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활동의 공과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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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상업고등학교를 나온 일반 행원 출신으로 책임자와 관리자를 거쳐 은행장까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같은 서울은행 출신인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다.
덕장 스타일로 성격이 부드럽고 유화적이라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충청지역본부장으로 발령받았을 때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파부침주(破釜沈舟)' 고사를 떠올렸다고 훗날 인터뷰에서 밝혔다. 파부침주는 ‘밥을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결사적으로 싸우겠다는 결의를 가리킨다.
하나은행의 대표적인 영업통이다. 2013년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 본부장을 맡은 뒤 ‘지역사랑통장’을 출시하고 ‘1인 1통장 및 1사 1통장 갖기 운동’을 벌이는 등 지역밀착형 영업을 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충청사업본부 본부장 시절에 조직, 제도, 업무과정도 일선 영업 중심으로 바꾸면서 대전시금고와 세종시2금고를 따내는 등 실제 성과도 거뒀다. 이를 통해 하나금융 전체 경영평가에서 줄곧 좋은 점수를 받았다.
KEB하나은행의 주요 목표로 ‘영업제일주의’를 제시했다. 2015년 9월2일 서울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 앞에서 직접 가두캠페인에 나서 고객들을 만났다.
KEB하나은행 직원을 모두 전문 프라이빗뱅커(PB)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KEB하나은행은 그 뒤 프라이빗뱅커인 ‘행복파트너’ 1708명을 선발해 854개 지점에 모두 배치하고 3천만 원 이상을 맡긴 고객에게 PB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2015년 10월8일 프라이빗뱅커 전용 서비스였던 ‘프라이빗뱅커 전용 자산관리 시스템’을 모든 영업점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KEB하나은행장으로 취임한 뒤 대기업 위주였던 KEB하나은행의 대출구조를 개인, 소호사업자, 중소기업 위주로 바꾸는 데 주력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취임한 뒤 매일 긴급 임원회의를 열어 영업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KEB하나은행은 2015년 중소기업 대출금액을 2014년보다 6조 원 가량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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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1980년 9월 서울은행에 입행했다.
1990년 8월 서울은행 기업분석부 조사역을 맡았고 2002년 11월 서울은행 수지지점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2002년에 서울은행이 하나은행에 합병된 뒤 2004년 3월 하나은행 분당중앙지점 지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5년 10월 하나은행 가계영업추진부 부장을 맡았으며 2006년 1월 하나은행 남부지역본부 본부장이 됐다.
2008년 1월 하나은행 부행장보로 승진해 충남북지역본부 본부장과 대전영업본부 본부장을 역임했다.
2013년 1월 하나은행 부행장으로 승진해 충청사업본부 본부장을 맡았다.
2015년 9월부터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법인인 KEB하나은행의 은행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 학력
1975년 2월 강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뒤 행원 생활을 하면서 단국대학교 회계학과(야간)를 졸업했다.
2008년 8월 미국 와튼스쿨 글로벌과정을 밟았다. 2011년 6월 고려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아버지가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에서 농부로 일했다.
◆ 상훈
2015년 8월26일 ‘89번째 명예 대전시민’으로 선정됐다.
◆ 상훈
2015년 8월26일 ‘89번째 명예 대전시민’으로 선정됐다.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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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안으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노조를 통합하겠다. 복수노조가 합쳐져야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다. 또 두 은행의 임금체계를 일원화하기 위해서는 노조 통합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 만큼 연내에 모든 일을 마무리하겠다.” (2016/01/05,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6년 범금융권 신년인사회’에서 기자에게)
“어느 정도 하나·외환은행의 화학적 결합이 완성된 만큼 새해에는 영업제일주의를 강화하겠다. 통합은행의 자산규모는 1위지만 고객 수와 이익규모 측면에서는 아직 열악하다. 영업기반을 확대해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 성장을 이루겠다.” (2015/12/29,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감성통합이 각오만큼 잘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외환은행 점포 위주로 영업점을 방문했고, KEB하나은행이 앞으로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감성통합을 위해 특별한 프로젝트를 마련한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정서적 통합이 중요한 만큼 영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했다.” (2015/12/09, 아시아경제와 전화통화에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화학적 결합 성과에 대해)
“혁신 기술을 단기간 내 실제 금융서비스에 성공적으로 접목하는 것이 그 어느 때 중요한 시기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핀테크기업과 전략적 협업체계를 구축하겠다.” (2015/11/27, 핀테크기업 4곳과 KEB하나은행의 업무협약식에서)
“계좌이동제는 이미 예고된 은행 간의 고객 전쟁이다. 고객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 고객관리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겠다.” (2015/10/29, ‘계좌이동서비스를 위한 금융결제원과 16개 은행 간 협약식’에서 기자에게)
