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 레시피] '굿 뉴스', 냉전시대의 희비극을 담아 낸 한 편의 우화

▲ 굿 뉴스. <네이버 영화 예고편 저장소>

[비즈니스포스트] 변성현 감독의 신작 '굿 뉴스(2025)'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영화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스탠리 큐브릭, 1964)'였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사이의 핵전쟁이 벌어질 일촉즉발 위기 상황을 희화화한 기발한 블랙 코미디로 지금도 시네필에게 회자되는 작품이다. 

이와 비슷하게 '굿 뉴스'도 냉전시대의 절정인 1970년을 배경으로 한국, 일본, 북한, 미국, 소련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희비극을 그리고 있다. 

1950년대 이후 한국 대중매체는 다양한 분단 서사를 다루어왔다. 6. 25, 이산가족, 스파이, DMZ 등 분단 서사의 소재와 주제는 시대에 따라 변화와 변주가 거듭됐다. 

'굿 뉴스'는 1970년 북한에 의해 납북되었던 한국 민항기 탑승객이 김포공항으로 귀환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실제 있었던 1971년 대한항공 비행기 납북 미수 사건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하이재킹(김성한, 2024)'에서 생생하게 다루어지기도 했다. 시작은 한국 민항기 하이재킹이지만 '굿 뉴스'가 본격적으로 풀어낼 이야기는 일본 민항기 납북을 둘러싼 소동이다. 

1968년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공산주의 조직인 적군파 잔존 일당은 혁명 완수를 위한 최적의 장소로 북한을 지목하고 민항기 하이재킹을 계획한다. 

무기와 폭탄을 소지한 이들은 일본 국내선 비행기에 탑승한 뒤 평양으로 방향을 돌리라고 조종사를 위협한다. 승객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이들의 협박에 못 이겨 결국 조종사는 평양으로 기수를 돌린다. 

문제는 이 비행기의 항공 경로를 유도해 줄 관제탑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중앙정보부에서는 우리 영공을 지나는 이 비행기를 무전으로 하이재킹 할 계획을 세운다. 

마치 북한 관제탑인 것처럼 위장해 김포공항까지 유인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김포공항을 평양공항인 것처럼 꾸며 완벽하게 속이고 승객들을 구해낸다는 작전이다. 

반공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을 급작스럽게 호출해서 가짜 인민군, 여성 환영인단, 기자로 구성된 현장 연출을 시킨다. 

여러 차례 변성현 감독과 호흡을 맞춰 온 설경구 배우가 이번에도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인 아무개 역을 맡고 있다. 

아무개는 이름도 없이 중앙정보부에서 기획하는 공안 사건에 은밀히 개입해서 암약하는 인물이다. 

어벙한 야구 모자와 헐렁하고 낡은 코트에 때가 꼬질꼬질한 흰 운동화를 신고 있는 아무개의 행색과 말투는 무거운 소재임에도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풍자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굿 뉴스'는 변성현 감독의 번뜩이는 영화적 재치가 요소요소에 박혀 있는 흥미로운 작품으로 기존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스타일이다. 

코미디는 현실의 질곡을 유쾌한 상상력으로 극복하는 실험을 할 수 있는 장르다. 

2000년 이후 분단이라는 현실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뛰어 넘어 보려는 영화들이 여러 편 출현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2000)'는 DMZ 안의 남북한 병사가 우연한 기회에 조우하고 인간적인 교류를 한다는 이야기로 개봉 당시 많은 화제를 모았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의 교류를 상상한 '만남의 광장(김종진, 2007)'도 상당히 전복적인 시선을 담은 영화였다. 

'굿 뉴스'에서 김포공항을 평양 공항으로 꾸민 것처럼 가짜로 북한 공간과 인물을 만들어 낸 영화들도 있다. 

'간 큰 가족(조명남, 2005)'은 최초로 금강산 로케이션 촬영이 이루어진 영화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 아버지를 위해 가족들이 합심하여 통일이 되었다고 속이는 내용이다. 

'비단구두(여균동, 2006)'는 자신이 연출한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고 빚만 떠안게 된 감독이 사채업자 아버지를 위해 가짜 북한 방문 프로젝트를 지휘한다는 설정이다. 

가족들은 사채업자의 아버지에게 고향인 개마고원에 모시고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감독은 마치 영화를 연출하듯 북한인 것처럼 공간과 인물을 위장한다. '굿 뉴스'는 2000년 이후 다양하게 분화된 분단 서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기록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