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ARM 논의 ‘빈 손’, 이재용 대규모 인수합병 해 넘기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외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을 만나 대규모 인수합병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내리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최근 만남을 가졌지만 소프트뱅크가 대주주인 반도체 설계자산 기업 ARM과 관련한 빅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대외적 사업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삼성전자의 대규모 인수합병이 해를 넘길 가능성도 나온다.

6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겸 대표이사 부회장이 인수합병을 위해 좀 더 유연한 대외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요지로 언급한 점을 놓고 이 부회장이 인수합병 대상기업을 구체화하는데 시간이 좀더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부회장은 5일 개막한 전자전시회 ‘KES 2022’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수합병이 활성화돼야 서로 성장하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인수합병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 부회장은 "글로벌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주요국 통화 긴축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 경기둔화 우려가 지속되는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짚으면서 인수합병을 위한 대외환경이 만만치 않은 점 역시 짚었다.

앞서 한 부회장은 올해 1월 미국에서 열린 전자박람회 ‘CES2022’에서 대규모 인수합병을 고려하고 있다며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9개월가량 흐른 현재까지 구체적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않다.

최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방한으로 삼성전자의 ARM 인수에 관한 시나리오가 많이 나왔지만 정작 이재용 부회장과 만남에서는 포괄적 기술 협력에 대한 이야기만 거론된 것으로 전해진다.

전자업계에서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ARM 이외에도 로봇관련 기업을 인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지속해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고심을 거듭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ARM 인수는 글로벌 각 나라 경쟁당국의 허가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점에서, 로봇사업은 중장기적 성장동력으로서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당장 수익을 창출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의 결심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전자업계에서는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를 놓고 이 부회장이 고민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 부회장의 머릿속에 후보로 올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분야로는 대표적으로 '자동차 반도체' 기업이 꼽힌다.

남대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은 어떤 업체를 합리적 가격에 가져올 것이냐가 관건이다”며 “특히 현재 사업과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면 앞으로 기업가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바라봤다.

전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자동차 반도체 전문기업인 NXP와 인피니온 등 인수에 나설 가능성을 점치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SSIC(삼성전략혁신센터)를 통해 글로벌 인수합병 전문가로 꼽히는 마코 치사리 상무를 영입한 바 있어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네덜란드 NXP와 독일 인피니온은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으로 삼성전자의 인수 대상 후보로 여러 차례 꼽혀온 바 있다. 

이처럼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이 인수후보로 계속 거론되는 것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시대가 임박한 것과 관련이 깊다.

일반자동차에는 반도체가 200개 정도 들어가지만 레벨3(조건부 자율주행) 이상 자율주행차에는 약 2천 개가량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1년 59조 원에서 2025년 100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테슬라로부터 고급 자율주행칩 수주를 놓고 TSMC와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파운드리 사업에 든든한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서 차량용 반도체 기업을 인수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사업부에서 테슬라에 시스템온칩(SoC)를 제작해 공급한 바 있어 차량용 반도체 기업을 인수한다면 시너지가 날 공산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완전자율주행 제어장치(FSD컴퓨터)에 들어가는 자율주행칩과 함께 작동하는 차량용 반도체를 한꺼번에 공급할 기회를 노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NXP와 독일 인피니언의 기업가치가 차량용 반도체 조달 부족에 따른 실적 호조에 힘받아 크게 높아진 점은 이 부회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일정이나 인수합병에 대한 사항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