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이 2017년 10월20일 대구 수성구 대구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대구은행 비자금 조성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은 뒤 나오고 있다.<뉴시스> |
"명예는 상사에게, 영광은 부하에게, 책임은 내가 진다."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이 마음 속에 새겨온 좌우명이라고 한다.
박 회장이 권력서열 1위이니 '명예'를 선사할 상사는 더 이상 없다. 부하들에게 돌릴 '영광'은 8개월여 동안 이어진 대구은행 비자금 조성 의혹과 올해 초 불거진 채용비리 상처로 얼룩졌다.
그리고 그는 23일 대구은행장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며 최근 대구은행을 둘러싼 논란에 '책임'을 졌다.
박 회장은 2017년 8월21일 대구은행 본점에서 열린 을지연습 상황보고회에서 “자진해서 사퇴하는 일은 전혀 없을 것이며 각종 의혹이 있다면 경찰 조사도 성실히 받겠다”고 논란을 일축한 지 8개월 만에 각종 논란과 관련해 내놓은 공식적 거취 표명이다.
박 회장이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비자금 조성과 채용비리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는 인사담당자를 넘어 박 회장 등 주요 경영진을 향해 옥죄어왔다.
부산은행 채용비리 혐의로 박재경 BNK금융지주 사장과 강동주 BNK저축은행 대표이사 등 최고 경영진급이 구속된 것을 보며 박 회장이 느끼는 압박감도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은 박 회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주총회에서 박 회장의 사임 안건을 상정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등 박 회장을 향한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다만 은행장 사퇴가 대구은행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진정한 책임을 진 것인지 의문을 품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은행 금융지주사 가운데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하고 있는 인물은 박 회장이 유일했다.
KB금융지주와 BNK금융지주, JB금융지주 등이 지난해 은행의 자율경영과 권력분산 등을 이유로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분리한 것과 비교하면 늦은 일이다.
게다가 지난해 말 DGB금융지주와 대구은행의 임원인사에서 DGB금융 회장을 놓고 향후 경쟁할 만한 내부인사들은 모두 물갈이했다.
노성석 전 DGB금융지주 부사장과 임환오 전 대구은행 부행장, 성무용 전 대구은행 부행장 등 DGB금융지주 회장을 놓고 경쟁했던 인물들이 모두 물러났다.
반면 박 회장과 함께 대구은행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입건된 임원들 일부와 박 회장이 나온 대구상고 출신 인사들은 대거 승진됐다.
내부 단속을 다 마친 뒤 행장에서 슬쩍 물러나는 보여주기식 권력분산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박 회장은 “지주회장은 새 은행장이 선출된 뒤 상반기에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수장 공백으로 불거질 수 있는 경영공백을 막겠다는 뜻으로 보는 시각과 DGB금융그룹의 권력 2인자가 될 대구은행장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엇갈린다.
모든 '책임'을 지고 DGB금융그룹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는지, 아니면 조직 장악력을 잡기 위해 급한 소나기를 피하는 '꼼수'인지는 박 회장의 다음 행보에 따라 평가가 갈리게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