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김진태 전 검찰총장
김진태 검찰총장


김진태는 1952년 8월15일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다.

1968년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1975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85년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했다.

1985년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해 이후 서울지검 동부지청 특별수사부, 부산지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서울지검 특별수사부 등을 거쳤다.

1998년 서울고검 검사를 거쳐 인천지검 특별수사부 부장검사를 지냈다.

2000년 대검찰청으로 자리를 옮겨 환경보건과장, 범죄정보제1담당관, 중수부 제2과장 등을 거쳤다.

2009년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시작으로 이후 대구지검과 대전고검, 서울고검 검사장을 거쳐 2012년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낸 뒤 검사직에서 물러났다.

2013년 8월 법무법인 인의 고문변호사로 있다가 12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자 파문으로 물러난 뒤 제40대 검찰총장에 취임했다.

2015년 12월 1일 검찰총장에서 퇴임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검찰 조직 내에서 대표적인 강골 ‘특별수사통’ 검사로 알려졌다. 검찰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경험과 경륜이 풍부하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 한보비리, 김홍업(김대중 전 대통령 3남) 비리 등 국민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을 맡아 전모를 철저히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시에 해박하고 선승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두목급 조직폭력배가 검사실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후송 도중 숨진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아끼던 후배 검사가 검찰을 떠나자 '애련검사설(哀憐劍士設:슬픈 칼잡이 이야기)'이라는 제목의 한시로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후 ‘고독한 칼잡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2년 이른바 검란(檢亂)으로 한상대 검찰총장이 퇴진한 직후 대검차장으로 임명돼 약 100일 동안 검찰총장 권한대행으로 재임했으나 정식 검찰총장에 채동욱 서울고검장이 지명되자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났다.

2013년 말 혼외자 의혹으로 채동욱 전 총장이 사퇴하고,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항명 및 외압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검찰조직은 만신창이가 됐다. '특수통'과 '공안통'의 해묵은 갈등이 마침내 폭발했는가 하면 수사하는 사건마다 형평성 논란에 휩싸였다. 총장 권한대행 당시 사상최악의 위기에 빠진 검찰조직을 잘 추슬렀다는 평가를 받아 채 전 총장의 사퇴 후 검찰조직을 안정시킬 '구원투수'로 지명됐다.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소탈한 성격으로 후배들로부터도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산의 상당부분을 종교재단에 기부하는 등 재산문제와 사생활도 깔끔한 것으로 전해진다.

진주고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을 다니다 사법시험에 도전해 합격했다. 한국은행 경험 덕분에 서울중앙지검 근무 당시 특수부 검사들을 불러놓고 계좌추적 강의를 할 정도로 관련 업무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검찰 내 대표적 원칙론자로 알려져 있다. 일선 검사 시절부터 ‘김진태가 수사하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수사 업무에서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선 수사경험이 풍부할 뿐 아니라 기획부서 근무 경력도 골고루 갖췄다. 독서량이 풍부하고 박학다식하며 문장력도 뛰어나다. 불교와 한학에 조예가 깊어 수필집 '물 속을 걸어가는 달' 등 관련서적을 출판한 적도 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경남 사천 출신이어서 경남 거제가 고향인 김기춘 실장과 지역연고가 있다. 특히 김기춘 실장이 법무장관을 지낼 당시 법무심의관을 지내며 상당한 총애를 받았다.

학생운동을 하다 몇 년간 도피생활을 했고 검사시절 재야인사들과 자주 어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서울대 법학과 4학년 때인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산사에서 도피생활을 하다 독실한 불자가 됐다. 경남 사천의 다솔사에서 삭발 후 반쯤 승려로 생활하며 출가를 고민했으나 한국은행에 입행했다.

한국은행에 다니면서 사법고시를 치러 서른 살에 합격했다.

1985년 사법연수원(14기)을 수료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연수원 동기다.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검사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특별수사부 검사,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1990년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1992년 서울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검사 등을 거쳤다.

1995년부터 2년간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있다 1997년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을 지냈다.

1998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99년 인천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부장검사를 거쳤다.

2000년부터 대검찰청 환경보건과장과 범죄정보제1담당관, 대검찰청 중수부 제2과장을 역임했다.

2003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제8부장검사로 재직하다 인천지검과 부산지검, 대구지검, 청주지검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9년 대검찰청 형사부장을 지내다 같은해 8월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2010년부터 대구지방검찰청, 대전고등검찰청,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냈다.

2012년 12월부터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냈으며 이듬해 4월 현직에서 물러나 8월부터 법무법인 ‘인’의 고문변호사로 재직했다.

2013년 12월 2일 제40대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2015년 12월 1일 임기 2년을 마치고 퇴임했다.

◆ 학력

1968년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975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부인 송임숙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었다.

◆ 상훈

◆ 상훈

어록


“아직까지도 역사적 정치적으로 다양한 논의와 평가가 진행되고 있어 공직 후보자로서 구체적 견해를 밝히기에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 군사정변이라는 공인 교과서의 입장에 공감한다.”(2013/11/11,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국회 제출 서면답변서에서)

“유신헌법의 일부 조항은 권력분립의 원칙과 맞지 않으며, 국민의 기본권도 과도하게 제한하는 등 헌법 가치를 훼손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2013/11/11,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국회 제출 서면답변서에서)

“흔히 검찰을 칼에 비유하는데 우리 자신이 다모클레스(Damocles)의 칼 아래에 앉아있는 존재임을 깊이 깨달아 삼가고 또 삼가는 마음으로 직무를 수행해야 할 것.”(2013/12/06, 서울 서초구 대검 본관에서 열린 전국 검사장급 기관장 토론회 인사말에서)

