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
김종갑은 한국전력공사 사장이다.
▲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
탈원전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로 대표되는 문재인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에 따라 한국전력의 변화를 이끄는 동시에 수익성을 회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1951년 8월10일 경북 안동 임동면 갈전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6.25 참전으로 전사해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안동중학교와 대구상업고등학교를 나오고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안동에서 보충역으로 근무하던 당시 1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상공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상공부 통상협력 담당관(미국과장), 미국 허드슨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산업자원부 국제산업협력국장, 산업기술국장, 산업정책구장을 역임했다.
산업자원부 차관보와 특허청장을 거쳐 산업자원부 제1차관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하이닉스반도체 이사회 의장으로도 활동했다.
효성그룹 사외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한국지멘스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직했다.
강직한 성격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구파로 알려져 있다.
- 경영활동의 공과
-
△한국전력 사장 취임
2018년 4월13일 제20대 한국전력공사 사장에 올랐다.
한국전력은 2017년 12월 조환익 전 사장이 사임한 뒤 송인회 전 한국전력기술 사장, 오영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올랐으나 결국 김종갑이 낙점됐다.
김종갑은 오랜 세월 공직생활을 하고 국내 기업과 외국인 투자기업을 이끄는 등 공직과 민간기업 경험을 두루 갖춘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종갑은 취임사에서 한국전력의 제일 과제로 수익성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 한국전력의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무엇보다 수익성 개선에 힘쓰겠다”며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개선되는 시점까지 비상경영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력의 영업실적은 연결 재무제표로 평가받는다며 “한국전력과 발전자회사, 그룹사들 사이에 불필요한 경쟁을 줄이고 협력을 강화해 한국전력그룹 전체의 경영개선을 이끌겠다”고 덧붙였다.
수익성 개선과 함께 △에너지 전환정책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연구개발(R&D) 투자에 기반한 좋은 일자리 창출 △원전 수출과 기타 에너지사업 수출을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 △에너지밸리 구축을 통한 지역경제 기여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2018년 5월11일 서울 송파구 전기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기협회 정기총회에서 제29대 대한전기협회장에 추대됐다.▲ 한국전력공사 실적.
2011년 6월1일 한국인 최초로 한국지멘스 회장에 올랐다.
지멘스는 발전 송배전 포트폴리오 등 에너지산업은 물론 공장 자동화, 의료장비 등 자본재, 산업재와 관련한 사업을 하는 독일 기업으로 1847년 창업했다.
김종갑이 한국지멘스 회장 공모에 지원한 데는 한국지멘스가 2011년 6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 CEO를 뽑는다고 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지멘스는 김종갑 전까지는 독일 본사가 임명한 외국인 CEO가 이끌었다.
김종갑은 2016년 안동MBC와 인터뷰에서 “하이닉스반도체 경영을 정상화하고 내부적으로 SK에 매각하기로 결정된 만큼 내 역할을 다했다고 보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한국지멘스 회장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국적 다문화 환경에서 기업경영을 하는 것은 한국에서 한국사람끼리 기업을 하는 것과 또 다르다”며 “재미도 있고 어려움도 있고, 배우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지멘스는 2016년 기준 세계 197개 나라에서 35만 명이 일하고 있는 글로벌기업이다.
한국지멘스는 김종갑이 이끌며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멘스그룹 직원은 2011년 40만 명에서 2016년 35만 명으로 줄었지만 한국지멘스 직원 수는 같은 기간 1700명에서 2200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2013년 지멘스 에너지솔루션사업의 아시아본부를 한국에 유치하기도 했다. 에너지솔루션사업의 아시아 지역본부는 가스발전, 복합화력발전, 석탄화력발전 공급을 위한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며 아시아태평양, 중동 지역을 총괄한다.
김종갑은 취임과 동시에 직원들에게 회사배지를 착용하게 하고 당시 서울 역삼동 본사 건물 외벽에 간판을 달게 하는 지멘스를 알리는 데도 힘썼다.
2014년 기업의 윤리적 경영을 확산하기 위해 출범한 윤경SM포럼 공동대표를 맡는 등 한국지멘스의 윤리경영을 강화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국지멘스를 이끌던 2016년 5월부터 2018년 4월까지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도 맡았다.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 시절
2007년 2월 공직에서 물러난 뒤 그해 3월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에 취임했다.
산업자원부 출신의 고위공직자가 퇴임 직후 민간기업 CEO로 간 최초의 사례로 김종갑은 당시 주요 공기업의 사장 자리를 제안 받았으나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에 지원했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비롯해 내부 유력인사들이 사장 후보로 거명됐으나 결국 김종갑이 사장에 선임됐다. 당시 경쟁률은 13대 1에 이르렀다.
