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환경청 "기후변화는 종교", 미국 기후정책 '원점 회귀' 시동

▲ 리 젤딘 미국 환경보호청장이 지난달 미국 워싱턴 D.C. 환경보호청 본부에서 열린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전 정권에서 대폭 강화된 기후변화 관련 규제를 대대적으로 철폐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관련 규제의 기반이 되는 문서를 대상으로 '과학적 타당성' 검토에 정식으로 돌입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 과정에서 기후변화를 '종교'이라 주장하는데, 자칫 미국 기후정책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리 젤딘 미국 환경보호청장이 12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통해 여러 기후변화 대응 관련 규제를 개편할 것을 예고하고 규제를 만든 바이든 정부를 비판했다고 AP통신과 CNN 등 주요 외신이 전했다. 

젤딘 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늘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규제 완화의 날로 불리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종교의 심장에 칼을 꽂고 미국의 황금기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폐지 및 개정이 예고된 규제에는 석탄발전소 온실가스 배출량 제한, 친환경차 판매 의무화, 화석연료 오염물질 배출 제한 규칙, 기업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 의무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환경보호청 조치는 기후변화 대응에도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미국 국민들의 건강을 위험에 처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우려에 더해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화학물질 배출을 통제하는 규제들이 대거 약화되기 때문이다.

실제 환경보호청은 살균제로 주로 사용되는 발암 물질인 '산화 에틸렌(에틸렌 옥사이드)'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산업 시설에 2년간 규제 준수 면제를 부여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첼 클리터스 참여과학자연대(UCS) 수석 정책 책임자는 공식성명을 통해 "환경보호청의 규제 철폐는 우리나라를 더 병들게 하고 공기, 물, 토지를 심각하게 오염시킬 것"이라며 "트럼프 정부는 환경보호청의 임무를 공중 보건 보장과 환경 보호에서 화석연료 오염자와 억만장자들의 이익을 증대하는 것으로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환경보호청은 같은 날 바이든 정부 시절 추진된 200억 달러 규모 기후 보조금 지급 프로그램을 공식 폐지하고 자금도 회수했다.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50억 달러를 지원받기로 돼있던 비영리단체 '녹색자본연합(CGC)'는 환경보호청이 보조금 지급을 거부한 것은 계약 위반이라며 환경보호청과 자금 집행을 맡은 씨티은행을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녹색자본연합은 공식성명을 통해 "씨티은행의 조치로 인해 녹색자본연합은 전기료를 낮추고 모든 미국인에 깨끗한 물과 공기를 공급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운영할 수 없게 됐다"고 강조했다.

거듭되는 규제 철폐에 국내 반발이 커지자 트럼프 정부는 미국 기후정책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강수까지 꺼내들었다.
 
트럼프 정부 환경청 "기후변화는 종교", 미국 기후정책 '원점 회귀' 시동

▲ 셸던 화이트하우스 미국 상원의원이 6일(현지시각)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현지시각) AP통신과 폴리티코 보도에 따르면 환경보호청은 이전에 트럼프 대통령에 건의했던 '위험성 판정' 보고서 철회 조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위험성 판정 보고서는 2009년 미국 정부가 시행한 조사 결과를 담고 있는 문서로 온실가스 배출이 곧 기후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젤딘 청장은 "나는 이 위험성 판정 문서가 기후변화 종교의 '성배'로 여겨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나는 미국 헌법과 이 나라의 법률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따를 것이며 여기에 예외는 없다"고 강조했다.

주요 외신들은 위험성 판정 문서가 폐기되면 미국 기후정책들이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가는 '리셋(초기화)'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젤딘 청장은 "우리는 이번 조치를 통해 미국 가정의 생활비를 낮추고 미국의 에너지 우위를 확보해 경기를 부양시킬 것"이라며 "이 규제들은 미국인 가족이 안전하고 저렴한 자동차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 모든 제품에 들어가는 생활비를 증가시켰다"고 지적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극단적인 만큼 쉽게 단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험성 판정 보고서는 이미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가 채택한 문서인 만큼 이를 폐지하려면 의회 동의와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셸던 화이트하우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공식성명을 통해 "환경보호청은 행정 절차에 규정된 모든 절차를 준수하고 그들의 행동에 의회의 이의 제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며 "지금 이 상황은 법치주의와 이에 억제되지 않으려는 부패한 화석연료 산업 간의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환경단체들도 환경보호청이 위험성 판정 문서를 폐지하려고 하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제이슨 라일랜더 미국 생물다양성센터 기후법 연구소 디렉터는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젤딘 청장의 위험성 판정 보고서 폐기 시도는 법적 절차를 모두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것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