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1940년 3월1일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했다.

김포 통진고등학교를 거쳐 중앙대 약학과를 졸업했다.

서울 종로에 ‘임성기약국’을 열었고 그 뒤 ‘임성기제약’ 설립한 후 ‘한미약품’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한미약품을 연구개발 중심 회사로 바꾸기로 결심하고 연구소장을 맡았던 연구원 출신 이관순씨를 2010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발탁했다.

그 뒤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매출의 15%가 넘는 5288억 원을 연구개발 비용으로 쏟아 부었다.

2015년 글로벌 제약회사와 수천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 체결에 성공하며 연구개발 투자의 결실을 맺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임성기는 명분보다 실용을 중시했다. 서울 종로5가에 ‘임성기약국’을 열었을 때 다른 약사들은 꺼려하는 성병 치료제를 취급해 약국을 키웠다. 약국이름을 내걸고 성병치료 광고를 내기도 했다.

임성기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빠르게 경영 전략을 수정하는 실용 경영으로 국내 제약업계 판도를 주도했다. 국내업체들이 복제약 영업에 몰두할 때 한미약품은 특허전략을 적극 펼치며 한발 빨리 복제약 시장에 진입했다.

임성기는 글로벌 감각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다른 제약사가 내수시장에 전념할 때 글로벌 업체와 손잡고 해외시장 동향 읽기에 나섰다. 한미약품은 해외 제약사와 협력관계를 통해 고혈압치료제인 ‘아모잘탄’을 국산 개량신약 최초로 해외시장에도 진출했다.

글로벌 신약 시장에서 인정받은 데는 임성기의 영업력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성기는 2012년부터 세계적인 당뇨병 관련 인사들과 만나며 신뢰를 쌓았다. 그 결과 보스턴에서 열린 당뇨학회에서 까다로운 선별 기준을 뚫고 11개의 신약 임상 결과를 발표하는데 성공했다.

118년의 한국 제약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다. 임성기는 2015년 한해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글로벌제약사들과 총 6건의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켰고 계약 규모는 약 8조 원에 육박했다.

한미약품의 성공은 임성기의 뚝심에서 만들어졌다고 평가받는다. 임성기는 유전개발보다 성공확률이 낮다는 신약개발 연구를 남다른 의지로 이끌어 왔다.

기업성장의 과실을 직원들과 공유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임성기는 개인주식을 떼 내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성장하면 회사수익으로 보너스를 주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67년 임성기약국을 열고 약국경영을 시작했다.

1973년 한미약품공업을 설립해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1975년 통진학원을 설립해 재단이사장을 맡았다.

1984년 계열사 한미정밀화학 설립해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1987년 한미건강식품 대표이사를 맡았다.

1999년 한국제약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3년 한미약품공업의 상호명을 한미약품으로 변경하고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 학력

1958년 통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5년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에서 학사로 졸업했다.

1973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부인 송영숙씨와 사이에 2남1녀를 뒀다.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이 장남이고 임종훈 한미약품 전무가 차남, 임주현 한미약품 전무가 장녀다.

◆ 상훈

1995년 무역의 날 1천만불수출탑을 수상했다.

1998년 과학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고 국내 최우수상장기업상을 받았다.

1999년 무역의 날 3천만불수출탑을 받았다.

2003년 공정거래의 날 공정거래위원장상과 한국경영인협회가 주관한 대한민국 최고기업 대상을 수상했다. 특허청으로부터 충무공상도 획득했다.

2008년 미국 금융지인 인스티튜셔널인베스터에서 의료제약부문 아시아 최고CEO상을 수상했다.

2009년 산업기술진흥원 주관 대한민국기술대상을 수상했다.

◆ 상훈

1995년 무역의 날 1천만불수출탑을 수상했다.

1998년 과학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고 국내 최우수상장기업상을 받았다.

1999년 무역의 날 3천만불수출탑을 받았다.

2003년 공정거래의 날 공정거래위원장상과 한국경영인협회가 주관한 대한민국 최고기업 대상을 수상했다. 특허청으로부터 충무공상도 획득했다.

2008년 미국 금융지인 인스티튜셔널인베스터에서 의료제약부문 아시아 최고CEO상을 수상했다.

2009년 산업기술진흥원 주관 대한민국기술대상을 수상했다.

