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만 코스맥스 대표이사 부회장이 2026년 1월6일 경기도 성남시 코스맥스 사옥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코스맥스>
이번 인수는 10년 넘게 이어진 미국 법인 부진을 끊고 해외 수익 구조를 재편하려는 승부수로 해석된다. 북미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세우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23일 코스맥스의 움직임을 종합해보면 올해 유럽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코스맥스는 이날 케미노바 지분 51%를 취득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3월 이탈리아 정부 승인 등 선행 조건을 이행한 뒤 거래를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 금액은 두 회사의 합의에 따라 공개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인수 가액에 주목하고 있다. 유럽에서의 새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만큼 인수 금액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병만 부회장이 올해 승진과 함께 제시한 경영 키워드도 프리미엄·기능성 제품군 확대와 글로벌 핵심 고객사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였다. 케미노바 인수는 고부가 제품 역량과 유럽 현지 네트워크를 동시에 확보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고 여겨진다.
케미노바는 이탈리아의 비상장사인 만큼 시가총액을 집계하기는 쉽지 않다. 이탈리아 대표 화장품 ODM 기업 인터코스의 실적과 시가총액, 멀티플(목표배수) 등을 복합적으로 최소 수백억 규모의 지분 인수였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 같은 가치 평가의 배경에는 케미노바가 보유한 전문성과 입지 경쟁력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케미노바는 1985년 설립돼 40년 이상 업력을 쌓아왔으며 더마 코스메틱과 헤어케어, 의료기기 분야에서 기술력을 축적해 왔다. 특히 고부가가치 영역에 집중해 온 점이 차별화 요소로 꼽힌다.
게다가 본사가 위치한 브레시아는 글로벌 화장품 기업과 원부자재 업체가 밀집한 이탈리아 ‘뷰티 밸리’의 핵심 지역이다. 원료 수급과 연구개발, 생산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산업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코스맥스의 설명이다.
품질 경쟁력도 강점으로 꼽힌다.
케미노바는 품질경영시스템 ISO 9001과 화장품 제조·품질관리기준 ISO 22716, 유기농 화장품 인증 코스모스를 확보했다. 유럽연합의 규제 기준에 대응할 수 있는 생산 체계를 구축했으며 현재 이탈리아 주요 더마·스킨케어 브랜드와 제약 기반 프리미엄 브랜드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 2025년 2월 경기도 성남시 코스맥스 판교사옥에서 열린 SPA 체결식에서 이경수 코스맥스그룹 회장(왼쪽에서 세 번째), 최경 코스맥스 대표이사 부회장(왼쪽에서 네 번째), 이병주 코스맥스비티아이 대표이사 부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마우로 프란조니 케미노바 대표이사(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코스맥스>
양적 성장 가능성도 적지 않다. 유럽화장품산업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유럽 화장품 시장 규모는 1039억 유로로 집계됐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시장 저변도 두터운 편이다. 2024년 기준 독일 169억 유로, 프랑스 142억 유로, 이탈리아 134억 유로로 세 나라가 전체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핵심 소비국이 밀집한 구조인 만큼 현지 생산 거점 확보의 전략적 가치는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코스맥스의 이번 인수는 미국 법인의 장기적 부진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북미에서의 시행착오를 딛고 수익 구조를 재정비하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코스맥스는 2013년 로레알의 오하이오 공장 인수를 시작으로 2017년 현지 화장품 제조기업 누월드까지 사들이며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13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연간 흑자를 내지 못한데다 누적 순손실은 3천억 원을 웃돌았다.
수익성 악화의 원인으로는 현지 신규 고객사 확보 부진이 지목된다. 특히 인디 브랜드 유치가 예상만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누월드의 기존 핵심 고객사 판매 둔화도 부담을 키웠다.
여기에 오하이오와 뉴저지 공장을 이원화하며 발생한 고정비 부담이 더해졌다. 비용 구조가 실적을 압박하는 구조가 고착됐다. 이에 코스맥스는 2022년 말 오하이오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뉴저지 공장 중심으로 생산을 통합하는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물론 이번 인수에 대해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코스맥스는 누월드 인수 당시에도 미국 현지 네트워크 확보를 목표로 내세웠지만 기대한 시너지를 내지 못한 전례가 있다.
문화적 변수도 존재한다. 장인 중심의 이탈리아 제조 문화와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코스맥스식 생산 체계가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럽 시장 특유의 보수성도 장벽으로 거론된다. 현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만큼 기존 고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신규 수주를 확대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이번 케미노바 인수를 통해 유럽 지역에 생산 거점을 추가 확보하는 것을 넘어 다각도의 협력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며 “K뷰티의 기술력과 유럽 시장의 클린, 비건 및 더마 코스메틱 전문성을 융합한 혁신적인 제품으로 유럽 시장 공략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