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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모토로라 매각' 카드가 통했다. 이번 매각으로 구글이 직면한 두 가지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구글은 지난달 29일 스마트폰 사업부인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중국 IT업체인 레노버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인수대금은 29억1000만달러(약 3조1000억원)로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가격(125억달러)의 4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결코 헐값매각이 아니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슈미트 회장이 매각 대금보다 더 큰 차원의 이득을 얻기 위해 모토로라를 떼어냈다고 분석한다.
◆에릭 슈미트, ‘특허’를 노렸다
이번 매각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특허’다. 구글은 레노버에 모토로라를 넘기면서 총 1만7000여건의 특허 중 2000여건의 특허를 레노버에 양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1만5000여건의 특허에 대해서는 라이센스를 통한 사용권만을 허락해 이들 특허에 대한 소유권은 구글이 그대로 소유하게 됐다.
구글에게 모토로라 특허의 의미는 특별하다. 향후 새로운 스마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과거 특허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사실상 특허소송을 통해 구글의 시장 점유율 확대에 제동을 걸고 있는 만큼 구글에게 특허기술은 절실하다.
특허는 구글의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중요하다. 구글이 애써 신기술을 개발해도 특허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향후 연구개발 투자와 활동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구글이 많은 특허 기술을 확보할수록 애플, MS 등 경쟁 IT업체들과의 특허소송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며 소송 관련 제약에서 한 걸음 빗겨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허 확보는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채택한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 해 10월 애플과 MS 등으로 구성된 록스타 컨소시엄은 구글과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을 특허 침해 혐의로 제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이 모토로라 모바일 특허권 대부분을 그대로 보유하게 되면서 안드로이드 OS(운영체제)를 사용하는 기업들에 대한 법적 보호 혜택 역시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OS 점유율 확대를 가로막는 방해물을 한 꺼풀 거둬낸 셈이다.
◆삼성과 손잡고 ‘안드로이드’ 왕국 확대
구글이 모토로라를 매각하면서 얻게 되는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스마트폰 제조사들과 ‘안드로이드’ 연합 강화다.
업계에서는 구글이 스마트폰 하드웨어 부분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서 삼성전자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들과 불편한 관계를 없앨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구글의 VVIP 고객인 삼성과 관계 회복은 에릭 슈미트 회장이 이번 매각을 결정한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삼성과 관계 회복은 안드로이드 OS 확대와 직결되는 문제다. 지난 11월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IDC는 스마트폰 OS 시장점유율(지난해 3분기 기준)을 조사한 결과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은 세계에서 2억1160만대가 출고돼 전체 시장의 81%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세계 스마트폰 10대 중 8대를 안드로이드가 장악한 셈이다.
안드로이드가 세계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삼성전자의 역할이 컸다. 삼성은 애플의 대항마로 안드로이드를 채택했으며 2011년부터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지켜왔다. 삼성의 세계 시장점유율이 늘어나는 만큼 안드로이드 OS 역시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삼성으로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의지하면서 삼성의 강점인 하드웨어 부분에 집중할 수 있고, 구글로서는 하드웨어 개발을 위한 노력 없이도 안드로이드를 전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과 구글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11년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둘의 관계는 틀어졌다. 최근 들어 둘 사이에는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이번 매각 발표를 통해 구글은 스마트폰 제조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삼성에 확실히 전달했다.
미국 IT매체 폰아레나(phone arena)는 “구글이 모토로라 매각에 따라 삼성과 직접적 경쟁상태를 피할 수 있게 됐다”며 “구글은 그만큼 자신이 원하는 것, 그리고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원하는 것에 대해 흥정할 수 있는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구글은 삼성전자와 기존 특허는 물론 향후 10년간 서로 특허를 공유하는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이로써 구글은 삼성과 ‘갤럭시-안드로이드’ 동맹을 재정비할 수 있게 됐다.
◆모토로라 매각, 결국 소프트웨어(SW)다
구글이 모토로라 인수를 발표하던 당시부터 인수의 배경에는 특허권 확보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소프트웨어 중심 기업인 구글이 하드웨어 사업을 내려놓을 것이란 전망도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2011년 8월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하겠다고 밝힌 직후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는 “모토로라 인수는 구글의 특허권 포토폴리오를 강화시켜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라며 “이는 애플, MS 등 다른 회사의 경쟁 위협으로부터 안드로이드를 보호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모토로라를 인수한 구글은 자체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스마트폰 제조에 뛰어들었다. 모토로라를 인수한 뒤 구글은 모토로라 G와 모토로라 X를 시장에 선보였다. 하지만 두 제품 모두 시장에서 큰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같은 기간 동안 안드로이드 최대 고객이었던 삼성과의 관계만 악화됐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안드로이드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에 최근 삼성은 자체 OS인 타이젠 OS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 사실상 구글에게 등을 돌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다.
구글로서는 2011년 인수 이후 20억달러(2조2000억원) 가량의 손실을 낸 모토로라를 계속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결국 구글은 모토로라를 끌고 가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는 것보다 이를 버리고 안드로이드를 채택한 하드웨어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쪽을 선택했다.
이번 매각에 대해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는 블로그를 통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올인(전력투구)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구글은 안드로이드의 생태계에서 혁신을 이끄는데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글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하드웨어를 버리고 소프트웨어에 집중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