김종갑이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에 오를 때는 반도체시장의 글로벌 경쟁심화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할 때다.
하이닉스반도체는 2006년 2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으나 2007년 5천억 원대로 줄어들었고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쳐 영업손실 1조9천억 원, 순손실 4조7천억 원을 냈다.
김종갑은 2008년 말 임원을 30% 줄이고 희망퇴직과 무급휴가 등을 뼈대로 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그 스스로 임금을 35% 깎고 그밖의 임원들도 10~20%가량 임금을 줄였다. 휴일 근무수당과 시간외 근무수당을 없애고 명절 선물 등을 없애는 자구노력도 진행했다.
이와 함께 2009년 신입사원 채용 대신 연구개발(R&D) 인력만 100여 명을 채용하는 등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하이닉스반도체는 2009년 3분기에 8분기 만에 영업이익을 내며 적자를 탈출했다. 이후 2009년 영업이익 1900억 원, 2010년 영업이익 3조 원을 올리는 등 건실한 회사로 변신했다.
김종갑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직원들의 신뢰가 있었다.
2007년 임기 초반 ‘대사면 프로젝트’를 통해 업무과실 등으로 징계를 받은 임직원 100여명과 납품 비리 등으로 거래관계가 끊긴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대사면을 진행해 직원들의 신뢰를 얻었다.
신입사원에게 책을, 신입사원 부모에게 감사편지와 와인을 선물하는 등 이색적 스킨십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고 자사주를 매입을 통해 경영 정상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김종갑은 2016년 안동MBC와 인터뷰에서 “공직에 있을 때 기업 방문횟수가 1천 회가 넘을 정도로 현장을 자주 찾았다”며 “개인적으로 이런 관심이 계기가 돼 민간기업 CEO를 맡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이닉스의 위기를 극복한 원동력으로 노사가 공동목표를 지니고 함께 나아간 ‘노사 협력’을 꼽았다.▲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018년 4월13일 전남 나주 본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197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1978년 상공부에서 대미 통상업무를 맡으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한국의 칼라TV 수출과 관련해 미국의 통상압박이 심하던 때다.
대미 통상업무는 업무강도가 높고 고참이 많은 탓에 승진에서 불이익을 겪어 ‘사무관의 무덤’이라고 불렸는데 김종갑은 공직생활 초반 사무관 3년8개월, 과장 2년6개월 등 미국 통상관련 부서에서 내리 6년을 일했다.
김종갑은 결국 행정고시 동기 가운데 과장 승진이 가장 늦었으나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공부 안에서 대미 통상업무 전문가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 후반 상공부 통상협력담당관으로 일하며 미국과 벌였던 슈퍼301조 관련 협상에서 한국의 입장을 끝까지 관철해 미국 통상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 뒤 통상산업부 통상협력국장, 산업자원부 국제산업협력국장 등 미국 통상 관련 업무를 4차례나 다시 맡는 등 15년 동안 미국 통상업무를 담당하며 ‘미국 통상분야 해결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행정고시 동기 가운데 과장 승진이 가장 늦었으나 국장 승진은 가장 빨랐다.
김종갑이 미국 통상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낸 데에는 그의 영어실력도 한몫했다.
김종갑은 외국인들로부터도 품위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행사를 영어로 진행하는 김종갑의 모습을 본 이기주 당시 독일대사가 “대한민국 공무원 중 저렇게 고급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극찬한 일화도 전해진다.
2003년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파견된 뒤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차관보, 특허청장, 산업자원부 차관 등을 지냈다.
특허청장 시절 특허청에 중앙부처 처음으로 ‘직무성과 계약제도’ ‘재택근무제도’ 등을 도입하는 등 개혁을 추진했고 직원들과 혁신 등을 주제로 격의 없는 토론을 진행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5년 동안 국회에 계류돼 있던 직무발명과 관련한 보상기준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특허청장을 지내며 부처별 성과평가에서 최고 점수를 받고 개인별 업무평가 점수도 높아 2006년 산업자원부 차관으로 승진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미국의 하이닉스반도체 상계관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국가 균형발전정책과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정책, 산업집적화(클러스터) 개념도입 등 굵직한 산업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
- 비전과 과제/평가
-
◆ 비전과 과제▲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012년 7월3일 한국지멘스 회장 시절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지멘스>
한국전력은 2018년 1분기 연결기준으로 영업손실 1276억 원을 내며 2017년 4분기에 이어 두 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냈다.
