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체력 effect] 덜 중요한 걸 쳐내는 일, 인생도 ‘편집의 기술’ 필요하다

▲ 그 누구의 삶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거침없이 소신 있게 살아가는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멀리 울려 퍼지길 바라는 맘이 크다. 사진은 책 <두 여자의 ‘인생편집’ 기술> 표지 이미지 일부. 

우리는 예전에 같은 직장을 다녔던 동료 사이다. D사는 개성 넘치는 잡지들과 책을 발간하고, 대형 전시회를 주관했다. 직원이 120여 명 규모였는데, 급여 수준이나 복지가 좋은 편에 속했다.

같은 층에서 일했지만 그와 나 사이에 개인적인 왕래는 별로 없었다. 호감을 가진 채로, 오다가다 반갑게 눈인사나 하는 정도? 워낙 각자 처한 상황이라든가 관심사가 달랐기에, 친해질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우선 그는 잡지 파트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한 달에 한 번, ‘넘으면 죽는’ 데드라인을 지키느라 일주일은 꼬박 책상에다 얼굴을 박았다.

멀리 외국으로 출장을 가는 일도 잦은 듯했다. 몸과 마음 둘 다 자유로운 싱글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럭셔리’한 사람들을 만나고, 온갖 명품을 들여다보는 게 그의 주된 업무였다.

반면 편집자인 나는 어땠나. 라이프스타일이나 옷차림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직원들 틈에 서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촌스러움을 고집이라 여기고, 물질과 사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유치원에 갓 들어간 아들내미를 돌보면서 일하느라 대개는 피곤에 절었다. 팀 규모의 초라한 출판부를 이끌어 가는 것만도 헉헉댔다. 결국은 고된 업무에 나가떨어졌다. 모두가 만류했지만 맥없이 사표를 쓰고 말았다.

그로부터 20년쯤 세월이 흘렀다. 그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그 사이 마흔을 훌쩍 넘긴 그는 기적처럼 딱 어울리는 남자를 만나 뒤늦게 결혼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여전히 같은 회사를 다니면서 부사장까지 승진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직이 잦고 에디터의 생명력이 짧기로 유명한 잡지 업계에선 매우 이례적이다. 게다가 내 경험상 그 회사는 결코 일하기에 녹록한 곳이 아니다.

후배의 눈엔 나의 변신이 더 놀랍단다. 입사한 지 6년 만에 덜컥 두 손을 들고 회사를 나가 버린 심신 미약자 아니었나? 그런 사람이 철인3종을 하는 마녀체력의 소유자가 되어 나타났다.

예전보다 오히려 더 젊어 보이는 외모로, 넘치는 에너지를 뿜어대면서. 쉰의 나이에 용감하게 전업해서 작가와 강사로 활발하게 일하는 것도 신기하다나? 우리는 각자의 변화와 능력을 부러워하며,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가 회사에서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심플하다. “70% 정도 힘들고 30% 즐겁다면, 괜찮은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단점을 보완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장점을 부각시키고 강조”한 것이 승진에 도움이 되었다.

일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게 우선이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의 양은 결국 질로 치환되기에, 일단 지겹게 많이 해봐야 내게 맞는 일인지 알 수 있다고.

현재 자기 분야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그에게도 후회되는 일이 있을까? “젊은 20대로 되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같은 엉뚱한 질문도 던져 보았다.

머리가 아닌 몸을 제대로 쓰는 법 익히기. 정해진 시간표대로가 아니라 ‘막’ 살아보기. 온전히 혼자서 독립적으로 살아보기 등을 꼽았다. 역시나 젊은 시절에는 움직이고 방황하고 멋대로 살아보는 특권을 맘껏 누려야 하나 보다.

음악과 축구, 그릇 등에 ‘덕질’하는 그가 “만약 거액의 돈이 생긴다면?” 뭘 할지도 궁금했다.

돈을 폼 나게 잘 쓰는 ‘부자 롤 모델’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인 폴 앨런을 손꼽았다. 음악 애호가로 시애틀의 명물인 MoPOP(대중문화 박물관)를 지었고, 다양한 스포츠 구단주였으며, 대학과 연구소에 거금을 쾌척한 기부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야를 멋지게 추구하는 한편 사회 공헌에 이바지하는 상상을 해보면서 행복했단다.

우리는 서로의 일 분야뿐 아니라,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기쁨과 슬픔에 관해 토로했다. 나이 들었다고 멈추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렇게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다보니, 영 달라서 접점이 없을 거라 여겼던 우리에겐 커다란 공통점이 있었다. 문자 중독증 환자들로, 여전히 종이책에 대한 과도한 애정을 버리지 못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책과 잡지에서 오랫동안 ‘편집의 기술’을 발휘해온 프로들이다.

과연 ‘편집’이란 무엇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방향을 잡고, 정신없이 펼쳐져 있는 수많은 것들 중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고, 불필요한 것이나 덜 중요한 것들을 쳐내고, 남아 있는 핵심을 적절한 방식으로 구성하는 일”이다.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며 변해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누구나 헷갈리기 일쑤다. 결국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잘 편집하는 기술’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메일함에 쌓아둔 질문과 대답을 ‘편집’하여 책으로 만들었다. ‘꾸준한 여자와 능력 있는 여자가 서로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라는 부제를 단 '두 여자의 ‘인생편집’ 기술'이다.

그 누구의 삶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거침없이 소신 있게 살아가는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멀리 울려 퍼지길 바라는 맘이 크다. 남편이 먼저 읽고 아내에게 선물하고, 엄마가 읽은 뒤 딸에게 권해 주는 책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마녀체력 작가 
작가 이영미는 이제 ‘마녀체력’이란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27년간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살았다. 한국 출판계에서 처음으로 대편집자란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책상에 앉아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냈지만, 갈수록 몸은 저질체력이 되어 갔다. 죽지 않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15년간 트라이애슬론으로 꾸준히 체력을 키워 나갔다. 그 경험담을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주제로 묶어 내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출판 에디터에서 작가로 변신했으며 <마녀체력> <마녀엄마> <걷기의 말들>을 썼다. 유튜브 지식강연 '세바시'를 비롯해 온오프라인에서 대중 강연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