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내년 기준금리의 방향성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금리인상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뜻을 내보이며 금리인상 압박이 커졌지만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 자본이탈과 환율 방어책으로 금리인상 꼽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1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서 내년에 추가로 3차례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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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한국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금리격차는 0.50%~0.75%포인트로 좁혀졌는데 내년에는 한국과 미국의 금리격차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은 이미 국내 금융시장에 반영됐기 때문에 당장 급격하게 자본이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내년에 미국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면 금리격차가 좁아져 국내에서 자본이탈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경제가 외국자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증시를 비롯한 전반적인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이 총재도 15일 금통위 회의가 열리기 전 기자들에게 "예상보다 미국 금리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을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격차가 줄어들면서 달러화 선호현상이 더욱 짙어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박근혜 게이트와 미국 트럼프 정부의 정책 방향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달러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8.8원 오른 1178.50원으로 거래를 마치며 달러화 강세기조를 이어갔다. 환율이 높을수록 국내기업의 가격경쟁력이 낮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11월 회복세로 돌아선 수출이 다시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주요 국가들도 통화완화 정책에서 발을 빼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은 최근 자산매입 규모를 축소하기로 결정하는 등 통화완화 정책을 줄이고 있는 데다 터키와 멕시코 등은 자국통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11월 기준금리를 각각 0.50%포인트씩 인상했다.
◆ 저성장 국면에 금리인하 필요성 제기
그러나 금리를 인상할 경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확장적 재정정책과 상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초까지 사용할 수 있는 재정을 최대한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 총재가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평가되는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경제주체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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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5월3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제19차 아세안+3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미국이 뚜렷한 경기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점과 달리 국내경제는 내년 2%대의 저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금리인하가 더 적절한 통화정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이를 감안해 기준금리 인하 등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권고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 거시경제연구부장은 “통화정책은 현재의 기준금리를 감안하면 추가로 완화할 여력이 있다”며 “재정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통화정책도 공조해 경기에 대응하는 것이 경제주체를 안심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문했다.
가계부채문제도 금리를 높이기 어렵게 한다. 금리가 오르면 저소득층의 이자부담이 늘어 가계부채 부실화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은행 등 금융회사들도 충당금을 쌓아야되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
한국은행이 한국과 미국의 금리역전을 걱정하기보다 국내외 경제상황에 따른 판단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과거 미국의 금리인상은 미국 경제의 회복을 의미했기 때문에 국내 실물시장에 끼치는 영향을 작았다“며 "미국 기준금리 향방보다 국내경제 및 세계경제의 회복세가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렸던 1999년6월~2001년2월과 2005년8월~2007년8월에 양국 기준금리 격차는 역전됐지만 당시 국내 경제성장률은 큰 변동없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한국은행이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며 내년 초까지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 연준은 이르면 내년 3월에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데 한국은행이 이보다 먼저 정책적 판단을 하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실적으로 외국인 자금이탈과 가계부채 확대 등 금융안정이 훼손될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이지 않는 한 국내 기준금리는 동결기조를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