“정밀한 인력진단과 합리적 재배치를 통하여 현장수사 인력을 보강하는 한편, 수사부서와 지원부서를 기계적으로 구분하지 말고 그야말로 토탈사커(Total Soccer)와 같이 모든 구성원이 전력을 다해 뛰는 검찰로 바꿔나가자.”(2013/12/31, 2014년 신년사에서)

“유병언 일가 검거를 위해 검찰과 경찰을 비롯한 국가기관들이 함께 노력한 지 2개월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검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해 달라.”(2014/07/15,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간부회의에서)

“최근 계속해서 일어난 검찰 구성원의 일탈행위로 국민께 큰 충격과 실망을 드렸다. 비위를 저지른 사람 다수가 구성원 중에서도 고위직이었고, 대처 과정 등에서 보인 모습도 바람직하지 못해 국민께 면목이 없고 송구스럽다.”(2014/09/02, 대검찰청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공연음란 혐의 사건과 관련해)

“(카카오톡을)안 쓴다. 검찰총장이 그런 것을 쓰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안 쓴다). 필요한 경우에 문자는 주고받지만 (카카오톡은) 여러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이니 총장이 함부로 쓰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2014/10/23, 새누리당 박민식의원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카카오톡을 쓰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압수수색에 협조하지 않으면 직접 문을 따는 것처럼 할 수밖에 없다. 불가피하게 감청이 필요한 경우 사업자를 최대한 설득하고, 도저히 설득이 안 되면 긴급감청(감청을 먼저 진행하고 이후 법원에서 허가를 받는 방식)이나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직접 집행하는 방법을 강구하겠다.”(2014/10/23,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다음카카오의 감청영장 불응에 대해)

“국정감사나 언론 등에서 검찰의 문제점 등을 지적할 때 가장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것 중 하나가 구성원의 비리나 신상에 관련된 문제다. 자존과 명예를 지키는 검찰인이 되어 달라.”(2014/11/04,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아집과 타성을 버리고 법과 원칙에 따라 바르게 처리하되 세상을 사는 이치와 사람 사는 정리에도 부합되게 수사를 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사안이라도 우주보다 더 무거운 인간의 문제임을 깊이 인식해 처리해야 한다.” (2015/12/01, 검찰총장 퇴임식에서)

◆ 평가

검찰 조직 내에서 대표적인 강골 ‘특별수사통’ 검사로 알려졌다. 검찰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경험과 경륜이 풍부하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 한보비리, 김홍업(김대중 전 대통령 3남) 비리 등 국민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을 맡아 전모를 철저히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시에 해박하고 선승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두목급 조직폭력배가 검사실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후송 도중 숨진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아끼던 후배 검사가 검찰을 떠나자 '애련검사설(哀憐劍士設:슬픈 칼잡이 이야기)'이라는 제목의 한시로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후 ‘고독한 칼잡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2년 이른바 검란(檢亂)으로 한상대 검찰총장이 퇴진한 직후 대검차장으로 임명돼 약 100일 동안 검찰총장 권한대행으로 재임했으나 정식 검찰총장에 채동욱 서울고검장이 지명되자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났다.

2013년 말 혼외자 의혹으로 채동욱 전 총장이 사퇴하고,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항명 및 외압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검찰조직은 만신창이가 됐다. '특수통'과 '공안통'의 해묵은 갈등이 마침내 폭발했는가 하면 수사하는 사건마다 형평성 논란에 휩싸였다. 총장 권한대행 당시 사상최악의 위기에 빠진 검찰조직을 잘 추슬렀다는 평가를 받아 채 전 총장의 사퇴 후 검찰조직을 안정시킬 '구원투수'로 지명됐다.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소탈한 성격으로 후배들로부터도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산의 상당부분을 종교재단에 기부하는 등 재산문제와 사생활도 깔끔한 것으로 전해진다.

진주고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을 다니다 사법시험에 도전해 합격했다. 한국은행 경험 덕분에 서울중앙지검 근무 당시 특수부 검사들을 불러놓고 계좌추적 강의를 할 정도로 관련 업무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검찰 내 대표적 원칙론자로 알려져 있다. 일선 검사 시절부터 ‘김진태가 수사하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수사 업무에서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선 수사경험이 풍부할 뿐 아니라 기획부서 근무 경력도 골고루 갖췄다. 독서량이 풍부하고 박학다식하며 문장력도 뛰어나다. 불교와 한학에 조예가 깊어 수필집 '물 속을 걸어가는 달' 등 관련서적을 출판한 적도 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경남 사천 출신이어서 경남 거제가 고향인 김기춘 실장과 지역연고가 있다. 특히 김기춘 실장이 법무장관을 지낼 당시 법무심의관을 지내며 상당한 총애를 받았다.

학생운동을 하다 몇 년간 도피생활을 했고 검사시절 재야인사들과 자주 어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 기타

독실한 불교신자로 백봉, 효당, 무천 스님에게서 불교와 주역을 배웠다. 1996년에 출간했다가 절판한 수필집'달을 듣는 강물'을 다시 다듬어 2004년 ‘물 속을 걸어가는 달’이라는 책으로 다시 펴내기도 했다.

2013년 12월 취임해 재산변동사항 집계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검 차장 당시인 2012년 말 기준 24억2180만 원의 재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취임 전 인사청문회에서 20대 두 자녀의 계좌에 1억4400만 원이 예금됐다는 사실이 재산변동사항을 통해 드러났다. 자녀들에게 재산을 증여하면서 세금납부를 누락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장남은 2009년 사구체신염으로 5급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아 병역을 면제받았다. 장남은 현재 삼성전자 한국총괄 마케팅팀에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