한국전력이 두 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본 것은 2012년 2분기 이후 약 6년 만으로 한국전력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에 영향을 받아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원전 수출 등 해외사업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는 국내에서 탈원전을 추진하는 동시에 원전 수출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전력은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원전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원전 수출뿐 아니라 남북 관계 개선에 따라 이뤄질 남북 경제협력을 비롯한 동북아 수퍼그리드 사업도 한국전력의 주요 해외사업이다.
김종갑은 과거 공직생활과 한국 기업, 외국 기업을 이끈 경험을 살려 한국전력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김종갑은 글로벌 에너지기업 지멘스에서 스마트공장 등 4차산업혁명에 주도적으로 대응한 경험이 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힘을 쏟고 있는 5대 신산업 가운데 하나인 에너지 신산업분야를 이끌어갈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을 맡은 경험이 에너지 전환정책을 추진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은 독일의 에너지정책을 일정부분 참고하고 있다.
모든 공기업의 과제인 지역경제 활성화, 좋은 일자리 창출, 사회적 가치 확대 등도 김종갑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한국전력은 자산 기준 국내 최대 공기업으로 공공기관계의 맏형격인 만큼 다른 공공기관의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 평가▲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009년 12월2일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시절 일본에서 열린 일본 반도체장비재료 전시회에서 스탠리 마이어스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대표(왼쪽), 메리 푸마 세계 반도체장비재료협회 환경건강안전(ESH) 위원장으로부터 '2009 아키라 이노우에상'을 받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
공직 기간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2개나 따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서광으로 미국 출장을 갈 때면 출장길에서만 책 2권을 읽었다고 한다.
강직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에 오른 뒤 처음 6개월 동안 70건의 인사 청탁을 받았지만 원칙에 입각해 한 건도 아래로 내려 보내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공직을 그만둔 뒤 민간기업 CEO로 옮기고 국내 기업 CEO에서 외국 기업 CEO로 또 다시 옮기는 등 도전을 즐기는 성격이다.
김종갑은 2016년 안동MBC와 인터뷰에서 “한국에 기반을 둔 세계적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엔지니어링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라며 “한국의 강점인 속도, 독일의 강점인 완벽함을 갖춘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파견됐을 당시 산업자원부의 ‘간판급 국장’으로 ‘에이스’라는 소리를 들었다.
김종갑은 인수위원회에서 일하며 탄탄한 이론과 국제 감각을 바탕으로 노무현 정부의 산업 및 통상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산업자원부 차관보 시절 동아일보는 이재훈 당시 주미 워싱턴 상무관을 산업자원부의 ‘기대주’라고 소개하며 “산업자원부 안에서 ’제2의 김종갑’으로 불릴 만큼 산업과 통상분야에서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2004년 특허청장에 선임됐을 한겨레는 “온화한 성품으로 따르는 후배들이 많지만 과단성이 부족하다는 평도 있다”고 전했다.
2006년 산업자원부 1차관으로 승진했을 때 한국경제신문은 “산업자원부 안팎에서 ‘될 인물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
◆ 경력
1975년 제1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진출했다.
상공부 통상협력 담당관(미국과장), 미국 허드슨연구소 객원연구원 등을 거쳐 산업자원부 국제산업협력국장, 산업기술국장, 산업정책구장 등을 역임했다.
2003년 산업자원부 차관보를 거쳐 2004년 9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제18대 특허청장을 역임했다.
2006년 1월 산업자원부 제1차관에 올랐고 2007년 2월 공직을 떠났다.
2007년 3월부터 2010년 3월까지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2010년 3월부터 2011년 5월까지 하이닉스반도체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2011년 잠시 효성 사외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2011년 6월부터 2018년 4월까지 한국지멘스 대표이사 회장으로 일했다.
2018년 4월 제20대 한국전력공사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고 5월 제29대 대한전기협회장으로 추대됐다.
2016년 5월부터 2018년 4월까지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을 맡았다.▲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왼쪽)이 2008년 7월4일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시절 중국 장쑤성 하이닉스반도체의 중국 생산법인을 방문한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가운데), 량바오화 당시 장쑤성 서기(오른쪽)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
1969년 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미국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1992년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6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 가족관계
경북 안동에서 독립유공자 43명을 배출한 명문가문인 의성 김씨의 후손으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6.25 전쟁에서 전사해 얼굴 한번 보지 못했고 5남매 가운데 형과 누이 세 명 역시 6.25 전쟁통에 잃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엄격한 유교 교육을 받았다.
