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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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
박찬구는 금호석유화학 회장이다. 금호석유화학을 중심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독립했다.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수년 동안 법적 다툼을 이어왔으나 극적으로 화해했다.
1948년 8월13일 광주에서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금호실업 이사로 그룹에 발을 들여놓았다.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하고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에 올랐으나 박삼구 회장과 경영권을 두고 다투는 과정에서 이사회에서 해임됐다가 채권단의 중재로 다시 복귀했다.
통계학도 출신답게 꼼꼼하며 직원들과 의사소통을 중요시한다.
- 경영활동의 공과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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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통계학을 전공한 재무전문가 출신답게 수치에 밝고 꼼꼼한 성격이다.
'의사소통’과 ‘의견조율’을 기업의 운명과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품질을 강조해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 박찬구는 대내외 경기침체에 따른 경영위기 속에서도 평소 "우리의 희망은 연구소"라고 말하며 시장을 선도할 기술개발을 강조해 왔다.
박찬구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2011년 2월 기자간담회를 개최할 만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간담회에서도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한두마디만 간단히 한다. 자리를 같이 한 김성채 금호석유 사장 등에게 발언하도록 해 배려심이 깊다는 평가도 받았다.
2016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도 참석해 평소의 성품대로 대기업 오너이면서도 책상에서 떨어진 구석에서 조용히 행사를 지켜봤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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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1976년 한국합성고무에 입사했다.
1978년 1월부터 1982년 4월까지 금호실업 이사로 근무했다. 같은 해 5월 금호건설 상무로 자리를 옮겨 1983년 12월까지 일했다.
1984년 1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으며 1988년 2월까지 재직했다. 1989년 3월 금호몬산토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금호그룹 회장부속실 사장, 금호그룹 비전경영실 사장 등을 지냈다.
1996년에서 2003년까지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했다.
2000년 3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금호미쓰이화학 대표이사 사장, 2000년 9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금호케미칼 대표이사 사장을 같이 맡았다.
2004년 1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으며 2006년 11월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에 올랐다. 2009년 7월 그룹 경영문제로 박삼구 회장과 갈등을 빚고 회장에서 물러났다.
2010년 3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해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선을 그으며 독자적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0년 6월 채권단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율협약을 맺었다.
2010년 5월에서 2011년 4월까지 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IISRP) 회장을 맡았다.
◆ 학력
1967년 광주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7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 통계학과에 입학해 1972년 졸업했다.
2009년 아이오와주립대학교 명예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아버지는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창업주, 어머니는 이순정씨다. 4남3녀 가운데 4남이다.
첫째형인 박성용씨는 예일대 경제학 박사과정 졸업 뒤 박정희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 경제담당 보좌관을 지냈다. 이후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 제2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예술의전당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5년 사망했다.
둘째형인 박정구는 제3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냈으며 2002년 사망했다.
셋째형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한국프로골프협회장 등을 지냈다.
남동생 박종구씨는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을 거쳐 아주대 교육대학원 교수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을 맡고 있다.
첫째누나 박경애씨는 배영환 삼화고속 회장의 부인이며 둘째누나 박강자씨는 금호미술관 관장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여동생 박현주씨는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부회장과 대상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박찬구는 부인 위진영씨와 사이에서 1남1녀를 두었다. 위씨는 위창남 전 경남투자금융 사장의 딸이다.
장남 박준경씨는 고려대학교에서 환경생태공학을 전공하고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해 상무로 근무하고 있다.
장녀 박주형씨는 1980년생으로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학과를 나와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포스코대우)에 입사했다. 그 뒤 금호석유화학으로 자리를 옮겨 상무로 근무하고 있다.
◆ 상훈
2000년 3월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같은 해 산업재해예방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환경친화와 안전초일류 기업과 품질경영 우수 50대기업으로 선정됐다.
2005년 11월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0년 9월 이웃돕기 유공자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2012년 제2회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 기업부문에 선정됐다.
2012년 제2회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 기업부문을 수상했다.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는 기후변화센터가 한 해 동안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선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파트너십을 통해 각계의 역량과 지혜를 모으고자 노력하는 개인과 기관들을 대상으로 주는 상으로 2011년 처음 제정됐다.
◆ 상훈
2000년 3월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같은 해 산업재해예방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환경친화와 안전초일류 기업과 품질경영 우수 50대기업으로 선정됐다.
2005년 11월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0년 9월 이웃돕기 유공자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2012년 제2회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 기업부문에 선정됐다.
