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국민의힘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이뤄질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대통령실 인적 쇄신, 대외활동 자제, 의혹 규명에 대한 협조 등을 강도 높게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친한계에선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하락한 현 정국을 타개할 방법은 김 여사 문제를 끊어내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친한계로 꼽히는 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는 11월2일로 예정된 더불어민주당의 ‘김건희 여사 규탄대회’를 거론하면서 “민주당이 이런 폭거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할 수 있는 것은 김건희 여사를 앞세우기 때문”이라며 “우리 당과 지지자들이 당당하게 맞설 수 있도록 김여사 논란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주길 간곡히 바란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 면담에서 김 여사와 관련된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데 성공한다면 어려운 정국을 풀어냈단 점에서 여당 대표로서 리더십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대통령실이 한 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 많다. 대통령실은 이미 인적쇄신과 관련해 ‘대통령 라인만 존재할 뿐’이란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대통령실에선 김 여사가 자신에게 불거진 각종 의혹에 관해 사과하는 방안과 영부인의 활동을 보좌·관리하는 제2부속실 설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근식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은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대통령실이 한 대표가 바라는 수준으로 (요구를) 수용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며 “이미 얘기가 나온 바 있는 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수용한다는 이야기 정도는 반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도 같은 날 KBS 전격시사에서 “대통령이 한 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면담하기 훨씬 전에 여러 가지 방법의 조치가 있었을 것”이라며 “대통령과 당대표의 면담이 성과를 냈으면 하는 바람인데 전망은 그렇게 밝지 못하다”고 말했다.
만일 이번 두 사람의 면담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다면 국민의힘 내부에서 친한계와 친윤계(친윤석열계)의 갈등이 더 깊어지는 것은 물론 김건희 특검법안 통과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친한계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한 대표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민주당이 발의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안 재표결에서 결과를 장담키 어렵다는 견해를 표출하고 있다.
특검법안의 표결은 기명 방식이라 이탈표가 나오기 어렵지만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뒤 이뤄질 재표결은 무기명 방식이라 이탈표가 나올 공산이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친한계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김건희 특검법안 이탈표 전망에 대해 “예측 불허”라며 “회동에서 한 대표가 공표한 세 가지 요구사항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상당히 많이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김종혁 최고위원도 JTBC 뉴스룸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세 번째로 발의한 김 여사 특검법안에 대해 “분명히 민주당의 김 여사 특검법은 악법”이라면서도 “만약에 이번 면담 자체가 빈손으로 끝나버리고 또 여론이 계속 악화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통과될까봐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참수리홀에서 열린 79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축사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 대선 출마가 목표인 한 대표 관점에서도 회담 성과가 미미하다면 ‘여당 내 야당’ 스탠스를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대통령은 물론 국민의힘 지지율도 하락세를 나타내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서다.
리얼미터 기준으로 한 대표 취임 직후인 7월4주차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도는 38.4%로 민주당(36.1%)를 오차범위(±3.1%포인트) 안에서 앞섰다. 그러나 그 뒤 국민의힘 지지도는 하락세를 보이며 두 당의 지지도가 역전됐고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선 민주당(44.2%)과 국민의힘(31.3%) 지지도 격차가 12.9%포인트까지 벌어졌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같은 여당 소속임에도 대통령을 견제하는 이미지를 구축해 집권에 성공한 바 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한동훈 대표는 과거 박근혜 모델을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여당 안에서 야당 색깔을 만들어 다음 정권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10·16 재보선 과정에서 김 여사를 향한 메시지의 수위를 높였고 부산 금정 재보선을 신승한 뒤 ‘김건희 라인 정리’ 등을 포함한 3대 요구안을 내놨다.
이러한 분위기를 고려할 때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이 ‘빈손’에 그친다면 한 대표의 향후 행보에 결정적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나온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회담 이후 한 대표의 행보와 관련해 “(김건희 특검법안이 거부권으로 돌아왔을 때)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내려가는 현재 권력과 함께할 것이냐 아니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미래 권력과 할 것이냐를 놓고 승부수를 걸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