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 가이’ 밥 아이거가 변했다, 이례적 파업 비판에 디즈니 매각설 힘 받아

▲ 평소 창작자를 존중하는 언행으로 '나이스 가이'라는 평을 들었던 밥 아이거가 헐리우드 작가 및 배우들의 파업을 비판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를 두고 파업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줄여 디즈니 매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현지언론의 분석이 나왔다. 사진은 7월12일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열린 사교 모임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한 밥 아이거 디즈니 CEO.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밥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헐리우드 배우와 작가진의 파업에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이례적으로 비판에 나섰다. 

디즈니의 연이은 실적 부진으로 매각설이 불거졌는데 아이거가 매각을 추진하기 위해서 파업과 거리를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31일(현지시각) 미국 엔터테인먼트 전문지 더랩에 따르면 밥 아이거는 경제전문지 CNBC와 인터뷰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파업을 두고 “매우 비현실적이고 불편하다”고 평가했다. 

아이거는 디즈니의 콘텐츠 창작 부서에 제작·유통·마케팅·수익화 등 대부분의 권한을 부여하고 평소에도 콘텐츠 창작자를 존중하는 언행을 보였다.

그러기에 그가 이번 파업에 과거와 달리 강한 어조로 비판의 말을 남긴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디즈니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미국 작가조합(WGA)과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은 스트리밍 수익 배분과 초상권 문제를 이유로 대규모 파업에 들어간 상태다. 

더랩은 “밥 아이거가 인터뷰에서 내놓은 발언은 콘텐츠 창작자 커뮤니티를 크게 놀라게 만들었다”며 “그는 존경받는 기업인에서 돌연 ‘닥터 이블(영화 ’오스틴 파워‘에서 국제 범죄조직 수장으로 나오는 배역)’로 변해버렸다’고 평가했다. 

더랩은 밥 아이거가 파업으로부터 디즈니의 기업 가치가 손상되는 것을 막고 몸값을 더 올리기 위해 그런 발언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작가와 배우 파업이 계속돼서 콘텐츠 생산 일정에 차질을 빚을수록 사업 불확실성이 커져 기업 가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액이 오가는 M&A판은 안정성을 추구한다”면서 더랩은 “불확실성과 변화는 자산의 가격표를 높이기 어렵다”고 해설했다.   

막대한 투자를 감행했던 동영상 스트리밍 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을 겪은 후 디즈니 매각설은 수면 위로 꾸준히 떠오르고 있다. 

2023년에 개봉한 ‘인어공주’와 ‘플래시’ 등 블록버스터 영화들까지 흥행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디즈니는 재정 건전성에 타격을 입은 상태다. 

그 뒤 아이거는 7천 명에 달하는 고강도 인력 감축을 단행하며 비용 절감에 힘을 쏟았는데도 기업 매각설은 계속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보도를 통해 “밥 아이거가 디즈니를 매각하는 시나리오를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구조조정 규모를 보면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며 애플의 디즈니 인수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나이스 가이’ 밥 아이거가 변했다, 이례적 파업 비판에 디즈니 매각설 힘 받아

▲ 디즈니를 인수할 유력 후보로는 애플이 거론된다. 현지언론은 밥 아이거 디즈니 CEO와 팀 쿡 애플 CEO가 최근 미국 사교모임에 함께 참석했다며 해당 자리에서 인수합병을 논의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진은 7월11일 사교모임 장소에 나타난 팀 쿡(왼쪽에서 두 번째). <연합뉴스>

최근 밥 아이거와 팀 쿡 애플 CEO가 한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애플과 디즈니가 인수합병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더랩에 따르면 지난 7월 밥 아이거와 팀 쿡은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열린 사교모임 ‘선밸리 콘퍼런스’에 함께 참석했다. 

더랩은 “팀 쿡은 이 모든 상황을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라며 콘퍼런스 자리에서 두 기업 수장 사이에 인수합병 논의가 오고갔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으로 대규모 현금을 보유한 애플이 디즈니를 인수할 유력 후보라는 의미다. 

애플이 디즈니를 인수하는 시나리오는 수년에 걸쳐 계속 제기됐다. 

팀 쿡이 애플을 콘텐츠와 서비스 플랫폼업체로 발전시키려는 중장기 목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애플이 디즈니의 지식재산(IP)을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한다면 플랫폼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춘 기업으로 자리잡을 공산이 크다. 

디즈니가 애플과 꾸준히 협업을 해 왔다는 점도 애플의 디즈니 인수합병설에 설득력을 더한다. 

지난 6월 애플이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공간 컴퓨터인 ‘비전 프로’를 발표할 때 밥 아이거가 예고 없이 등장했다는 점 또한 두 기업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아이거가 최근 디즈니 CEO 공식 임기를 2026년까지 2년 연장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그가 디즈니를 애플에 매각하는 작업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더랩은 “밥 아이거가 과거 21세기 폭스사를 인수하는 과정에 1년이 훨씬 넘는 시일이 걸렸다”며 “2026년은 디즈니 인수를 마무리짓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한켠에서는 디즈니가 스포츠 전문채널 ESPN 등 일부 자산만을 애플에 매각하는 시나리오가 훨씬 현실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디즈니의 테마파크와 같은 사업이 애플의 기존 사업분야와 공통 분모가 없다는 이유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현지시각으로 7월31일 디즈니가 스트리밍 전문가를 영입해 ESPN을 비롯한 디즈니의 텔레비전 사업부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