2012년 제2회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 기업부문을 수상했다.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는 기후변화센터가 한 해 동안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선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파트너십을 통해 각계의 역량과 지혜를 모으고자 노력하는 개인과 기관들을 대상으로 주는 상으로 2011년 처음 제정됐다.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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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지쳤고 더 이상 싸우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계열분리도 다 된 상황에서 서로 각자 잘 경영하면 된다. 더 이상 치고받고 할 필요도 없지 않겠나 해서 마음 터놓고 해버렸다.”(2016/08, 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화해한 뒤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오해할 것 없다. 나도 편하게 살고 싶어서 마음을 풀었다. 강자가 자비를 베풀라고 하지 않느냐. 그쪽(박삼구 회장)은 아직 재무구조도 약하고 해야 할 일이 많아 내가 강자니깐 베풀어주는 식으로 했다.”(2016/08, 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화해한 뒤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때가 되면 (박삼구 회장과) 만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2016/08, 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화해한 뒤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그럼 다시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가 되는데 뭐 하러 하겠느냐.”(2016/08, 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화해한 뒤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금호타이어 인수를 도울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타이어 사업은)형의 영역이다. 그쪽은 발을 담그지 않겠다.”(2016/08, 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화해한 뒤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금호타이어 인수를 도울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아시아나항공이 금호터미널을 2700억 원이라는 헐값에 매각한 것은 법인과 주주가 아닌 박삼구 회장 개인을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문제를 지적한 것은 소액주주들을 대신해 아시아나항공 경영을 잘해 달라는 경고다. 무엇을 얻겠다는 게 아니다.”(2016/06, 한매체와 인터뷰에서 금호기업의 금호터미널 인수합병을 반대하고 나선 이유에 대해)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의 설립 주주로 지난 28년 동안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형제갈등 모습을 보이면서도 주주 행동에 나선 것은 회사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정도경영을 할 수 있도록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경영 감시자로 활동하기에 아시아나항공이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2016/0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상황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갈등의 발단은 형인 박삼구 회장이 제공했다. 화해를 원하면 원인 제공자가 직접 오면 될 일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서 이들만 불편하게 하는 건 잘못됐다.”(2016/0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화해 가능성을 묻자)
“아버지가 만든 상표권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문제 될 수 없으며 비용을 모두 지급했는데 어떻게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는지 모르겠다.”(2016/0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상표권 소송에 대해 언급하며)
“경영을 잘하기 위해선 모든 업무를 다 해봐야 하고 회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이 향후 경영을 맡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딸의 지분율이 아직 낮은데 책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지분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2016/0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경영 후계구도에 대해)
“투명경영을 통해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이게 나를 위해서도 편하다. 지난해 직원들의 비리문제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도 감추지 않고 회사가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하고 적극 협조했다. 투명하게 경영하겠다는 의지를 주주들이나 임직원들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2016/06,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석유화학은 올해로 45년 됐다. 금호가는 70년이지만 우리는 45년이다.”(2016/01/07, 기자들이 올해가 금호그룹 창립 70주년인데 같이 할지 묻는 질문에)
“생각해봐야지.”(2016/01/07, 기자들이 박삼구 회장과 화해를 묻는 질문에)
“우리가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출범하는 올해는 공교롭게도 금호그룹이 7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70년간 우리는 금호그룹이 있어 태어날 수 있었고 또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금호그룹’이었기에 할 수 없었던 것들도 많았다. 과거 우리를 성장시켰던 것들은 더 이상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우리는 과감히 옛 방식과 결별해야 한다.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다. 그 길에서 실패를 겪는다 해도 이겨내서 후대에게 물려 줄 정신이나 가치를 남긴다면 그것이야말로 금호를 계승발전시키는 진정한 유산일 것이다.”
(‘남에게 진실되게 살아라’라는 창업주의 가르침을 언급하며) “반 평생, 40년을 금호인으로 살아온 저로써는 아직도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씀이 금호석유화학그룹의 새로운 창업에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2016/01, 신년사에서)
“금산공장은 금호석유화학과 상해 일지승이 15년여 동안 쌓아온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합작사의 제2의 도약과 발전을 위해 추진한 프로젝트다. 이번 준공을 통해 금호석유화학이 양국의 경제발전에 더욱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2015/10/22, 중국 상해시에서 열림 중국 합작사 상해금호일련소료유한공사의 금산 공장 준공식에서)
“세계 최대의 생산능력과 기술력에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이를 발판으로 삼아 한 단계 도약할 것인지는 당연하게 의지해 온 과거의 관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달렸다.”(2014 신년사에서)
“나는 회사에 지금과 같은 천문학적 손실을 입혔으면 반드시 책임지고 물러났을 것이다. 당신은 무책임한 사람이다.”(2009, 이사회 해임 당시)
“각자의 길을 가야 하는 마당에 형과 소모적 갈등보다 금호석유화학을 잘 이끌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2014/02/01, 1심 선고 뒤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 평가
통계학을 전공한 재무전문가 출신답게 수치에 밝고 꼼꼼한 성격이다.
'의사소통’과 ‘의견조율’을 기업의 운명과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품질을 강조해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 박찬구는 대내외 경기침체에 따른 경영위기 속에서도 평소 "우리의 희망은 연구소"라고 말하며 시장을 선도할 기술개발을 강조해 왔다.
박찬구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2011년 2월 기자간담회를 개최할 만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간담회에서도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한두마디만 간단히 한다. 자리를 같이 한 김성채 금호석유 사장 등에게 발언하도록 해 배려심이 깊다는 평가도 받았다.
2016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도 참석해 평소의 성품대로 대기업 오너이면서도 책상에서 떨어진 구석에서 조용히 행사를 지켜봤다.
◆ 기타
딸 박주형씨에게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상속해 화제가 됐다. 이는 선대로부터 내려온 공동경영합의인 ‘남자에게만 상속한다’는 원칙을 깬 것이다.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는 ‘여러 사람이 관여할 경우 분란의 가능성이 있어 상속은 남자에게만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금호그룹은 이를 창업주의 유훈으로 여기며 70년 가까이 이 원칙을 지켜 왔다.
박찬구는 평소 능력이 있으면 딸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취미는 바둑과 골프다.
![[Who Is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1702/41750_58542_141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