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불도저다. 인사에서나 경영에서나 그는 거침이 없다. 굳이 이유를 해명하거나 눈치를 살필 필요는 없다. 오너 권위가 절대적인 현대차 그룹에서 그의 말은 진리이자 법이다. 그는 꽂히면 간다. 그리고 아니다 싶을 땐 가차없이 버린다. ‘왕회장’으로 불렸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차남, 그는 제2의 ‘왕회장’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마’···정몽구식 인사


연말 정기인사 시즌을 앞두고 현대차 임원들은 노심초사다. 올 해는 특히나 현대차가 내수 시장과 해외 시장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터라 분위기는 더욱 살벌하다. 거기에다 이른바 ‘묻지마 인사’로 불리는 정몽구식 인사까지 고려하면 좋은 실적을 낸 임원까지도 안심할 수 없다. 정 회장의 눈에 들면 승진이고 눈 밖에 나면 바로 아웃이다. 정기인사 시즌인지는 중요치 않다. 기준은 회장님 마음이다.


  정몽구 '묻지마 인사' 스타일의 비밀  
▲ 정몽구 회장의 인사 스타일은 항상 화제다
회장님께 밉보여 옷을 벗게 된 대표적인 예는 2011년 8월에 미국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장 해임 사건이다. 현대차 그룹에서는 리콜문제를 해임 이유로 내세웠으나 당시 업계에서는 자동차 보닛을 열어보라는 정 회장의 지시에 긴장한 공장장이 제대로 열지 못해 쫓겨났다는 설이 무성했다.


정기인사 시즌을 한 달 앞 둔 지난달 초 단행됐던 권문식 현대차 사장(연구개발본부장) 경질 역시 뒷말이 많다. 현대차그룹 측은 ‘신상필벌’의 원칙에 기초했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업계에서는 권 사장이 정 회장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대규모 리콜이나 누수 사태와 관련된 차량들은 연구개발(R&D) 담당임원들이 부임하기 전에 이미 문제가 발생했던 모델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품질논란의 책임을 품질본부가 아닌 R&D 임원들이 진 것은 결국 회장님의 마음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정몽구식 인사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돌연 경질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느닷없이 환향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윤여철 노무총괄 부회장은 회장님의 부름을 받고 현대차 노사문제의 ‘소방수’로 돌아왔다. 지난해 1월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원 분신 사망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 1년 3개월만의 복귀다. 앞서 2011년 4월에는 세대교체 차원에서 고문으로 밀려났던 김원갑 현대하이스코 부회장이 4개월 만에 다시 부회장직에 복귀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최근 5년간 정몽구 회장은 30여차례나 현대차 임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했다. 현대차 임원들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지난 2010년에는 미국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가 ‘현대차 인사 스타일은 마치 왕의 군대조직과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정몽구식 인사는 임원들의 커다란 저항없이 계속되고 있다. 임원들에게 언제든지 내쳐질 수 있지만, 반대로 언제든지 화려하게 돌아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기 때문이다. 옷을 벗는 임원조차도 마음 속에는 ‘나는 돌아갈 수 있다’, ‘나는 아직 현대사람이다’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정 회장식 인사가 힘을 발휘하는 이유다.


◆ ‘믿으면 가는거야’···정몽구식 경영


2000년 9월 25일 현대차그룹이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이후 처음으로 출범식 겸 임직원 통합조회가 열렸다. 우려와 불안의 분위기가 감돈 이 자리에서 정몽구 회장은 오히려 담대한 포부를 밝혔다. 그는 “2005년에는 세계 5위의 품질을 확보하고, 2010년에는 5대 자동차업체로 거듭나도록 노력하자”고 외쳤다. 13년이 흐른 지금 현대자동차는 미국 제너럴모터스, 독일 폴크스바겐, 일본 도요타, 르노닛산에 이어 세계 5대 자동차 제조회사로 꼽힌다.


이런 성과의 바탕에는 정몽구 회장의 뚝심이 자리 잡고 있다. 1998년 말 현대자동차 회장 자리에 오른 정몽구 회장이 처음 한 일은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몸집을 키운 것이었다. 1999년 2월 현대차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73.2%를 기록하며 기아차 인수 이후 처음으로 70%대에 들어섰다. 내수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확보한 것이다. 여기에 대우차 부도 등의 반사이익으로 2000년대 초반 현대차의 내수 시장 점유율은 80%대로 올라갔고 올해 3월에는 83.2%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같은 해 정 회장은 미국 시장에서 ‘10년·10만 마일 보증’이란 파격적인 서비스를 내놨다. 당시 현대차 내부에서는 보증 비용 부담 위험으로 여차하면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며 해당 서비스 도입을 거세게 반대했다. 언론에서도 정 회장이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자신의 결정을 밀어붙였다. 이에 더해 남양연구소를 통해 끊임없이 ‘품질 향상’을 주문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1998년 1.1%에 불과하던 미국 시장 점유율은 2001년 1·4분기에 3.3%로 급성장했으며 2011년에는 5.1%로 늘었다.


그런 정 회장에게 올 해는 최대의 위기다. 올해 7월 이후 내수 시장 점유율이 70%대로 떨어졌고, 미국 시장에서도 일본차에 밀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정몽구 회장은 그다운 대응책을 보였다. 그는 신형 제네시스에 올인했다. 제네시스는 2013년판 정몽구 회장 ‘뚝심’의 완결체다. 연구 기간과 비용 투자는 물론이고 車강판, 부품, 발표회까지 하나하나 직접 챙기며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신형 제네시스 발표회에서 그는 제네시스를 통해 내수 시장 점유율 회복은 물론 해외 시장에서의 도약을 이루겠다는 욕심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이제 정 회장의 뚝심 경영에 대한 재평가는 제네시스의 판매실적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