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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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은 1958년 1월7일 대구에서 제13,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유수호 전 의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으로 재직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해 KDI 연구위원과 선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 의해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발탁돼 정치권에 발을 들여놨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가 사퇴하고 대구 동구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대구 동구을에서 3선을 지냈다.
경선을 통해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오른 뒤 국회 대표연설에서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 정부의 정책과 다른 목소리를 내 청와대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결국 의원총회에서 사퇴권고안이 추인되자 원내대표에서 물러났다.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공천에서 배제하자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이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4월13일 제20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을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 경영활동의 공과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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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전략가 타입의 참모다. 경제학 박사 출신이고 KDI 연구원과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낸 경제정책통이다.
외교안보 분야에 보수적이지만 경제복지 정책에 개혁적 성향이 강하다. 2014년 12월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공동으로 ‘오늘, 대한민국의 내일을 생각한다’는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 스스로 ‘원박(원조 친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9대 총선 때 박근혜 비상대챙위원장에 맞서 새누리당으로 당명 변경에 반대하고 복지와 분배 강화를 주장하는 등 다른 노선을 걸으며 친박 주류와 거리를 두고 있어 ‘탈박’으로 분류된다.
2015년 7월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유승민의 중도개혁적인 성향이 재조명되며 ‘개혁보수’, ‘소신 있는 정치인’ 등의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또 원내대표 사퇴 압박이 거세질수록 유승민에 대한 지지율이 계속 올라 리얼미터의 6월 넷째 주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한 달 사이에 2.0%p 상승해 4위(5.4%)에 오르기도 했다.
대구경북(TK)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통 TK 정치인으로 향후 지역을 거점으로 대선후보에 도전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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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1982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로 유학을 떠나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87년 KDI로 돌아와 2000년까지 연구위원과 선임연구위원으로 근무했다.
한국산업조직학회 사무국장,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자문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맡았다가 2000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 의해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발탁돼 정치권에 진출했다.
2004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가 2005년 10월 사퇴하고 대구 동구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18대와 19대까지 같은 지역구에서 3선을 했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경선에서 박근혜 캠프 정책메시지 단장을 맡아 박근혜 후보의 정책공약을 만들었다.
유승민은 경선 상대인 이명박 후보의 은닉 재산 의혹과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을 제기하며 박근혜 캠프의 공격수로 활약했다.
2011년 한나라당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전당대회에서 4위권으로 분류됐지만 친박계의 지원을 업고 2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2011년 말 당 지지율이 떨어지자 당 지도부에 대한 개편 요구가 빗발쳤다. 유승민은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존망의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며 사퇴했고 뒤이어 남경필, 원희룡 최고위원과 홍준표 대표도 줄줄이 사퇴했다.
2012년 19대 총선 때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새누리당 당명 변경에 강하게 반대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사이를 벌렸다. 또 복지와 분배를 강조하는 개혁성향으로 새누리당 주류에서 점차 멀어졌다.
하지만 그해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돼 박근혜 대통령과 소원한 관계를 정리하고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2014년 새누리당 사회적경제특별위원회 위원장, 제19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5년 2월 친박계 이주영 의원을 84 대 65로 여유있게 제치고 새누리당 19대 국회 하반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청와대와 정부 정책에 다소 각을 세우며 당을 이끌다가 그해 7월8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사퇴권고안이 추인돼 원내대표에서 사퇴했다.
2016년 3월23일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주지 않자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4월13일 제20대 총선에서 대구 동구을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 학력
1970년 삼덕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 대륜중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2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하고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을 지낸 유수호 전 의원이 부친이다.
배우자 오선혜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 상훈
1991년 경제기획원장관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2008, 2010, 2011, 2014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2009, 2013, 2014년 백봉신사상을 수상했다. 백봉신사상은 제헌의원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99년 제정된 상으로 매년 국내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모범의원을 선정해 시상한다.
2014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 상훈
1991년 경제기획원장관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2008, 2010, 2011, 2014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2009, 2013, 2014년 백봉신사상을 수상했다. 백봉신사상은 제헌의원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99년 제정된 상으로 매년 국내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모범의원을 선정해 시상한다.
