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3-05-09 14: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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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현대백화점의 가구·매트리스 계열사 지누스가 부진하다.
지누스 최고경영자(CEO)는 악화한 실적 탓에 주주들에게 편지도 썼다. 회사 상황이 어렵지만 희망을 놓지 말아달라는 의미에서다.
▲ 지누스가 부진하다. 현대백화점에 인수될 때만 해도 청사진이 있었지만 인수 뒤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보면 주가와 실적 모두 상황이 좋지 않다. 지누스는 이례적으로 1분기 실적발표 자료에 CEO레터까지 주주들에게 보냈다.
지누스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사상 최대 규모로 베팅해 인수한 회사라는 점에서 중요한 계열사다. 지누스 인수를 결정했던 정지선 회장의 고민도 깊을 것으로 보인다.
9일 지누스가 발표한 1분기 실적발표 자료를 살펴보면 CEO레터가 포함됐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지누스가 CEO레터를 보낸 것은 코스피에 재상장한 이후 처음이다.
지누스는 1979년 진웅기업이라는 회사를 전신으로 한 업체다. 실적 악화 탓에 2005년 상장폐지됐다가 14년 만인 2019년 10월 코스피에 재상장했다.
지누스가 이례적으로 CEO레터를 보낸 것은 그만큼 현재 회사의 경영상황을 주주들에게 알릴 필요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현재 지누스는 실적이 악화한 상태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83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70.6% 빠졌다. 현대백화점이 지난해 3월 약 9천억 원을 들여 인수한 회사라고 보기에는 영업이익 규모가 매우 작다.
전조는 있었다.
지누스는 지난해 2분기와 3분기에도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당시 영업이익 하락률은 각각 30.8%, 46.3%나 됐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7.2% 성장하긴 했지만 손익의 전반적 추세가 내림세라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주가도 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지누스 주가는 현재 3만 원 안팎이다. 지난해 3월 현대백화점이 지누스 지분을 사들일 때 보였던 7만 원대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지누스 주가가 가장 높았던 때는 2021년 말로 약 9만 원대였다.
사실 지누스는 2021년까지만 해도 상황이 좋았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번 연간 평균 영업이익만 900억 원가량이었다. 현대백화점이 이 금액의 10배에 이르는 금액을 베팅한 것을 놓고 합리적인 금액을 투자했다고 보는 의견이 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현재 지누스의 상황은 1년 전 현대백화점에 인수될 때와 비교해 180도 바뀌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누스 인수 발표 당시 “현대백화점의 프리미엄 이미지와 구매력이 높은 탄탄한 고객층을 기반으로 중저가 위주의 지누스 사업 모델을 중고가 시장으로 확대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고부가가치 제품 기반의 수면시장 진출도 검토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누스가 미국 아마존에서 매트리스 부문 판매 1위라는 점을 강조하며 성장성을 자신했다.
하지만 1년여 만에 지누스 실적이 하락하면서 현대백화점그룹으로서도 체면이 구겨지는 모양새가 됐다. 지누스 CEO로서도 현대백화점에 보여줬던 청사진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면이 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액주주들의 원성도 자자한 편이다.
현대백화점이 인수한 회사라는 점을 믿고 투자했지만 실적과 주가 모두 무너지자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지 않냐는 목소리가 온라인 주주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다수를 이룬다.
이런 점들을 짚어볼 때 지누스가 CEO레터를 보낸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소액주주들의 마음을 달래는 한편 지누스 인수를 결정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에게 회사를 믿어도 된다는 신호를 동시에 보냈다고 볼 수 있다.
지누스가 보낸 CEO레터의 제목은 ‘주주님들께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지누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36.98%를 보유한 현대백화점이다.
지누스는 CEO레터에서 “최근 많은 경쟁사들이 파산하거나 재무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러한 시기에 공격적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글로벌 온라인 판매 1위 가구기업’의 초석을 다지겠다”고 말했다.
매트리스와 침실가구 이외의 신규 가구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출시해 종합 온라인 가구회사로서의 입지도 더욱 견고하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확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올해 뉴질랜드와 멕시코에 신규 판매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라고도 알렸다.
책임경영 의지도 보였다.
지누스는 CEO레터에서 “책임경영 의지 강화를 위해 CEO 및 한국 법인장은 자사주 추가 매입을 결정했으며 실적발표 후 바로 진행하겠다”며 “이는 향후 회사의 성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표현이다”라고 했다.
정지선 회장은 지누스를 인수한 뒤 경영진을 현대백화점그룹 출신으로 교체하지 않고 지누스 출신으로 유지하며 지누스가 추진하는 전략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 지누스 창업주인 이윤재 회장(사진)은 현대백화점에 경영권을 매각한 뒤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이사회 의장으로서만 회사 경영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현재 지누스의 대표이사는 심재형 사장이다. 지누스 창업주인 이윤재 회장이 지난해 3월 대표이사를 사임하면서 후임 대표에 올랐다.
심 사장은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교 MBA를 졸업한 뒤 LG화학과 코오롱그룹 경영기획실에서 일하며 기획과 전략, 신사업 분야를 두루 거쳤다. 2017년 3월 지누스에 합류한 뒤 전략기획 담당임원을 역임했으며 2019년 지누스가 재상장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지누스가 2018년 생산기지를 인도네시아로 확장할 때 수개월 동안 홀로 출장을 가 프로젝트를 안정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2020년 3월 인도네시아에 제기된 매트리스 수출국 관련 반덤핑 제소에서도 유리한 판결을 받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지누스 이사회는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 심 사장을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하는 안건을 올리며 “심 사장은 지난 몇 년 동안 회사가 여러 가지 대외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며 “경영전반의 통찰력과 전문성은 향후 지누스 앞에 놓인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필수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창업주인 이윤재 회장은 지누스 경영권을 현대백화점에 매각한 뒤 일부 지분(6.66%)을 계속 보유하면서 대표이사가 아닌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3월 말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사회 의장으로서 지누스도 측면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라며 “현대백화점과 함께 하면 자라, 유니클로를 넘어서는 글로벌 브랜드로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