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진 KCC 대표이사 회장이 12일 KCC안성공장 EMC 생산라인 준공기념행사에서 사인식을 하고 있다. < KCC >
[비즈니스포스트] 정몽진 KCC 대표이사 회장이 실리콘에 이어 고부가가치 소재사업 확대에 힘을 싣고 있다.
정 회장은 모멘티브 인수로 KCC 매출구조를 실리콘사업 중심으로 전환한 데 그치지 않고 반도체용 소재부문 투자로 인공지능, 전기차 등 첨단산업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정 회장은 12일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KCC 안성공장에서 열린 EMC(에폭시 몰딩 컴파운드) 생산라인 준공기념 행사에 직접 참석해 공장을 둘러보고 반도체용 웨이퍼 사인식 등을 진행했다.
KCC는 이날 경기도 안성공장에 반도체 봉지재인 EMC(에폭시 몰딩 컴파운드) 생산라인을 신설해 회사의 EMC 생산능력을 연간 1만 톤 규모로 확충했다고 밝혔다. EMC는 열, 수분, 외부충격 등으로부터 반도체 회로를 보호하는 밀봉소재다.
이번 EMC 생산라인 증설은 첨단소재부문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행보로 풀이된다.
KCC는 안성공장에서 전기차 구동부품, 신재생에너지분야와 같은 미래 핵심산업에 적용되는 전력반도체, 메모리, 시스템반도체용 고부가가치 EMC 제품을 주로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그룹의 핵심 먹거리로 자리 잡은 실리콘사업을 국내 전기차 등 전기전자 분야로 확대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리콘은 방수재료, 접착제의 원료다. KCC는 건축용 실리콘 접착제(실란트) 매출이 중심이었는데 모멘티브 인수 뒤 전기차, 신재생사업 등 첨단산업분야를 공략하고 있다.
정 회장은 3조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한 모멘티브 인수를 시작으로 첨단소재기업으로 전환에 그룹의 미래를 걸고 있다.
KCC는 2023년 1분기 기준 모멘티브를 통한 실리콘사업 매출 비중이 6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건자재(13%)와 도료(22%)부문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KCC는 정 회장의 아버지인 고 정상영 명예회장 시절인 1987년 이미 EMC 소재를 개발하고 1990년대에 전주에 EMC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도료사업에서 주요 원료로 사용하는 에폭시 수지가 똑같이 적용되는 만큼 기초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EMC 소재는 일본의 히타치, 스미모토, 독일의 헹켈 등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사실상 과점하고 있었던 만큼 KCC 사업규모는 미미한 수준이다. EMC 등이 포함된 소재 및 기타사업부문 매출은 5~6% 수준으로 아직 크지 않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산업 성장과 함께 KCC의 EMC 소재사업 매출 확대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EMC는 반도체 제조 패키징 공정에서 적용되는 핵심 유기소재다.
이날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북미 최대 반도체소재·장비박람회 ‘세미콘 웨스트 2023’에서는 세계 반도체산업 규모가 2030년 1조 달러(약 1300조 원)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최근 인공지능(AI) 열풍과 전기차시장 증대 등으로 첨단반도체산업에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KCC도 이런 시장의 흐름에 발맞춰 올해 5월 독일에서 열린 전력반도체 전시회 ‘PCIM 유럽 2023’에 참가해 유기소재 제품으로 EMC를 글로벌시장에 소개했다.
KCC는 무기소재 제품부문에서도 구리회로와 세라믹 사이 활성금속을 도포해 접착력을 높인 기판인 AMB 세라믹 기판을 선보였다. AMB 세라믹 기판도 고성능 전기차 산업이 확대되고 효율성이 높은 파워모듈 반도체에 관한 요구가 늘어나면서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되는 제품이다.
KCC는 보도자료를 통해 “KCC는 미래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시장에 대응가능한 유기, 무기소재 제품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첨단소재기업으로 이미지를 굳히고 세계 소재시장 공략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 정몽진 KCC 대표이사 회장이 12일 KCC안성공장에 신설한 EMC 생산라인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KCC >
정 회장이 유기·무기소재 제품 확대로 첨단소재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면 KCC 실적 성장과 안정성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리콘은 탄소가 포함된 석유화학제품과 달리 열을 받아도 타지 않아 반도체와 자동차, 의료, 항공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인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전기차 등 열 관리가 중요한 신산업분야에서 실리콘 적용이 늘어나면서 사업 전망이 밝다.
다만 실리콘은 경기변동에 따른 글로벌 수급상황과 원자재가격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측면도 있다. KCC는 2019년 모멘티브 인수 뒤 실리콘부문 매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기도 하다.
양다은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5월 KCC 신용등급 평가 보고서에서 “KCC는 건자재와 도료, 실리콘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어 전방산업이 건설, 자동차, 조선 등으로 다양하게 분산돼 수익 및 이익 창출력이 안정적이다”면서도 “연결매출 외형의 과반을 차지하는 실리콘사업 수급여건 변동, 환율 및 주요 원자재 가격 변동 등에 따라 수익성은 가변적일 전망이다”고 바라봤다.
KCC 실적에서도 이런 점이 확인된다. KCC는 국내 건설부동산 경기가 악화됐던 2022년 실리콘 수요 증가 등에 힘입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5.3%, 20.3% 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다만 올해는 유기실리콘 업황이 나빠지면서 상반기 증권사들의 평균 영업이익이 추정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36%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정 회장은 모멘티브 인수를 완료한 뒤 2020년 신년사에서 “유수의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를 고심하고 있는데 KCC는 앞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더욱 강력하고 경쟁력 있는 글로벌 첨단소재기업으로 재탄생할 것이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1960년생이다. 1991년 KCC 전신인 고려화학에 이사로 합류한 뒤 2005년부터 KCC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정 회장은 2018년 세계 3대 실리콘기업 모멘티브가 매물로 나오자 SJL파트너스, 원익QnC와 함께 30억 달러(약 3조5천억 원)를 들여 인수했다. 2020년 1월에는 인적분할을 통해 유리와 바닥재, 인테리어부문을 신설회사 KCC글라스에 넘기고 KCC를 첨단소재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힘을 싣고 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