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리딩뱅크는 왜 추락했나  
▲ 이건호 KB국민은행장(왼쪽)과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국민은행에서 ‘리딩뱅크’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사라졌다.


국민은행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최다점포와 최대실적을 자랑하던 국내 1등은행이었다. 하지만 최근 실적악화와 적자점포 증가로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할 형편이다. 게다가 잇단 금융사고와 임직원 비리로 신뢰마저 추락하고 있다.


지난 18일 KB금융그룹은 ‘반성 속의 새출발, 위기극복 대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을 비롯해 계열사 임직원 60여 명이 참석했다.


“지점장으로 퇴직하든 부지점장으로 퇴직하든 퇴직자에 대한 은퇴식이나 기념품 증정 등 그간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시하는 행사조차 없다. 조직에 대한 애사심을 품고 싶어도 생기지 않는다.” 국민은행 영업점 직원의 발언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더 이상 애사심조처 사라진 국민은행의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났다.


◆ 추락한 ‘리딩뱅크’ 국민은행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7월 취임 때 ‘리딩뱅크 탈환’을 내걸었다. 이건호 KB국민은행장도 취임하면서 ‘리딩뱅크’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제 그 말을 듣기 어렵다. 이 행장은 지난 1일 직원조회에서 ‘스토리금융’이라는 새로운 말을 쓰기 시작했다. 스토리금융은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파악해 무너진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임 회장도 리딩뱅크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


국민은행은 ‘소매금융의 최강자’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리딩뱅크였다. 2005년 강정원 행장 시절 국민은행만 순이익이 2조 원이 넘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민은행의 순이익은 8천422억 원에 그쳤다. KB금융지주 전체가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도 1조2천억 원에 머물렀다. 불과 8년 만에 순이익 1조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국민은행은 은행환경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은행업무를 온라인으로 보는 일이 늘어나다가 2009년 말부터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모바일뱅킹이 확산되고 있다. 자연히 은행 가는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 스웨덴 인구의 88%는 1년에 한 번도 은행에 가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뱅크 3.0’의 저자 브랫 킹은 2020년에 세계 주요국가 은행의 절반이 문을 닫는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행은 구조조정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비은행부문 등 새로운 성장동력도 찾지 못했다.

  KB 리딩뱅크는 왜 추락했나  
▲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지난18일 국민은행 일산연수원에서 열린 '반성속의 새출발, 위기극복 대토론회'에서 임직원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 집안싸움과 줄대기에 몰두하는 조직문화

국민은행 조직 구성원의 경쟁력도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민은행은 2001년 주택은행과 합병한 이래로 2008년 KB금융지주로 전환되기까지 관치금융과 직원들의 갈등에 시달렸다.


은행 내부에 국민은행파와 주택은행파가 나뉘면서 채널1과 채널2라는 이름으로 라인을 만드는 문화가 형성됐다. 회장이 바뀔 때마다 마치 정권교체하듯 주도세력이 바뀌었다.

이는 조직내부에 줄대기라는 극심한 폐해를 낳았다. 조직 내 파벌은 여러 노조를 만들어 경쟁적으로 경영진 흔들기에 나섰다. 이렇게 집안싸움에 몰두하면서 국민은행의 체력은 점점 약해졌다.

이런 조직문화는 비리에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라인잡기에 실패해 승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직원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비리를 저질러 한몫을 챙기기도 했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태을 비롯해 포스단말기 해킹, 도쿄지점 부당대출 의혹, 임직원 비리횡령 등의 금융사고가 KB금융에서 이어지는 것도 이런 조직문화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임 회장 스스로도 최근 비리를 놓고 “곪았던 데 한꺼번에 터지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금융사고는 고객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고객의 발길이 돌아서고 실적은 더욱 악화됐다. 국민은행은 4월부터 3개월 동안 청약저축과 국민주택채권 신규가입에 대한 영업정지 조치를 받았다. 국민은행 일부 직원들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주택채권의 원리금 112억 원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진 데 대한 징계였다. 국민은행은 한 달에 평균 200억~300억 원의 가입자를 잃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 점포수에 대한 고민

국민은행도 이익이 안나는 영업점에 대한 처분을 강화하고 있다. 한 때 국민은행을 리딩뱅크로 만들어줬던 점포수가 이제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국민은행은 은행 중에서 여전히 점포가 가장 많다. 국민은행은 지난해부터 영업점 정리작업에 들어가 올해 상반기까지 55개 영업점을 통폐합하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2층 점포도 늘리고 있다. 또 전국을 기존 행정구역 대신 거주인구 평균소득 등에 따라 ‘블록’으로 나눠 기존의 점포들도 모두 재배치한다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은행이 점포수 줄이기에 나서는 것은 점포 10곳 중 1곳이 문만 열어놨을 뿐 적자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국내은행 총 점포수는 5582개다. 이는 전년보다 54개 줄어든 것이다. 2009년 이후 4년 만에 처음 줄었다. 지난해 말 국민은행 점포는 1207개다.


국민은행의 경우 적자점포가 많아지면 그만큼 실적에 부담이 된다. 하지만 점포수를 줄이면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우리나라 성인 10만 명 당 점포 수는 18개(2012년말 기준)다. 이는 OECD 평균 25개보다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