김종갑은 2016년 안동MBC와 인터뷰에서 “몸소 사람의 길을 제시해 주신 훌륭한 할아버지의 가르침이 버팀목이 돼 준다”며 “지금도 어려울 때면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자문을 구한다“고 말했다.
부인 박화영씨 사이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장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비서관을 지내고 8, 9, 10,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박명근 전 의원이다.
◆ 상훈
1984년 상공부장관 표창, 1985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06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07년 월간CEO 베스트 CEO 10인에 선정됐고 월간조선 대한민국 경제리더 혁신경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09년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주는 아키라 이노우에상을 받았다.
2014년 사단법인 아시아유럽미래학회가 주는 글로벌 CEO대상을 받았다.
◆ 기타
평소 진인사대천명을 강조한다.
중학교까지 안동에서 나왔고 취업이 좋은 길이라고 생각해 대구상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공부에 뜻을 두고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장티푸스로 입원하는 바람에 1년 늦게 들어갔다.
안동중학교 동창인 이여성 전 현대로템 대표이사 부회장, 대구상고와 행정고시 17회 동기인 정태언 전 중부지방국세청장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대학시절 사진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사진 콘테스트에서 2차례 상을 받았다.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사진을 좋아한다고 한다.
2005년 특허청장 시절 한국경제신문에 한동안 ‘한경에세이’를 기고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피해 가족을 위해 써달라며 대한적십자사에 1억 원을 기부했다.
2018년 5월 캠퍼스잡앤조이가 전국 대학생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닮고 싶은 CEO’에서 15.4%를 얻어 공기업 CEO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 어록
-
▲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왼쪽)이 2005년 11월30일 특허청장 시절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한-일 특허청장 회담'에서 마코토 나카지마 당시 일본 특허청장과 악수하고 있다. <특허청>
“가까운 지인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한전 사장후보 물망에 오른다는데 그 나이에 새로운 시작, 설마 낭설이겠지?' '백두산 둘레길, 백두대간 종주, 돌레미테와 히말라야 트레킹 계획은 어떻게 하고, 한 달 반이나 쓰던 휴가가 포기가 되나?'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말합니다. '공기업의 맏형인 한전 경영 기회가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트레킹 갈 힘 남았으면 한전에 다 쏟아 부어야지.' '에너지 전환, 디지털 변환, 글로벌 경영, 한전의 명예와 존립이 걸린 이 시대의 엄중한 소명임을 알라.' 많은 경륜 있는 후보가 있었지만 과분한 평가를 받아 제가 이 자리에 오게 됐습니다.“ (2018/04/13, 취임사에서)
“한국은 다양한 산업군에서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멘스가 가장 먼저 투자를 고려하는 핵심 국가다.” (2018/02/07, 한국지멘스 회장 시절 임원 승진자를 포함한 정기 인사 명단을 발표하며)
“힘들지만 보람 있었다. 과장 승진이 가장 늦었지만 국장 승진이 제일 빨랐다. 누구든지 길게 보고 최선을 다하면 보람 있는 결과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까운 이해관계에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2016/05/22. 한국지멘스 회장 시절 안동MBC와 인터뷰에서 관료시절을 회상하며)
“긍정적 마음을 갖기 위해 하루에 3분만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문을 지날 때 뒤에 사람이 온다면 바로 닫지 말고 3초만 잡고 있어라. 이런 게 하루에 3분씩만 누적돼도 여러분 인생이 확실히 달라지고 그런 양보가 이자까지 쳐서 여러분에게 돌아온다.” (2015/12/23, 한국지멘스 회장 시절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매일경제 CEO특강’에서)
“지난해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한국지멘스는 한국에서 수주를 확대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냈다. 이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노력해 온 모든 임직원의 노고 덕분으로 올해도 한국지멘스는 윤리경영을 바탕으로 한국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최고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2015/01/08, 한국지멘스 회장 시절 승진인사를 발표하며)
“최근 지멘스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지멘스는 아시아 주변국 진출을 위해 연구개발 제조기지로 중국이 아닌 한국을 선택했다.” (2012/07/03, 한국지멘스 회장 시절 1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헬스케어와 빌딩자동화설비 분야 등 한국에서 현지화가 가능한 분야의 매출을 5년 안에 두 배로 끌어올려 진정한 한국 기업으로 거듭나겠다.” (2011/07/21, 한국지멘스 회장 시절 취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 업체가 따라오지 못하는 유일한 제조업으로 중국 리스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메모리 반도체는 사업 특성상 중국 기업의 신규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국 업체가 하이닉스를 사는 일도 없을 것이다.” (2011/04/15, 하이닉스반도체 이사회의장 시절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올해 모바일 D램 분야에서 일본 엘피다를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서겠다.” (2009/03/26,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시절 주주총회에서)
“청주사업장을 세계 최고의 낸드플래시 생산기지로 키우겠다.” (2008/08/28,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시절 청주 제3공장 준공식에서)
