각각 6.58%와 0.14%를 갖고 있다.    

대신 SK그룹 지주회사는 `사업 목적과 내용이 전혀 다른' 두 회사가 한 집에 동거하며 딴 살림을 하는 `기이한' 모습을 갖게 됐다.

일반적으로 4대그룹의 지주회사라고 하면,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아 싹을 틔우는 신수종 사업팀을 사내 벤처 형태 등으로 끼고 사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충분히 홀로 살아가도 될 정도로 성장한 회사를 끼고 동거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하여튼, 이번 회사 이름 변경으로 1만배에 육박하는 최 회장의 종잣돈 불리기에 기여해온 SK그룹 계열사 이름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았던 `SK C&C'도 사라지게 됐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