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은 10여 년 전만 해도 바이오제약 문외한이었다. 스스로 “신약의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알았더라면 바이오제약에 투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에이치엘비는 본업이었던 구명정 제조보다 표적항암제와 바이오 '인공 간'이 간판사업으로 꼽힌다.
 
'제약 문외한' 진양곤, 에이치엘비 표적항암제 개발에 운명을 걸다

▲ 진양곤 에이치엘비 대표이사 회장.


19일 업계에 따르면 에이치엘비가 바이오기업으로 변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진양곤 회장은 “에이치엘비가 지금 조선업종으로 분류돼 있지만 바이오기업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중기적 계획을 진행중”라며 "올해는 에이치엘비가 국내 바이오산업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치엘비는 자회사 LSKB를 통해 표적항암제 ‘아파티닙’의 글로벌 임상3상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안에 위암 치료제로 임상을 마치고 내년 상반기면 판매를 허가받아 본격적으로 매출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름이 비슷한 치료제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임상을 끝내면 '리보세라닙'이라는 이름으로 신약허가를 신청한다. 

아파티닙은 미국과 유럽에서 희귀의약품으로 인정받았다. 이 덕분에 환자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년 정도 허가기간 단축이 가능하다.

중국에서는 이미 원개발사로부터 판권을 사들인 현지회사 헝루이가 아파티닙 판매를 시작했다. 시판 첫해인 2015년 550억 원, 2016년 1400억 원 규모가 팔렸고 지난해는 3500억 원의 판매규모를 예상하고 있다.

아파티닙은 글로벌 제약사 암젠의 수석연구원이었던 폴챈이 개발한 신생혈관억제제다. 쉽게 말하면 암세포가 자라는 에너지 공급을 차단해 굶겨 죽이는 원리로 작용한다. 

중국 종합병원인 중국인민해방군병원이 2015년부터 2년 동안 위암환자 23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한 결과 같은 작용기전의 표적항암제 '사이람자'보다 2배에 가까운 약효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에이치엘비의 또 다른 자회사인 라이프리버는 바이오 인공 간을 개발하고 있다. 인공 간은  돼지 간세포를 이용해 환자의 혈액에 쌓인 독성물질을 제거하고 필요한 혈액응고인자 등을 공급한다. 

시장규모는 3조 원 정도로 크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아직 허가된 제품이 없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 진 회장은 올해 국내에서 판매허가를 받겠다는 목표를 잡아놓고 있다.

진 회장은 원래 바이오제약과 거리가 먼 분야에 사업을 했다. 그가 소유하고 있던 회사 하이쎌은 인쇄기술을 활용해 전자부품을 생산했다.

그러나 2008년 구명정을 제조하던 에이치엘비(구 이노GDN)를 자회사로 인수하면서 바이오제약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에이치엘비는 자회사인 라이프리버가 인공 간 연구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진 회장이 에이치엘비를 인수한 다음해인 2009년에 표적항암제를 개발하던 신약 개발회사 LSKB가 에이치엘비에 투자요청을 해왔다. 

당시 에이치엘비는 조선업 불황에다 신규사업 운영자금 때문에 재정이 빠듯했다. 하지만 진 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LSKB 경영진으로부터 표적함암제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진 회장은 “전문적 식견이 없는데 산업과 기술을 평가할 수는 없었고 사람에 의존해 결정했다”며 “LSKB 경영진의 열정을 보고 투자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진 회장은 2013년 아예 하이쎌 경영권을 매각하고 에이치엘비 지분을 직접 확보해 개인적으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2015년에는 단순 투자회사였던 LSKB 주식을 추가로 사들여 에이치엘비 자회사로 편입했다. 지난해 6월에는 에이치엘비 대표이사에 올라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진 회장은 아파티닙이 국내 최초 블록버스터 신약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대한민국 신약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것이다. 인공 간에도 지금까지 투자금 120억 원을 쏟아부을 정도로 기대를 걸고 있다. 

에이치엘비는 구명정 건조 등을 하는 복합소재사업에서 3년째 돈을 벌지 못했다. 연결기준으로 2016년 210억 적자를 봤고 지난해에는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이 47억4천억 원에 이른다.

진 회장으로서는 바이오제약사업에 회사의 진 회장의 운명을 걸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는 아파티닙에 투자하면서 회사가 어려운 마당에 불확실한 모험을 한다는 이유로 주주들로부터 원색적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진 회장은 “오해는 시간으로만 극복이 가능하고 비난도 결과로서만 반박할 수 있다”며 “열정을 품고 추진하는 많은 일들이 수확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외풍을 견뎌내는 힘”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