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박찬구 회장은 1948년 8월 13일 광주광역시에서 고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회장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966년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아이오와 대학교 통계학과에 입학해 1971년 졸업했다.

1978년 금호실업 이사로 재계에 발을 들인 박 회장은 1984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다. 2004년 1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2006년 11에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에 올랐으나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다툼이 발생해 2009년 7월 이사회에서 해임됐다.

2010년 3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회장으로 복귀해 현재까지 경영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박찬구 회장은 ‘통계학’을 전공한 재무전문가 출신답게 수치에 밝고 꼼꼼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의사소통’과 ‘의견조율’을 기업의 운명과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해 왔고, 회사 이익 창출에도 탁월한 식견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품질을 강조해 연구개발에 힘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대내외 경기침체에 따른 경영위기 속에서도 그룹 차원에서 연구개발에 힘을 실어줬다. 박 회장은 평소 "우리의 희망은 연구소"라고 말하며 시장을 선도할 기술 개발을 강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난 2011년 2월 기자간담회를 개최할 만큼 언론에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유명하다. 간담회에서도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한두 마디만 간단히 한다. 자리를 같이 한 김성채 금호석유 사장 등에게 발언하게 함으로써 배려심이 깊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박찬구 회장은 1978년 1월부터 1982년 4월까지 금호실업 이사로 근무했다. 이어 같은해 5월 금호건설 상무로 자리를 옮겨 1983년 12월까지 일했다.

1984년 1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으며 1988년 2월까지 재직했다. 1989년 3월 금호몬산토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1996년 1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2003년 12월까지 사장으로 일했다.

2000년 3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금호미쓰이화학 대표이사 사장, 2000년 9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금호케미칼 대표이사 사장을 같이 맡았다.

2004년 1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으며 2006년 11월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에 올랐다. 2009년 7월 자리에 물러났으나 2010년 3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2010년 5월에서 2011년 4월까지 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IISRP) 회장을 맡았다.

◆ 학력

박 회장은 1967년 2월 광주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통계학과에 입학해 1972년 2월 졸업했다. 2009년 5월에는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명예이학박사가 됐다.

◆ 가족관계

박 회장은 아버지 고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창업주와 어머니 이순정 여사 슬하에서 4남 3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첫째형인 고 박성용은 예일대 경제학 박사과정 졸업 후 박정희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 경제담당 보좌관을 지냈다. 이후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 제2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예술의전당 이사장 등을 역임하다 2005년 사망했다.

둘째형인 고 박정구는 제3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내고 지난 2002년 사망했다.

셋째형인 박삼구는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며 전국경제인연합 부회장 한국프로골프협회장 등을 지냈다.

남동생 박종구는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을 거쳐 아주대 교육대학원 교수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을 맡고 있다.

첫째 누나 박경애는 배영환 삼화고속 회장의 부인이며 둘째 누나 박강자는 금호미술관 관장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여동생 박현주는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과 결혼해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부회장과 대상홀딩스 대표이사부회장에 재직 중이다.

박 회장은 부인 위진영과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다. 부인 위진영 여사는 위창남 전 경남투자금융 사장의 딸이다.

장남 박준경은 고려대학교에서 환경생태공학을 전공하고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해 상무로 근무하고 있다.

◆ 상훈

박회장은 2000년 3월 철탑산업훈장을 받았고 같은해 산업재해예방 대통령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11월 금탑산업훈장을 수여받았다.

2010년 9월 이웃돕기 유공자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2012년 제2회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 기업부문에 선정됐다.

◆ 상훈

박회장은 2000년 3월 철탑산업훈장을 받았고 같은해 산업재해예방 대통령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11월 금탑산업훈장을 수여받았다.

2010년 9월 이웃돕기 유공자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2012년 제2회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 기업부문에 선정됐다.

어록


“세계 최대의 생산능력과 기술력에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이를 발판으로 삼아 한 단계 도약할 것인지는 당연하게 의지해 온 과거의 관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달렸다.”(2014년 신년사에서)

“나는 회사에 지금과 같은 천문학적 손실을 입혔으면 반드시 책임지고 물러났을 것이다. 당신은 무책임한 사람이다.” (2009년 이사회 해임 당시)

“각 자의 길을 가야 하는 마당에 형과의 소모적인 갈등보다는 금호석유화학을 잘 이끌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 (2014년 2월 1심 선고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희망은 연구소" "내일은 연구소가 있어서 더 희망적" (2013년 12월 연구실적보고회)

◆ 평가

박찬구 회장은 ‘통계학’을 전공한 재무전문가 출신답게 수치에 밝고 꼼꼼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의사소통’과 ‘의견조율’을 기업의 운명과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해 왔고, 회사 이익 창출에도 탁월한 식견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품질을 강조해 연구개발에 힘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대내외 경기침체에 따른 경영위기 속에서도 그룹 차원에서 연구개발에 힘을 실어줬다. 박 회장은 평소 "우리의 희망은 연구소"라고 말하며 시장을 선도할 기술 개발을 강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난 2011년 2월 기자간담회를 개최할 만큼 언론에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유명하다. 간담회에서도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한두 마디만 간단히 한다. 자리를 같이 한 김성채 금호석유 사장 등에게 발언하게 함으로써 배려심이 깊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 기타

박 회장은 딸 박주형에게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상속해 화제가 됐다. 이는 선대로부터 내려온 공동경영합의를 통해 ‘남자에게만 상속한다’는 원칙을 박찬구 회장이 깼기 때문이다.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의 창업주는 ‘여러 사람이 관여할 경우 분란의 가능성이 있어 상속은 남자에게만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금호그룹은 이를 창업주의 유훈으로 여기며 70년 가까이 지켜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