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그룹 주주회사 한진칼 지배권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지만 시련이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9일 열린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제안한 정관 일부변경 안건을 놓고 찬성표가 50%에 가깝게 나왔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 하다.
 
[오늘Who] 조양호 한진칼 지켰다, 그러나 주주 마음은 '얼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이날 국민연금이 제안한 안건은 출석 의결권 48.66%의 찬성과 49.29%의 반대를 얻었다.
 
상법상 정관변경 안건은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으로 참석 의결권 2/3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통과될 수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정관 일부를 변경하려는 시도는 일단 좌절됐다.

정관 변경 안건에 확실하게 찬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주주는 제안자인 국민연금과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다. 국민연금의 지분 7.34%와 KCGI의 의결권 행사 가능 지분 10.81%를 합쳐도 18.15%에 불과하다는 것을 살피면 30%가 넘는 일반주주들이 국민연금의 정관변경 안건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국민연금은 2월 초 한진칼에 경영참여형 주주권(스튜어드십코드)을 행사하기로 결정하고 ‘이사가 이 회사 또는 자회사와 관련하여 횡령·배임죄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확정된 때에는 즉시 이사직을 상실한다’는 내용을 정관에 추가할 것을 주주제안했다. 

조 회장이 현재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이 사실상 조 회장을 겨냥해 올린 안건으로 해석됐다. 

조 회장으로서는 이번 표대결에서 승리하며 한시름 덜었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KCGI를 제외하고 30%가 넘는 주주들이 국민연금의 제안에 찬성표를 던진 만큼 2020년 한진칼 주주총회를 두고 걱정이 커지게 됐다.

조 회장의 한진칼 사내이사 임기는 2020년 3월 끝난다. 조 회장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이상 2020년 한진칼 주주총회에는 조 회장의 한진칼 사내이사 선임 안건이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사내이사 선임은 출석 의결권 과반의 동의가 필요한 주주총회 일반결의 사항이다. 단순 계산으로 이번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정관변경안에 찬성한 의결권보다 1.4%만 더 모인다면 조 회장 연임안이 부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진칼은 한진그룹 계열사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지주회사인만큼 조 회장이 한진칼 이사회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면 조 회장은 이번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실패보다 훨씬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2020년에는 KCGI의 의결권이 이번 주주총회에서보다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점도 조 회장에게 불안을 안기는 요소다. 

KCGI는 3월 초 기준 한진칼 지분 12.01%를 들고 있다. 이 가운데 1.2%는 주주명부 폐쇄 이후 추가로 매수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 주주총회에서 KCGI가 의결권을 행사한 지분은 10.81% 뿐이지만 2020년 주주총회에서는 추가로 매수한 지분 의결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KCGI가 계속해서 한진칼 지분 추가 매입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KCGI의 투자목적자회사 그레이스홀딩스는 계속해서 한진칼 지분을 추가 취득하고 있어 앞으로 주주총회에서 KCGI의 의결권은 점점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이후에도 조 회장이 한진그룹 경영권을 아예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는 점 역시 조 회장에게는 부담이다.

진에어 노동조합은 28일 성명을 내고 “조 회장이 한진칼 등기 이사로 재직하는 한 지속적으로 진에어 경영에 개입할 것이고 이는 진정한 진에어의 독립 경영과 경영 정상화를 가로막는 것”이라며 “조 회장은 탐욕에 젖은 경영권 방어를 그만두고 고통받은 직원들에게 사죄하고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역시 27일 논평을 내고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경영에 계속 참여하겠다는 오만한 태도를 보인 것은 대한항공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총수의 봉건적 기업 운영방식과 안하무인식 발상이 다시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