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삼현 현대중공업 공동대표이사 사장이 대규모의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발주를 앞두고 수주전략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올해 수주실적이 극히 저조한 만큼 최대한 많은 수주를 따내야 하는 처지이나 대규모 수주가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을 위한 기업결합심사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1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을 위한 기업결합심사를 7월 안에 신청한다.
애초 현대중공업은 6월 안에 기업결합심사를 받기로 계획했으나 한 달 미뤄진 만큼 국내 기업결합심사와 해외 기업결합심사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공동대표이사 사장은 6월28일 열린 ‘울산조선해양의 날’ 기념행사에서 기업결합심사 통과 가능성을 두고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박 수주영업 등 외부 업무를 수행하는 가 사장에게는 기업결합심사가 골치 아픈 문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19년 하반기부터 카타르와 모잠비크에서 프로젝트 단위의 LNG운반선 발주가 진행된다.
카타르는 LNG운반선 40척 발주를 위한 입찰제안서를 이미 냈고 미국 에너지회사 아나다코는 모잠비크 1구역 프로젝트(Mozambique Area1 Project)에 필요한 LNG운반선 16척을 발주하는 최종 투자결정을 내렸다.
내츄럴가스월드 등 외신들은 프랑스 화학회사 토탈도 모잠비크에서 진행하는 다른 가스전 개발계획을 위해 15척 안팎의 LNG운반선을 곧 발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해외 기업결합심사, 특히 유럽연합의 기업결합심사를 고려한다면 가 사장이 무작정 많은 선박을 수주하는 것은 기업결합심사 통과 가능성을 낮추는 일이 될 수 있다.
유럽연합에서 기업결합심사를 진행하는 집행위원회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심사와 관련해 소비자들에 미치는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며 선박 건조가격 문제를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글로벌 1, 2위 조선사를 통합해 수주를 위한 출혈경쟁을 줄이고 선박 건조가격을 높여 조선업황의 부진을 돌파해 보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반면 그리스의 안젤리쿠시스 그룹이나 덴마크의 마에르스크 등 초대형 해운사들이 몰려 있는 유럽연합은 두 회사의 합병으로 선박 건조가격이 높아질 것을 우려한다.
실제로 앞서 6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소비자에 미치는 가격 영향을 들어 독일 티센크루프와 인도 타타스틸의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에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철강회사의 탄생이 무산됐다.
LNG운반선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가 2018년 발주된 76척의 LNG운반선 가운데 86.8%에 이르는 66척을 수주했을 만큼 한국 조선사의 시장 영향력이 크다. 따라서 가 사장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난 4월 마에르스크는 “LNG운반선이나 VLCC(초대형 원유운반선) 등 고부가 선박의 건조가격이 너무 높아졌다”고 말한 바 있다.
선주들의 LNG운반선의 건조가격과 관련한 심리적 한계선은 1척당 1억8500만 달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4월 LNG운반선의 척당 건조가격은 1억8500만 달러로 한계치에 이르렀으며 5월에는 1억 8550만 달러까지 높아졌다. 올해 들어 한국의 조선3사는 LNG운반선 1척을 1억9천만 달러 이상에 수주하기도 했다.
조선해운 전문매체 트레이드윈즈는 “프로젝트 단위의 대규모 LNG운반선 발주로 발주처들의 조선소 도크 슬롯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할 것”이라며 “올해 말이면 LNG운반선 1척의 건조가격은 2억 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유럽연합에서 기업결합심사를 진행하는 집행위원회가 더욱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할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수주 점유율 문제도 가 사장을 고민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영국의 선박평가기관 배셀즈밸류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LNG운반선 수주잔량 합계는 글로벌 수주잔량의 55.2%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선박의 종류별로 독점 여부를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가 사장이 의욕적으로 LNG운반선 수주전에 나서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중공업이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수주제한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고 본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두 회사가 결합하면 LNG운반선 등 선박의 수주시장에서 과반이 넘는 점유율로 독과점 우려가 발생할 있다”며 “수주 점유율에 상한선을 두는 조건으로 합병을 진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가 사장이 수주전에서 소극적 태도를 보일 수만도 없다. 현대중공업은 계열사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을 포함해 6월 기준으로 올해 수주목표 178억 달러 가운데 28억 원가량을 확보해 달성률이 15.6%에 그치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도 수주상황이 현대중공업보다 나을 뿐 좋다고는 할 수 없다. 6월 기준으로 27억8천만 달러치 선박을 수주해 수주목표인 83억7천만 달러의 33.2%를 달성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업결합심사는 현재 회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에 관련 전략을 공개할 수 없다”며 “열심히 준비해 기업결합심사 통과와 수주목표 달성을 모두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