“영업력 강화를 통한 일류 은행 도약이 통합은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획기적인 영업력 강화를 위해 종합자산관리 시대를 대비한 전 직원의 프라이빗뱅커(PB)화와 업무별 최고의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 (2015/09/04~05, 강원도 한솔오크밸리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출범리더 워크숍에서 임직원 1300여 명에게)
“KEB하나은행에 성과 중심의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일류 은행으로 도약하겠다. 일류 은행의 선결조건은 수익이 기반이 된 운영체계인데 기존 방식에 머물러 안주해 있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KEB하나은행에 변화와 혁신이 절실한 이유다. 이전에 두 은행이 따로 운영되던 시절에 사로잡혀 하나은행은 전에 이렇게 했었다, 외환은행은 전에 어떻게 했었다 라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면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지금은 기존의 생각과 틀에서 벗어난 변화와 혁신이 가장 중요한 때다.” (2015/09/01, KEB하나은행 출범식에서 공식 취임사를 밝히며)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그동안 신한은행, KB국민은행과 비교해 고객 기반이 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KEB하나은행장으로서 하나은행의 소매금융, 자산관리 부문과 외환은행의 외환, 기업금융 등 각각의 장점을 살려 ‘강한 것을 더 강하게,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하는 것이 임기 중 목표다.” (2015/08/24, KEB하나은행장으로 내정된 뒤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통합은행이 하나·외환은행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서 리딩뱅크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통합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두 은행 직원의 마음을 어우르는 것인 만큼 두 조직이 제대로 통합할 수 있도록 ‘덕장형’ 은행장이 되겠다. 이를 통해 3개월 안에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겠다. 이것이 통합은행 성공의 키워드다.” (2015/08/24, KEB하나은행장으로 내정된 뒤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 평가
상업고등학교를 나온 일반 행원 출신으로 책임자와 관리자를 거쳐 은행장까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같은 서울은행 출신인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다.
덕장 스타일로 성격이 부드럽고 유화적이라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충청지역본부장으로 발령받았을 때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파부침주(破釜沈舟)' 고사를 떠올렸다고 훗날 인터뷰에서 밝혔다. 파부침주는 ‘밥을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결사적으로 싸우겠다는 결의를 가리킨다.
하나은행의 대표적인 영업통이다. 2013년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 본부장을 맡은 뒤 ‘지역사랑통장’을 출시하고 ‘1인 1통장 및 1사 1통장 갖기 운동’을 벌이는 등 지역밀착형 영업을 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충청사업본부 본부장 시절에 조직, 제도, 업무과정도 일선 영업 중심으로 바꾸면서 대전시금고와 세종시2금고를 따내는 등 실제 성과도 거뒀다. 이를 통해 하나금융 전체 경영평가에서 줄곧 좋은 점수를 받았다.
KEB하나은행의 주요 목표로 ‘영업제일주의’를 제시했다. 2015년 9월2일 서울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 앞에서 직접 가두캠페인에 나서 고객들을 만났다.
KEB하나은행 직원을 모두 전문 프라이빗뱅커(PB)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KEB하나은행은 그 뒤 프라이빗뱅커인 ‘행복파트너’ 1708명을 선발해 854개 지점에 모두 배치하고 3천만 원 이상을 맡긴 고객에게 PB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2015년 10월8일 프라이빗뱅커 전용 서비스였던 ‘프라이빗뱅커 전용 자산관리 시스템’을 모든 영업점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KEB하나은행장으로 취임한 뒤 대기업 위주였던 KEB하나은행의 대출구조를 개인, 소호사업자, 중소기업 위주로 바꾸는 데 주력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취임한 뒤 매일 긴급 임원회의를 열어 영업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KEB하나은행은 2015년 중소기업 대출금액을 2014년보다 6조 원 가량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 기타
좌우명은 “낮은 자세로 섬김과 배려의 마음”이다.
별명은 ‘시골 촌놈’이다. 함영주가 태어난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은 그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전기가 들어온 곳이었다. 직원과 고객에게 투박하고 편안한 시골 사람 이미지를 준다는 점도 영향을 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 뒤 서울은행에 입행해 회사를 다니면서 단국대학교 회계학과를 야간으로 졸업했다.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장 부행장 시절 매주 조깅과 산행 등을 통해 직원들과 소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 본부장이었을 때 직원 1천여 명의 이름, 생일, 신상, 애로사항을 기억했으며 병가 중인 직원과 직원 가족의 환자를 직접 병문안했다.
2014년 직원들과 야간 산행을 다녀온 뒤 직원들의 발을 직접 닦아주기도 했다.
KEB하나은행장으로 2017년 3월까지 일한다. 임기가 1년6개월로 비교적 짧다.
KEB하나은행장이 되면서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조용병 신한은행장 등 다른 충청도 출신 인사들과 함께 주목받기도 했다.
2015년 9월22일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했다.
KEB하나은행장이 된 뒤 기자에게 우스갯소리로 자신을 ‘어행’이라고 표현한 적 있다. ‘어쩌다 은행장이 됐다’는 뜻이다.
KEB하나은행 본점 직원들의 생일 때마다 축하메시지를 보낸다.
2016년 1월4일 시무식 대신 서울 본점 로비에서 출근 시간에 직원들을 직접 맞이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고 원숭이 인형을 선물했다.
![[Who Is ?] 함영주 KEB하나은행장](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1601/22697_33787_10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