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저희는 노회찬에게 빚을 졌다", 그래서 울고 움직인다

▲ 25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인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입구에 그를 추모하는 쪽지들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영면에 들어가는 날 그의 빈자리가 더 커 보인다.

진보정치를 지향하며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돌봐왔던 그의 삶을 두고 사회적 부채의식을 고백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27일 정의당에 따르면 정치사상이나 경제적 견해의 차이를 막론하고 노 원내대표의 삶을 기리는 추모자들이 몰리며 정의당 가입자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박창호 정의당 경북도당 위원장은 “정의당 후원이나 가입은 평소보다 수십 배 급증한 것이 사실이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영결식 조사에서 “노회찬의 정신은 그가 평생 키워온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이라고 기렸듯 사회 각계 인사들의 정의당 가입도 늘고 있다.

배우 김희애씨 남편이자 ‘한글과컴퓨터’ 설립자로 유명한 이찬진씨는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노 원내대표의 별세 소식에 엄청나게 울었다”며 “온라인으로 정의당에 가입을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꽤 오래전부터 지지하는 정당이 없었다”며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진보 경제학자인 정태인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도 페이스북을 통해 정의당 당원으로 가입한 사실을 알렸다. 그는 소득주도성장 이론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렸다.

정 소장은 정의당 가입을 결심한 이유를 두고 “개인적 울컥함만으로 입당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며 “더 이상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반복할 수 없기 때문에 정의당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놓고 고인과 대립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노 원내대표를 추모하기 위해 2016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과거 고인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두고 다른 쪽에 서 있었지만 고인을 진심으로 존경했다”고 말했다.

노 원내대표를 향한 그리움이 적극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까닭은 그의 삶이 사회적 실천으로 점철돼있기 때문이다.

정의당 전북도당 권태홍 위원장은 “비정한 정치현실 속에서 정의로운 길을 꿋꿋하게 지켜왔다”고 노 원내대표의 삶을 돌아봤다.

노 원내대표는 명문대 학벌이 보장해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버리고 용접공으로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평생 노동자들과 함께 배우고 일하고 조직하며 진보정치를 한 발자국씩 만들어갔다.

인천지역민주노동자동맹 중앙위원으로 노동운동을 주도하다가 수감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정의당이 그와 동지들의 실천으로 태어났고 그것은 그대로 대한민국 진보정치의 역사가 됐다.

‘삼성X파일’ 사건에서 최고권력자도 두려워하는 삼성그룹 앞에 당당하게 맞서던 모습도 사람들 뇌리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의원직을 포함해 모든 것을 뺏길 위험을 맞았지만 그는 “그 순간이 다시 온다 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보여준 인간적 삶도 사람들 마음에 지우기 힘들다.

노 원내대표를 추모하는 온라인 게시판들은 만나고 싶다고 무작정 지방에서 찾아온 고등학생을 정답게 맞아주고 차비 5만원을 쥐어주었다거나 국회의원회관 청소노동자들을 비롯해 ‘사회의 투명인간들’을 존중하며 다정하게 대해주었다는 일화들로 가득하다.

뜨거운 추모열기와 삶의 반성, 이에 따른 작은 실천들이 '노회찬 현상'이라고 부를 만한 새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풀이도 나온다. 

작가 유시민씨는 26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노 원내대표의 추모식에서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어서 형을 좋아했다”며 “형과 함께 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고 고백했다.

27일 국회 본청 앞에서 치러진 노 원내대표의 영결식에는 정계 인사들이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참석했다. 2천여 명의 시민들도 폭염에 개의치 않고 그와 마지막을 눈물로 함께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우리 사회가 노 원내대표가 떠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이유를 대변했다. 조문 뒤 방명록에 이 총리는 “저희는 노 원내대표께 빚을 졌다”고 적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