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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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1947년 경남 남해 다정리에서 태어났다.
교육가 가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1등을 거의 놓친적이 없는 수재였다.
대학교 졸업 후 한국투자금융의 전신인 한국개발금융에 잠시 몸담았다가 포드재단 장학금을 받고 도미 유학길에 오른다. 박사과정을 마친 뒤 1979년 8월부터 와이오밍대 경제학과 조교수로 재직했다.
1981년 귀국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으로 4년간 근무하다가 198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2013년 2월 정년퇴임하고 같은 해 5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2015년 10월 보건복지부와 인사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7개월여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임했다.
- 경영활동의 공과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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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외국어대 교수시절 30여 년간 단 한 번도 휴강을 하지 않았으며 수업 종이 치기 전에 수업을 시작해 종이 친 뒤에야 수업을 마쳤다고 한다.
부인 조순희 씨는 남편에 대해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단 한 가지 남편이 부럽고 존경스러운 것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평균 60여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들은 최광을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재정학자’ ‘구도하는 선비 교수’ ‘한평생을 학처럼 살아온 선배’ ‘섬기는 리더십’ ‘자신에게 엄격한 원칙주의자’ 등의 말로 평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 복지 전반에 이해가 깊고 경제학자로 30여년 이상 예산과 재정, 조세를 연구해왔기 때문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적임자라는 평가를 듣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 비공식 자문단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지며 선피아(선거+마피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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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KDI연구원 시절 우리나라 재정 분야의 통계를 취합 재정리하는 작업에서 부터 소득세제를 필두로 한 직접세의 합리적 개편, ‘한국재정 40년사’ 편집 등에 참여했다.
1983년에는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직접세 분야의 연구 간사를 맡아 우리나라 조세정책 연구개발에 기여했다.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조세학회장, 한국재정학회장, 한국공공경제학회장 등을 지냈다.
1997년 한국조세연구원장으로 취임한지 한달 후 김영삼 정부 마지막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돼 8개월간 장관직을 수행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저소득층 사회안전망 구축, 국민연금기금의 중장기 안정화 방안, 건강보험제도와 보건의료제도의 개선 등을 추진했다.
이후 학교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하다가 2003년 10월부터 2004년 11월까지 국회예산정책처장을 역임했다.
2005년부터 보수성향 지식인그룹인 자유지식인선언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2013년 5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취임했으며 임기를 7개월여 앞둔 2015년 10월 보건복지부와 인사문제로 갈등을 빚어 자진사퇴했다.
◆ 학력
1962년 진주중학교, 1966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4년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메릴랜드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조순희씨와 사이에 자녀는 없다.
◆ 상훈
1986년 조세의날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03년 청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 상훈
1986년 조세의날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03년 청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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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시민활동도 하겠다. 386세대와 진보주의자들만 운동을 하는게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우리한테 주어진 길이라는 것을 학생들뿐만 아니라 외부에 알리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다” (2004/11/18, 국회예산정책처장에서 물러나기 전 인터뷰)
“이념에서는 보수주의나 진보주의만 있다. 자유 지식인 선언그룹은 일회성 선언에 그치지 않고 정통 보수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중도 입장은 단호히 배격하겠다.” (2005/02/03, 자유지식인선언 출범식에서)
“정부는 결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복지의 시혜를 베풀 수 있는 요술방망이를 가질 수 없다. 복지 공약을 내세우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시장원리를 잘 활용해 정책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지 여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정부 역할의 확대는 우리 사회에 독점적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고 이는 사회 전체의 비효율 증대를 의미한다. 방대한 국가 예산을 민간부문에 원칙 없이 투입하는 '큰 정부'는 언제나 난관에 봉착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2012/12/04, 한국외대 퇴임식 겸 고별강연)
“유시민 전 장관이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에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유 장관이 장관직을 맡은 이후 소득대체율을 40%로까지 내려놓은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일이다.” (2013/07/15, 유시민 전 장관의 국민연금제도 개혁을 평가하며)
“인간의 본성이 시장에 그대로 나타나는 만큼 시장을 잘 활용해야 한다. 시장한테 이기는 정부와 정책은 반드시 시장으로부터 보복을 당한다.” (2014/01/20, 인터뷰)
“기금운용본부가 국민연금공단에서 독립해 자산을 운용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논리상 맞지도 않다. 기금운용본부를 개편할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독립된 기관을 만들어 운용을 맡기는 것은 전례가 없다” (2014/05/20, 금융투자업계 최고경영자 간담회)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말은 쓰지 말아달라. 실제로 고갈될 일은 절대 없다. 대한민국에 국민연금만큼 수익성 높은 상품이 존재하지 않는다.” (2014/10/17, 국정감사)
◆ 평가
외국어대 교수시절 30여 년간 단 한 번도 휴강을 하지 않았으며 수업 종이 치기 전에 수업을 시작해 종이 친 뒤에야 수업을 마쳤다고 한다.
부인 조순희 씨는 남편에 대해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단 한 가지 남편이 부럽고 존경스러운 것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평균 60여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들은 최광을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재정학자’ ‘구도하는 선비 교수’ ‘한평생을 학처럼 살아온 선배’ ‘섬기는 리더십’ ‘자신에게 엄격한 원칙주의자’ 등의 말로 평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 복지 전반에 이해가 깊고 경제학자로 30여년 이상 예산과 재정, 조세를 연구해왔기 때문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적임자라는 평가를 듣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 비공식 자문단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지며 선피아(선거+마피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 기타
1985년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경제정책분야 자문역을 수행하며 금융실명제의 당위성을 역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자 이각범 청와대 정책수석은 “최광은 금융실명제 도입의 1등 공신”이라고 평가했다.
‘부국안민(富國安民)’을 좌우명으로 삼아 집무실에 부국안민이라고 쓴 휘호 액자를 걸어놓았다. 2012년 펴낸 책 제목도 <부국안민의 길>이다.
스스로 정통 보수 시장경제주의자로 자처한다.
출신마을의 이름에서 딴 ‘다정’이란 호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