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와 LG화학이 올해 안에 중국에서 전기차배터리 모범규준을 통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중국정부는 전기차배터리 모범규준을 새롭게 발표하며 통과기준을 크게 강화했는데 삼성SDI와 LG화학은 기준에 크게 못 미쳐 전기차배터리의 중국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삼성SDI LG화학, 중국 전기차배터리 진출 완전 막혔나  
▲ 조남성 삼성SDI 사장(왼쪽)과 이웅범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와 LG화학이 중국 전기차배터리사업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중국 공업신식화부는 최근 이전보다 한층 강화된 기준을 적용한 ‘전기차 배터리 모범규준 수정안’의 초안을 발표했다. 리튬이온배터리 생산능력을 연간 8GWh(기가와트아워) 이상으로 갖추고 2년 동안 생산업무와 상품에서 사고가 없을 것 등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중국 공업신식화부는 배터리업체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이르면 내년 1월 안에 수정안을 확정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전기차 배터리 모범규준을 발표하고 배터리업체들을 심사해왔다. 강제성은 없지만 모범규준을 통과한 업체의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만 중국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삼성SDI와 LG화학 등 배터리업체들은 모범규준 인증을 받기위해 힘써왔다.

삼성SDI와 LG화학은 올 6월 중국의 4차인증 심사에 탈락한 뒤 올해 안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 5차인증 심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중국이 5차인증 일정 대신 새로운 모범규준을 발표하면서 올해 안 통과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내년에도 중국의 모범규준을 통과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삼성SDI와 LG화학은 2014년 각각 중국 시안과 난징에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짓기 시작해 지난해 가을 공사를 마무리하고 제품생산에 돌입했다. 2년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년 하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리튬이온배터리 생산기준은 더욱 엄격하다. 중국은 새로운 모범규준에서 리튬이온배터리 생산능력 기준을 연간 8GWh로 정해 기존 0.2GWh보다 40배 올렸다.

삼성SDI와 LG화학은 현재 중국에서 연간 2~3GWh정도의 생산능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모범규준을 맞추기 위해 생산능력을 지금보다 3배가량 늘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김지산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새로운 모범규준의 핵심이슈는 리튬이온전지 생산능력을 8GWh로 상향한 것”이라며 “현재 중국의 130여개 배터리 업체 가운데 이 조건을 충족하는 업체는 비야디(BYD)뿐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분석했다.

현실적으로 공청회 과정을 거치면서 생산능력 등 일부 조건이 완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중국정부가 기준장벽을 크게 높여 한국업체 진입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은 국내업체들이 짧은 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기준을 제시한 뒤 그동안 자국업체를 육성해 전기차 배터리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드배치 결정 등 한중 사이의 정치적 이해관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SDI와 LG화학이 성능 좋은 배터리를 생산한다 해도 모범규준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보조금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커 그만큼 가격경쟁력을 잃게 된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전기차시장으로 떠오른 만큼 전기차 배터리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삼성SDI와 LG화학이 반드시 잡아야하는 시장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특히 삼성SDI는 LG화학보다 배터리사업의 비중이 높아 중국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경우 더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LG화학은 기초소재(석유화학)사업을 주력을 삼고 있어 전체매출에서 배터리사업비중은 10%중후반대에 그친다.

하지만 삼성SDI는 배터리사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어 배터리사업을 하는 에너지솔루션사업부의 매출비중이 70%를 육박한다. 올해 상반기 화학사업을 롯데케미컬에 매각하면서 배터리사업비중이 더 높아졌다.

갤럭시노트7 발화사태로 소형배터리사업에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점도 전기차 배터리사업의 중요도를 더욱 높인다.

로이터는 23일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단종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삼성SDI는 갤럭시노트7로 배터리사업에서 평판을 크게 잃어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발화 초반 삼성SDI의 배터리를 원인으로 지목해 삼성SDI가 소형배터리시장에서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아직 갤럭시노트7의 발화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혀내지 못했다.

중대형배터리사업은 그동안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에너지솔루션사업부 매출에서 중대형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9%에서 올해 27%까지 늘어났다.

삼성SDI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발표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재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는 단계”라며 “의견수렴 과정에서 모범규준이 변경될 가능성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중국의 상황변화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