2014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뽑혔다.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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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오랜 정든 집을 잠시 떠나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다", "(정체성 논란을 빚었던 2015년 4월 국회 원내대표 연설에 대해) 몇 번을 읽어봐도 당의 정강정책에 어긋난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당의 정강정책은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추구하는 저의 노선과 가치가 옳았다고 말해주고 있다" (2016/03/23, 새누리당 탈당 및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며)
"나는 대구가 몸에 밴 사람이고 보수가 몸에 밴 사람" (2015/12/21, 대구에서 열린 '아시아포럼21' 주최 조찬토론회에서 안철수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에 대해)
“(박 대통령과) 서슴없이 토론하는 사이여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 (2015/12/21, 대구에서 열린 '아시아포럼21' 주최 조찬토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을 겨냥해 '배신의 정치를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던데 대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 "더 이상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다" (2015/07/08,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 기자회견에서)
“진보정권, 좌파정권이라고 비난받던 노무현 정권은 자주국방을 위해 8.8%씩 국방예산을 늘렸는데, 국가안보를 생각하는 보수정권이라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연평균 5.3%, 4.1% 늘린 것은 국가안보를 생각하는 보수정권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013/10/11, 합참의장 인사청문회)
“특위가 출범하고 자문위원이 확정되니까 외부에서 새누리당이 너무 왼쪽으로 가는 게 아니냐며 약간 이념적 안경을 끼고 보는 것 같은데 저는 위원장으로서 그런데 전혀 개의치 않는다. 보수냐 진보냐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센터, 마을기업 등과 관련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옮은 방향이라면 이념적 색깔 씌우기에 전혀 구애받지 않겠다” (2014/1/22, 새누리당 사회경제적특별위원회 발대식)
“일관된 국가안보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게 없으니까 이런 일이 발생한다. 이거 누가 하는 거냐. 청와대 얼라들이 하는 거냐.” (2014/10/7,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외교부 국정감사)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중(中)부담-중(中)복지'를 목표로 가진 자가 더 세금을 낸다는 원칙 아래 단계적 증세 방안을 여야가 고민하고 합의해야 한다” (2014/12/29, 국회 토론회)
“대통령 청와대 정부와 정말 긴밀하게 진정한 소통을 하겠다 무엇이 민심인지 더 나은 대안인지 같이 고민하는 가운데 정말 찹쌀떡같은 공조 이루겠다. 대신 우리 대통령, 청와대 식구들 장관들도 더 민심에 귀 기울이고 당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 임기 끝나는 날까지 혼신의 힘 다해 사심없이 모든 측면에서 열심히 잘 하겠다.” (2015/2/2, 새누리당 원내대표 당선인사)
“민심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라가 가도록 하는게 당의 역할이다. 국회와 당이 정부와 청와대에 국민의 민심을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2015/3/6, 고위당정청 회의)
◆ 평가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전략가 타입의 참모다. 경제학 박사 출신이고 KDI 연구원과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낸 경제정책통이다.
외교안보 분야에 보수적이지만 경제복지 정책에 개혁적 성향이 강하다. 2014년 12월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공동으로 ‘오늘, 대한민국의 내일을 생각한다’는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 스스로 ‘원박(원조 친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9대 총선 때 박근혜 비상대챙위원장에 맞서 새누리당으로 당명 변경에 반대하고 복지와 분배 강화를 주장하는 등 다른 노선을 걸으며 친박 주류와 거리를 두고 있어 ‘탈박’으로 분류된다.
2015년 7월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유승민의 중도개혁적인 성향이 재조명되며 ‘개혁보수’, ‘소신 있는 정치인’ 등의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또 원내대표 사퇴 압박이 거세질수록 유승민에 대한 지지율이 계속 올라 리얼미터의 6월 넷째 주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한 달 사이에 2.0%p 상승해 4위(5.4%)에 오르기도 했다.
대구경북(TK)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통 TK 정치인으로 향후 지역을 거점으로 대선후보에 도전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기타
<나누면서 커진다>(1996,미래미디어), <한국기업의 운명을 바꿀 21세기 미래경영>(2000,김영사), <재벌 과연 위기의 주범인가>(2000,비봉출판사)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과 같은 위스콘신대학교 출신으로 이들을 묶어 ‘위스콘신 4인방’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준석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의 부친과 경북고등학교 동기이다. 이 전 위원은 유승민 의원 사무실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다.
![[Who Is ?]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1603/25282_37168_384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