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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 |
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서울시에 사의를 표명했다.
조 대표는 한겨레 창간멤버로서 '씨네21'의 초대편집장을 맡아 국내 문화예술계의 대표적인 여성 오피니언 리더로 손꼽혀온 인물이다.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의 조선희 대표가 서울시에 사직서를 냈다.
서울문화재단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2004년 서울의 각종 문화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창립됐다. 서울문화재단은 창립 이후 서울연극센터와 신당창작아케이드, 금천예술공장과 남산예술센터, 연희문학창작촌 등을 개관했다.
조 대표는 2012년 3월 서울문화재단 대표에 임명됐다. 그는 임기 3년을 마치고 지난해 4월 연임에 성공해 임기가 2년가량 남아있었다.
조 대표는 “미뤄놨던 소설집필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조 대표는 에세이집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장편소설 <열정과 불안>, 소설집 <햇빛 찬란한 나날> 등을 집필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조 대표는 1960년 생으로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여고와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82년 대학을 졸업하고 연합통신 기자로 활동하다 1988년 한겨레 창간멤버로 참여했다.
조 대표는 한겨레에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다 한겨레가 국내 최초의 영화주간지 ‘씨네21’을 창간할 때 이를 주도했다. 조 대표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씨네21 초대편집장을 맡았다.
조 대표는 2000년 20년 동안의 언론인 생활을 접고 소설가로 변신했다. 조 대표는 첫 에세이집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를 통해 한겨레와 씨네21의 창간과정을 회고했다.
조 대표는 이후 2006년 한국영상자료원장에 임명되며 영화계에 다시 발을 들였다. 그는 한국영상자료원장 임기인 3년을 다 채우고 물러났는데 이는 당시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 때 임명된 인사들을 임기 도중 전부 물갈이했던 것과 대비돼 주목을 받았다.
조 대표는 이에 대해 “외압이 있었지만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것이 임기를 지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퇴임 직전까지 유 전 장관이 주재하는 문화부 산하 공공기관장 회의에 참석했다.
조 대표는 한국영상자료원장에서 물러난 뒤 잠시 소설가로 활동하다 2012년 2월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을 맡으며 정계에도 진출했다.
조 대표는 한 달 후인 2012년 3월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임명됐다. 서울문화재단의 초대 대표는 유인촌 전 문화부장관이었고 안호상 국립극장장이 2대 대표, 조 대표가 3대 대표였다.
조 대표는 서울문화재단 수장으로서 돋보이는 성과를 냈다.
서울문화재단은 2012년 서울시 16개 투자출연기관 가운데 시민 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또 같은 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으로부터 16개 광역문화지원센터가운데 서울문화재단의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가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 대표는 2013년 서울 원서동 공간사옥을 인수하며 문화재 가치보존에도 힘을 썼다.
원서동 공간사옥은 한국 건축 1세대를 대표하는 고 김수근(1931~1986) 건축가가 운영했던 건축사무소로 전문가들이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물로 꼽았던 건물이다.
조 대표는 서울문화재단 대표에서 물러난 뒤 다시 집필활동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조 대표는 2000년 씨네21편집장을 그만두면서 첫 에세이집을 냈고 2009년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임기를 마친 뒤에는 한국영화사에 획을 그은 고전작품과 감독, 배우들을 조명한 저서 <클래식중독>을 내놓았다.
조 대표는 “집필과정의 고독은 견디기 힘들어 내 적성과 안맞는다”면서도 “평생을 ‘글 쓰는 사람(writer)’으로서 정체성을 안고 갈 것”이라고 말해왔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