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보조금 축소에 전기차 가격 중요, 현대차그룹 저가모델 필요성 커져

▲ 유럽 각국 정부가 최근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전기차 판매 경쟁에서 가격이 더욱 중요해졌다.
사진은 내년 출시가 예상되는 르노그룹 르노5이 위장막을 쓴 채 시범운행하는 모습을 담은 티저 영상. <르노그룹>

[비즈니스포스트] 유럽 각국 정부가 최근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전기차 경쟁에서 가격이 더욱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금까지 높은 상품성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대의 전기차를 유럽에서 판매해 왔다.

하지만 유럽의 경쟁업체들이 저렴한 보급형 전기차를 잇달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어 현대차그룹이 유럽 전기차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성비에 초점을 맞춘 전기차의 투입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16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유럽 주요 국가에서 지난해부터 전기차 구매 보조금 축소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유럽(유럽연합+유럽자유무역연합+영국)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가 판매되는 독일은 지난해 연말까지 4만 유로 미만 전기차에 최대 6천 유로(약 875만 원), 4만~6만 유로 전기차에 최대 5천 유로(73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올해부터 각각 4500유로(655만 원), 3천 유로(440만 원)로 지급 금액을 축소했다.

내년부터는 4만5천 유로 미만 전기차에 최대 3천 유로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기차 보조금 대상 차량과 금액이 더욱 줄어든다. 또 2025년에는 전기차 보조금이 아예 폐지될 공산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올 상반기 독일에선 유럽에서 판매된 93만8912대의 전기차 가운데 약 4분의1에 달하는 22만244대가 판매됐다.

상반기 유럽에서 독일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전기차가 판매된 영국(15만2965대)은 2011년부터 시행해 온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지난해 6월 11년 만에 폐지했다.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스웨덴도 최대 5만 크로나(약 616만 원)에 이르던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가장 앞선 전기차 시장으로 평가받는 노르웨이는 올해 들어 전기차에 대한 차량 무게 기준으로 매기는 중량세와 25% 부가가치세 면제 혜택을 종료했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 폐지는 당장 현지 소비자들에게 전기차 구매 장벽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올 상반기 전년동기 대비 유럽 전체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45%를 기록했는데 같은 기간 독일과 영국, 노르웨이, 스웨덴의 증가율은 각각 31.7%, 32.7%, 2.1%, 31.9%로 이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을 보였다.

이처럼 보조금이 줄거나 없어지면서 유럽 소비자들은 전기차를 구매할 때 고려하는 요소 가운데 가격을 더욱 중시할 가능성이 크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보조금 축소 이슈는 유럽 대부분 국가에 해당하고 이는 전기차 가격 인하 요구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상반기 유럽에서 3번째로 많은 전기차가 팔린 프랑스(13만7919대)는 탄소배출량을 기존 보조금 기준에 추가로 반영하는 내용을 뼈대로하는 전기차 보조금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개편안은 탄소발자국 점수와 재활용점수를 합산한 환경점수가 60점 이상인 차량에 한해 보조금 지급하는 방식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년 1월1일 시행하되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개편안이 시행되면 보조금 지급 대상 자동차가 줄어들게 된다.

특히 국내 완성차업체는 유럽기업과 비교해 전기차 생산 과정에서 화석연료 사용량이 많아 개편안 관련 환경 규제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유럽 자동차시장 조사업체 자토다이내믹스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유럽에서 15만7213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완성차업체 가운데 판매량 기준 4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 앞에는 1위 폭스바겐그룹(34만9147대)과 2위 테슬라(23만2018대), 3위 스텔란티스(23만383대)가 선두그룹을 형성했고 5위 르노그룹(14만3736대), 6위 BMW그룹(12만9109대) 등이 현대차그룹의 뒤를 이었다.

현대차그룹의 유럽 전기차시장 경쟁업체들은 앞다퉈 낮은 가격대의 소형 전기차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텔란티스는 10월 보급형 전기차 시트로엥 e-C3 공개를 앞두고 있다. 판매가격은 2만5천 유로(약 3650만 원) 수준으로 예상되며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생산해 내년 초 판매를 시작한다. 

르노그룹은 내년에 소형 해치백 전기차 조에를 대체할 르노5를 출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아직 가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기존 내연기관 플랫폼 부품의 70%를 공유할 수 있어 조에와 비교해 생산 비용이 30% 줄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가격 역시 3만5천 유로 수준인 조에보다 크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르노그룹은 이미 유럽에서 다치아 스프링(2만800유로)과 트윙고(2만5천 유로) 등 낮은 가격대의 경형 전기차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폭스바겐도 올 3월 2025년 출시 예정인 ID.2올의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시작가격은 2만5천 유로로 기존 브랜드 엔트리(진입) 전기차 모델인 ID.3(약 3만5천 유로)보다 1만 유로(1460만 원) 이상 싸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 보조금 축소에 전기차 가격 중요, 현대차그룹 저가모델 필요성 커져

▲ 폭스바겐 ID.2올 콘셉트카. <폭스바겐>

현대차그룹 역시 손을 완전히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아는 지난 2월 고용안정소위원회를 열고 오토랜드 광명에서 내년 소형 전기SUV CT(이하 프로젝트명)와 준중형 전기SUV SV를 생산하기로 했는데 두 차종이 기아의 전용전기차 작명 방식에 따라 EV3와 EV4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자동차업계에서는 EV3 가격이 현대차 아이오닉5보다 1천만 원 이상 저렴한 3천만 원(2만 유로)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기아는 올 하반기, 현대차는 내년에 각각 경차 레이와 캐스퍼의 전기차 모델을 출시한다. 

하지만 아직 현대차그룹은 EV3와 경형 전기차 모델 등의 유럽 출시 여부 및 일정 등과 관련해서 공식적으로 밝힌 바가 없다.

다만 데이비드 힐버트 기아 유럽권역본부 마케팅 디렉터는 6월 영국 오토카와의 인터뷰에서 B세그먼트(소형차급) SUV 시장이 "유럽에서 가장 큰 세그먼트"라며 "기아는 2027년까지 모든 주요 세그먼트를 전기차로 커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5년 출시되는 폭스바겐 ID.2올과 경쟁할 수 있는 보급형 전기차를 준비중인 점도 시사했다.

유럽 경쟁업체들이 가격을 확 낮춘 소형 전기차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현대차그룹이 현지 전기차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서는 EV3 등 보급형 전기차의 유럽 출시를 서둘러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재 현대차그룹이 유럽에서 판매하는 전기차 가운데 가장 낮은 가격표가 붙은 니로도 시작가격이 3만6천 유로 수준으로 곧 출시될 경쟁업체들의 보급형 모델보다 1만 유로(약 1460만 원) 이상 비싸다.

더욱이 앞으로 유럽에서 소형 전기차 시장은 다른 차급의 전기차와 비교해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임현진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전기차 구매 보조금 폐지 및 삭감 계획에 대응하기 위한 폭스바겐 등의 보급형 소형 전기차 모델 출시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며 "특히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자동차를 선호하는 유럽에서 소형 전기차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