어록


“어려울 때 허리띠를 졸라매며 연구개발 투자를 가능케 한 임직원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한 결정” (2016/01/04 개인 보유 주식을 직원들에게 무상증여하겠다는 발표를 하며)

“7개 신약에 대한 대규모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한 2015년은 한미약품 역사에 남을 매우 특별한 해였다. 그 성과를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2015/12/28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 30억 원을 기탁하며)

“처음부터 국내용 신약 개발은 생각하지 않았다. 비용이 더 들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줄곧 연구개발을 진행했다. 정체기가 있었지만 투자를 1년 늦추면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해 오히려 연구개발 투자를 늘렸다.” (2015/11/19 한국 제약산업 공동 컨퍼런스에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신시장 개척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성공을 못한다 해도 나는 수업료로 생각하겠다. 그렇지만 성공을 위해 우리 모두 100% 그 이상으로 노력하면서 도전해 보자“ (2012년 미국 제약사와 특허 다툼이 벌어졌을 때 직원들을 독려하며)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과정에서 불거진 오해로 한미약품이 비판받고 있는 것에 대해 당황스럽고 곤혹스럽다. 의사선생님들께 제대로 보답하지 못해 송구스럽다.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사과한다.” (2010/12/14 대한의사협회 송년회 자리에 참석해서)

“한미약품은 글로벌 시대에 대비해 연구개발에 집중투자해 좋은 글로벌 신약을 탄생시켜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의료강국 제약강국이 될 수 있도록 정부의 결단이 요구된다.” (2010/12/14 대한의사협회 송년회 자리에 참석해서)

“돈은 부족하지만 우수한 머리와 열정, 그리고 독함은 대한민국이 최고다. 2030년쯤이면 로슈나 노바티스라는 걸출한 제약사를 보유한 스위스처럼 대한민국도 아시아의 스위스가 될 수 있다” (2009/09 중앙대학교 한 특강에서)

“제대로 된 글로벌 신약을 만들어 내는 게 평생의 꿈이다.” “의약품 주권을 잃어버린 인근 국가들의 실상을 살펴보면 제약산업 육성이 한시가 급한 시대적 명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약강국이 되어야 국민건강 주권을 지킬 수 있고 국가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 (평소의 지론)

◆ 평가

임성기는 명분보다 실용을 중시했다. 서울 종로5가에 ‘임성기약국’을 열었을 때 다른 약사들은 꺼려하는 성병 치료제를 취급해 약국을 키웠다. 약국이름을 내걸고 성병치료 광고를 내기도 했다.

임성기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빠르게 경영 전략을 수정하는 실용 경영으로 국내 제약업계 판도를 주도했다. 국내업체들이 복제약 영업에 몰두할 때 한미약품은 특허전략을 적극 펼치며 한발 빨리 복제약 시장에 진입했다.

임성기는 글로벌 감각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다른 제약사가 내수시장에 전념할 때 글로벌 업체와 손잡고 해외시장 동향 읽기에 나섰다. 한미약품은 해외 제약사와 협력관계를 통해 고혈압치료제인 ‘아모잘탄’을 국산 개량신약 최초로 해외시장에도 진출했다.

글로벌 신약 시장에서 인정받은 데는 임성기의 영업력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성기는 2012년부터 세계적인 당뇨병 관련 인사들과 만나며 신뢰를 쌓았다. 그 결과 보스턴에서 열린 당뇨학회에서 까다로운 선별 기준을 뚫고 11개의 신약 임상 결과를 발표하는데 성공했다.

118년의 한국 제약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다. 임성기는 2015년 한해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글로벌제약사들과 총 6건의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켰고 계약 규모는 약 8조 원에 육박했다.

한미약품의 성공은 임성기의 뚝심에서 만들어졌다고 평가받는다. 임성기는 유전개발보다 성공확률이 낮다는 신약개발 연구를 남다른 의지로 이끌어 왔다.

기업성장의 과실을 직원들과 공유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임성기는 개인주식을 떼 내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성장하면 회사수익으로 보너스를 주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 기타

임성기가 약국을 개업할 때까지만 해도 흰 가운은 의사들의 전유물이었다. 임성기는 의사의 상징인 흰 가운을 입고 약국에서 환자를 맞이했는데 이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2015년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호재로 국내주식 부호 순위에서 8위로 올라섰다.

2015년 연말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 기술수출 성과를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싶다며 성금 30억 원을 기탁했다.

한국 최초의 글로벌 제약사 경영자가 꿈이라고 항상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