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은 삼성 경영권 승계 위해 국민연금 손댔다는 '누명' 벗을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27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제17차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운명을 결정할 ‘하루’가 다가오고 있다.

이 부회장의 박근혜 게이트 2심 선고공판이 오는 2월5일 열린다. 어떤 선고가 나든 대법원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얻겠지만 항소심의 법률적 판단에서 오류가 없다면 선고를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마지막 재판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선고공판은 이 부회장 운명뿐 아니라 삼성전자 나아가 삼성그룹, 그리고 한국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세기의 재판’이라고도 한다.

박영수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여러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특히 경영권 승계 작업의 하나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고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해 결과적으로 손해를 입혔다는 틀로 이 부회장을 가둬놓고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경영권 승계작업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특검이 짜놓은 논리에 불과하고 결과적으로 박 전 대통령에 부당한 청탁을 할 이유도 없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 재판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무엇보다 국민연금에 ‘의도적으로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완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심 최종변론에서 “서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며 욕심을 내진 않았다”며 “이런 오해와 불신이 풀리지 않으면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인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영인으로서 미래까지 내걸 정도로 억울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재계의 흑역사를 보면 뇌물 횡령 배임 등의 혐의는 대기업 오너의 ‘통과의례’라고 할 정도 흔하다. 정경유착이 뿌리 깊은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는 그 결이 다르다. 국민연금이 어떤 돈인가? 국민들의 노후자금이다. 이 부회장 처지에서 보면 어떤 혐의보다도 벗어나고 싶은 혐의일 것이다.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쳤다는 특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두 개의 큰 받침대는 삼성물산 합병 뒤 국민연금의 손실을 놓고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는 점과 삼성물산 주가 하락에 따라 국민연금이 ‘결과적으로 손해를 봤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점을 놓고 보면 논란의 여지도 넓고 깊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추진될 당시 국내외 증권사와 분석기관들의 전망은 크게 엇갈렸다. 삼성물산의 자체 성장성과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잠재가치 등을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합병 뒤 주가 하락 가능성을 내다보기 쉽지 않았고 삼성그룹 입장에서도 실질적 지주사인 삼성물산의 기업가치 상승은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목표일 수밖에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일성신약 등 주주들이 낸 삼성물산 무효소송에서도 재판부는 삼성 측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 유무를 벗어나 합병 자체가 위법하거나 주주들에 일방적 손해를 끼쳤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국민연금의 ‘예상된 손해’를 주장하는 근거에 힘이 실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과 같은 거대기업의 경우 삼성물산을 둘러싼 지배구조 변화가 삼성전자 등 다른 계열사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합병 무산으로 지배구조가 불안해질 경우 주가에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합병으로 국민연금이 결과적으로 손해를 봤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주가라는 것이 시시각각 바뀌는 만큼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의 가치를 산정할 시점을 특정해 손해를 봤다 혹은 이익을 봤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삼성물산 기업가치는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상승으로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증권사 전망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삼성물산의 합병이 설령 경영권 승계의 일환이라고 하더라도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정비되는 효과로 삼성전자의 주가가 오르고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이 들고 있는 삼성그룹 계열사 전체 주식을 놓고 볼 때 이익을 봤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이런 점을 놓고 보면 재판부의 고민은 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1심 최후진술에서 “국민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제대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려 했다”며 “국민연금에 손해를 입혔다는 오해만은 꼭 풀어주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이 부회장은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바닥까지 떨어진 기업인 이재용의 신뢰를 되찾을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과연 삼성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에 손을 댔다는 그가 스스로 생각하는 ‘누명’만은 벗을 수 있을까? ‘기업인 이재용’의 신뢰를 되찾는 길이 여기에 달려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