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최종현 선대 회장은 나무를 많이 심었다. 나무를 심는다는 핑계로 땅 사재기를 한다는 얘기가 나올까봐 일부러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충청북도 오지를 조림지로 선택했다.

여기에서 그는 여의도의 10배에 달하는 면적에 3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최종현 회장은 왜 선경(SK)을 떼 버렸나 [권오용 특별기고]

▲ 최종현 SK 전 회장.


그런데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서해개발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맡겼다. 중요한 일이라고 해놓고 정작 회사이름에서는 선경(SK)을 뺐다. 

이유는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그의 평소의 품성으로 보아 짐작할 수는 있다.

무엇보다 ‘선경’이 들어가면 계열회사의 냄새가 너무 난다. 이익의 개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는 최소한 30년은 가꿔야 나무에서 경제성을 찾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어느 회사인들 30년이나 수익이 없는 곳에 돈을 쓸 수가 있을까.

경제성이 날 때까지 오랫동안 가꿔야겠다는 그의 의지가 나무 심는 회사에서 ‘선경’을 뺀 이유였을 것이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1983년 반도체를 시작했던 회사가 '한국반도체'였다. 그도 적자투성이인 반도체사업을 30년을 투자해야 성공하리라고 생각해 회사 이름에서 삼성을 뺀 것은 아닐까. 거목(巨木)은 서로 통하나보다.

우리는 흔히 TV의 장수 프로그램하면 '전국노래자랑'을 떠올린다. 1972년 첫 방송을 시작했으니 반세기를 바라본다.

그런데 1973년 2월 18일부터 시작된 '장학퀴즈'도 이에 못지 않게 장수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선경이 유일한 스폰서로 참여해 지금까지 방영되고 있다. 장학퀴즈가 첫 방송을 타던 시기는 'OB그랜드쇼'나 '일동스포츠' 같이 스폰서 기업의 이름을 프로그램에 붙일 수 있었다.

그런데 장학퀴즈에는 선경의 이름이 없다.

장학퀴즈와 관련된 일화 중 이런 게 있다.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진학하면 장학금을 주는 것이 장학퀴즈의 시상품이었는데 장학증서의 수여자는 ‘선경’이 아닌 ‘최종현’으로 돼 있었다.

선경이 장학금을 줄 형편이 못되더라도 최종현이 개인 돈이라도 주겠다는 증표였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가 장학퀴즈가 익명이 된 이유 아니었을까.

인재양성에 관심이 많았던 최종현 회장은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최고의 수재들을 100여 명 뽑아 해외 박사과정에 보내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조건없이 지원했다. 너무 파격적이다. 중앙정보부가 위장운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있었다.

여기에도 선경은 없고 아예 한국을 갖다 붙였다. 왜 그랬을까?

짐작하건데 이 재단은 나라의 것이라 생각하고 나라만을 위해 일하라는 취지가 아니었을까.

당시 해외유학의 필수 부대조건으로는 귀국하면 지원기관이나 회사에서 의무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의무복무 조항이 있었다. 그런데 의무복무 조건이 없던 것을 보면 이 짐작은 능히 가능성이 크다.
 
최종현 회장은 왜 선경(SK)을 떼 버렸나 [권오용 특별기고]

▲ 70년대 장학퀴즈의 한 장면.


이런 식으로 재단은 지난 44년간 4천 명에 가까운 인재들을 배출했다. 물론 SK에서 일하는 이는 거의 없다. 최 회장의 고집대로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다.

그의 생전 행적에는 '나라'가 곳곳에 등장한다.

'새 정부의 국가경영', '국가경쟁력 강화 위원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법' 등의 책을 썼고 심지어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21세기 1등 국가가 되는 길'의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고등교육재단은 필시 나라의 발전을 염두에 둔 그의 확고한 의지로 작명된 것이 틀림없다고 믿는다.

최종현 회장은 평생을 기업인으로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나라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해왔다. 척박한 국토를 개발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 가꿨다.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고등교육의 기회를 줬다.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많은 돈과 시간, 정성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최종현 회장은 그의 이름이나 회사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만큼 진정성과 지속성을 담보 받기 위해서였다. 말로써 이득을 취하려 하지 않고 묵묵히 기업가로서 소임을 수행했다. 

요즈음 최태원 회장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 추구’는 이러한 최종현 회장의 기업관, 국가관을 계승한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기업과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은 SK가 커나가는데 원동력이자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 될 것이다.
 
권오용은 홍보전문가들의 모임인 한국CCO클럽 부회장이다. 

고 최종현 회장 20주기를 맞아 비즈니스포스트가 특별기고를 요청했고 권오용 부회장은 고심 끝에 수락했다. 

권 부회장은 대학 졸업 뒤 1980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도쿄 주재원, 홍보본부장을 맡으면서 당시 최종현 전경련 회장을 가까이서 보필했다. 그 뒤 금호아시아나 상무, KTB네트워크 상무를 거쳐 SK그룹에서 홍보실장, 부사장, SK 사장을 지냈다.

권오준 전 포스코회장의 친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