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이 미국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건설과 관련해 미국 정부의 반도체 관세정책과 현지 사업성을 놓고 '진퇴양난' 상황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계획대로 2026년 공장 가동을 시작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으면,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크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만큼 투자 축소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3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올해 최대 5조 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가동 시점도 연기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370억 달러(약 53조 원)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반도체 제조공장 2곳과 연구·개발 시설을 짓고 있다. 테일러 공장은 2~4나노 공정의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곳으로, 완공 시점은 2026년으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최근 주요 반도체 장비 발주를 미루는 등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대형 고객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대만 TSMC와 2나노 고객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아직 뚜렷한 고객사 유치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TSMC는 애플에 이어 인텔과 AMD를 2나노 고객으로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수주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테일러 공장이 완공된다고 해도 가동률은 저조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대형 수주를 받는다고 해도 당분간 적자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완공된 TSMC 미국 애리조나 공장은 미국 빅테크들로부터 대형 수주를 받았음에도 2024년 142억800만 대만달러(약 6300억 원)의 순솔실을 기록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TSMC 애리조나 공장은 주요 부품과 원자재를 수입해 물류 비용이 증가할 뿐 아니라, 공급 주기도 길어진다”며 “미국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결정은 상업적 측면에 아니라 미국 반도체법에 따른 지정학적 압력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보도했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주는 2022년 “미국에서 반도체를 제조하려면 대만보다 비용이 50%가 더 들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 삼성전자가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하고 있는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전경. <삼성전자 공식 유튜브 채널 갈무리>
파운드리 사업부는 최근 재무부담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시스템LSI사업부는 2024년 약 5조1800억 원의 영업손실 냈는데, 올해는 파운드리에서만 5조 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3나노 공정으로 제조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2500’ 생산도 아직 불투명한 만큼, 적자 규모를 최소화해야 할 필요성은 커졌다.
한진만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은 3월19일 주주총회에서 “각 노드(나노 공정)에서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비효율적 투자는 과감히 축소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투자를 마냥 축소하는 것도 쉽지 않다.
테일러 공장은 이미 대부분의 공장 시설이 들어섰으며, 일부 제조 장비 반입만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관세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에서 반도체 일부를 생산할 필요성은 남아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각) “반도체에도 조만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올해 2월에는 25% 수준의 반도체 관세를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 관세와 경쟁사인 TSMC의 미국 공장을 감안하면, 삼성전자도 ‘울며 겨자먹기’로 미국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는 대형 수주를 받고 미국 공장을 완공한 반면, 삼성전자는 수주 없이 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다”며 “정치적 측면이 큰 투자 결정이지만 적자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인 만큼, 손실을 최소화할 방안으로 계획안을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