“기업들은 산업자원부에 ‘괘씸죄를 면하기 위해 눈도장은 찍자’는 심정이었다. 당시 나는 갑의 위치에서 행동하고 높은 문턱을 낮추지 못했다.” (2008/03/29,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시절 지식경제부 연찬회에 참석해 ‘반성문’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영웅은 어려운 시기에 나는 법이다. 하이닉스를 세계 최고의 생산성과 투자효율을 갖춘 기업으로 만든 원동력을 다시 한 번 보여달라.” (2007/12/28,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시절 종무사에서)
“공무원 수는 많은 편이 아니다. 불필요한 정부 개입과 규제 축소가 관건이다.” (2007/12/19,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시절 한국경제신문이 진행한 ‘이명박 당선자에게 바란다’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10년 후인 2017년엔 주주와 고객, 사원, 국민 모두가 만족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2007/07/25,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시절 기자간담회에서)
“2010년까지 세계 반도체업계 3위로 도약하겠다, 인사청탁을 하거나 파벌을 만드는 직원에게는 반드시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하겠다.” (2007/03/30,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취임사에서)
“평과 같은 단위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다. 중국도 미터법으로 계량단위를 통일해 상거래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06/06/02, 산업자원부 차관 시절 ‘법정계량단위 사용정착 추진계획’과 관련해)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김종갑’이라는 이름이 촌스럽긴 하지만 한 번도 고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또 이가 굉장히 고르지 못하고 들쭉날쭉한 편인데 주변에서 고르게 고쳐 보라고 얘기하지만 큰 불편이 없기 때문에 그럴 생각이 별로 없다. ‘신체발부 수지부모’인데 이름도 그렇고, 몸도 그렇고 함부로 바꾸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2005/05/20, 특허청장 시절 매일경제의 ‘돌발질문, 자신의 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 대한 답변)
“특허를 출원하더라도 공지제도를 통해 1년6개월 이후에는 기술이 공개되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2007년 이후 특허심사 기간이 대폭 단축되면 공개시점도 현재보다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2004/10/15, 특허청장 시절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기업들이 특허출원을 남발해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우리나라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장비의 국산화율은 16-40%에 불과할 정도로 취약하다, 종합대책을 통해 제조장비의 국산화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겠다.” (2004/03/24, 산업자원부 차관보 시절 반도체 장비산업 육성을 위한 ‘산·학·연·관 컨소시엄’ 출범 계획을 밝히며)
“자동차 산업은 한국의 기간산업이자 수출산업으로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을 위한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다.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선정된 미래형 자동차의 기술력을 조기에 확보하고 상용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 (2003/12/05, 산업자원부 차관보 시절 ‘미래형 자동차산업 발전전략 추진 계획안’을 발표하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WTO에 제소해 이기더라도 피해를 소급해 보상받을 수 없지만 유사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번에 제소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03/06/18, 산업자원부 차관보 시절 미국이 하이닉스반도체 D램을 대상으로 고율의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하경제를 축소하고 기업의 투명경영을 실현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 가운데 하나는 전자상거래다. 전자상거래를 하면 모든 거래기록이 노출되는 탓에 기업들은 현재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정부가 전자상거래에 따른 기업의 부담증가를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 (2002/11/28,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시절 ‘전자상거래 세제개편’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지역산업 정책은 산자부, 과기부, 교육부, 정통부 등 개별부처로 분산돼 있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2002/10/15,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시절 ‘산업 클러스터 발전전략’ 세미나에서 ‘산업 클러스터 활성화를 위한 지역사업 발전방안’을 주제로 한 발제발표에서)
“지난 1999년 산업부문 환경비용 지출이 3조 원을 넘어섰다. 국제적 환경규제가 강화하는 추세에서 시급히 미래형 청정생산체제로 전환하지 못하면 우리 주력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다.” (2001/05/21,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시절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가 운영하는 국가청정생산센터 국제네크워크에 26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지금까지 단일국가별로 투자유치설명회가 열린 적은 있으나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투자박람회처럼 다수의 국가가 한꺼번에 투자유치를 위해 박람회 형식으로 열리는 것은 세계적으로 처음이다.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이 가시화하는 시점에 개최돼 대외신인도 향상을 통한 투자유치촉진에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1999/02/12, 산업자원부 국제산업협력국장 시절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투자박람회를 앞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