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열린 RE+ 전시회를 찾은 방문객들이 LG에너지솔루션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 LG에너지솔루션 >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추가 관세를 예고하면서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에너지저장장치(ESS) 가격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미국 ESS 사업 확대를 꾀하며 현지 생산 거점을 늘리고 있는데 반사 이익을 거둘 가능성이 제기된다.
27일(현지시각) 에너지 전문매체 에너지스토리지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차기 정부가 예고한 대로 10% 추가 관세를 도입하면 중국 ESS 배터리에 붙는 관세가 2026년에는 38.4%까지 높아진다.
미국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서 수입되는 ESS 배터리에는 10.9% 관세율이 적용된다.
2025년 1월 트럼프 차기 정부가 출범해 10% 추가 관세를 적용하면 20.9%가 된다.
여기에 바이든 현 정부가 이미 통과시켜 시행을 앞둔 대 중국 관세 인상 정책까지 얹으면 38.4% 수치가 도출된다. 2025년부터 2026년까지 1년 사이에 관세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산 ESS 배터리가 미국 내에서 절대적인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고관세 여파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로모션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설치된 ESS 가운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점유율은 90%에 육박한다. LFP 배터리는 대부분 중국 제품이다.
자동차라는 한정된 공간에 고밀도로 장착해야 유리한 전기차 배터리와 달리 전력이나 상업시설에 대규모 용지로 설치하는 ESS는 에너지 밀도가 낮더라도 저렴한 LFP 배터리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로모션의 이올라 휴즈 분석가는 “전기차 부문과 달리 현재 ESS에서는 중국산 이외의 배터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라고 분석했다.
LFP 배터리에 강점을 갖춘 중국 기업이 이를 활용해 미국 시장을 공략했었는데 관세 인상으로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같은 K배터리 업체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 미국 애리조나주 피날 카운티에 위치한 넥스트에라에너지의 ESS 설비. 넥스트에라에너지는 올해 7월 1조 원 규모의 ESS 배터리를 삼성SDI로부터 공급받는 계약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넥스트에라에너지> |
두 기업 모두 전기차 수요 성장세가 둔화하는 ‘캐즘’에 대응해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미국에 ESS용 배터리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어 중국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주 공장에서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애리조나주에 짓는 공장이 완공되면 ESS용 파우치형 LFP 배터리를 연간 17기가와트시(GWh) 생산할 수 있다. 이 공장은 현지 수요에 맞춰 건설 일정을 조정하는 중이다.
삼성SDI 또한 올해 3분기 콘퍼런스콜을 통해 미국 내 추가적 거점 진출 방안을 ESS 등 중장기 전략을 고려해 다양한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현지 생산으로 트럼프 정부가 내세우는 고관세 기조의 영향에서 벗어나 탈 중국 물량을 끌어올 여력을 갖추고 있는 상황으로 분석된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대 중국 관세로 우리나라 배터리 기업들이 부정적 영향보다는 긍정적 영향을 더 많이 받을 것 같다고 바라봤다.
미국 ESS 배터리 시장은 높은 성장세가 예상된다.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에 따른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고 ESS가 필요한 재생에너지 공급도 늘어나고 있어서다. 재생에너지는 특성상 전력 공급이 들쑥날쑥해 안정적으로 저장하기 위한 ESS가 필수적이다.
더구나 미국은 전력망이 노후한 곳이 많아 전력공급 변동성을 보완하기 위해 ESS를 추가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
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2023년 686억 달러(약 95조7400억 원) 규모였던 미국 ESS 시장은 올해부터 연평균 15.5% 성장해 2032년 2493억 달러(약 348조 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배터리 기업이 중장기적 먹거리로 북미 ESS 사업을 점찍고 현지 생산능력을 확장하는 가운데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계기로 중국 점유율이 낮아져 반사 이익을 거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다만 미국 상업용 ESS 업체 플루언스에너지의 줄리안 네브레다 최고경영자(CEO)는 3분기 콘퍼런스콜을 통해 “관세가 더 높아지거나 적용 시점이 앞당겨져야 시장 구도가 단기적으로 변할 수 있다”라며 관세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