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하되 검증하라 (Trust but verify).’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옛 소련과 군비감축 협상을 하면서 남긴 말이다.
약속에는 이를 증명할 수 있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업비트를 통해 ‘투명하고 안전한 가상화폐 거래환경’을 약속해왔다. 하지만 업비트는 실체를 확인할 길 없이 투자자들에게 믿음을 요구하는 거래방식인 '장부 거래' 의혹에 휩싸였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사기’ 혐의와 관련해
이석우 대표도 검찰의 수사망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업비트가 실제로는 보유하고 있지 않은 가상화폐를 장부상으로만 팔아 수수료 장사를 하는 사기를 저질렀다고 의심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11일까지 이틀 동안 업비트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거래 내역이 담긴 장부와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향후
이석우 대표가 가담했는지도 조사할 방침을 세워뒀다.
업비트는 서비스 초기부터 이런 장부거래 의혹을 받아왔다. 거래를 지원하는 가상화폐 가운데 상당수가 전자지갑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가상화폐는 개인이 전자지갑에 보관한다. 이 지갑 주소를 통해서 가상화폐를 사고 팔 수 있으며 다른 거래소 지갑으로 옮기거나 원화로 출금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거래를 연결해주고 기록하는 것이 거래소의 주요 업무다.
그러나 업비트는 대부분의 가상화폐들을 전자지갑 없이 거래하도록 했다. 대신 업비트가 가상화폐를 보관해주는 방식이다. 그동안 전자지갑을 꾸준히 늘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137종의 가상화폐 가운데 46종은 지갑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렇게 전자지갑을 지원하지 않는 암호화폐는 업비트가 아닌 다른 거래소로 옮길 수 없을뿐더러 매매계약을 맺어도 실제로 거래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업비트가 ‘유령 거래’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을 들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업비트의 중개 거래방식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시선도 있다.
업비트는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인 '비트렉스'와 독점 제휴를 맺고 시스템을 연동하고 있다. 이를 통해 100여 종이 넘는 가상화폐를 지원하면서 다른 거래소들과 차별화를 꾀했지만 가상화폐 물량을 자체적으로 확보하지 않고 비트렉스 보유분과 거래망에 의존한다는 의심도 받았다.
업비트는 이런 의혹을 강하게 부인해 왔다. 전자지갑 사이 거래량이 갑자기 늘면 사이트가 마비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지갑을 지원하지 않았을 뿐 없는 가상화폐를 허위로 만들어 판 적은 없다는 것이다.
김형년 두나무 부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 거래사이트가 당장 폐쇄돼도 모든 현금과 가상화폐를 고객에게 돌려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보관 중인 가상화폐와 장부에 있는 가상화폐가 종류별 수량까지 100% 일치한다는 회계사의 공증도 받았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법조계 역시 이번 사건에서 사기죄가 성립하기 쉽지 않다고 바라본다. 어떤 방식으로든 업비트가 가상화폐를 인출해주면 손해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적 책임이나 사실 관계를 떠나 이 대표의 이름이 더이상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보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카카오 신화’의 주역 가운데 한 명으로 IT(정보기술)업계에서 차지하는 중량감이 상당하다. 지난해 말 그의 취임 역시 가상화폐의 부정적 인식을 씻기 위한 움직임으로 평가됐는데 기대가 높았던 만큼 타격도 클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이 맡긴 신뢰를 ‘검증’받기까지 이 대표의 갈 길도 더 멀고 험난해졌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