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내몽골 자치구에 위치한 한 농업회사 분류 시설에서 노동자가 감자들을 검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례적으로 높았던 기온과 불안정한 강수량 등에 감자 뿐만 아니라 쌀과 밀 등 주요 작물들도 악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각국 학계와 농업계에서는 변화한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작물 개량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9일 BBC를 비롯한 외신 보도와 주요국 정부 발표 등을 종합하면 올해 글로벌 감자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미국 농무부(USDA) 공식 발표에 따르면 올해 미국 감자 생산량은 4억1800만 헌드레이드웨이트(약 2900만 톤)로 지난해 4억4천만 헌드레드웨이트(약 2200만 톤)와 비교해 약 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유럽 전체 감자 생산량 역시 전년 대비 9%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런 감자 생산량 감소 원인으로 기후변화가 꼽힌다.
감자는 생육 적정 온도가 약 20도로 비교적 한랭하고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생하는 식물이다.
이 때문에 주요 감자 농지는 미국 북부, 캐나다, 영국, 독일, 폴란드 등에 집중돼 있는데 이들 지역이 올해 이상고온과 잦은 강우를 겪으면서 수확량이 줄어든 것이다.
특히 기온상승은 감자 재배에 치명적이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다이렉트 산하 저널 '기후 스마트 농법'에 중국 허베이 대학과 국제감자연구소(CIP)가 등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온이 약 3~5도까지 크게 오르는 상황이 오면 감자 생산은 최대 절반까지도 줄어들 수 있다.
네덜란드의 한 농부는 BBC와 인터뷰에서 “감자는 이제 재배 리스크가 높은 작물이 됐다”며 “이제 농업계는 기후변화 속도와 적응 시간을 놓고 경주를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감자는 인류가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가장 많이 먹는 작물이다.
감자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주식으로 삼는 쌀과 밀도 최근 기온과 강수량 변화에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표적으로 일본은 올해 8월 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품귀 현상이 발생했다. 로이터와 르몽드 등 주요 외신들은 이때 올해 일본이 겪은 극심한 고온과 집중호우 등 잦은 이상기후가 일본 쌀 수확량 감소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세계경제포럼(WEF)도 보고서를 통해 향후 수십 년 내로 세계가 쌀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세계 인구 증가로 쌀 수요는 2031년까지 매년 1.1%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 반면 기후변화로 물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인도와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의 쌀 생산량은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유럽 최대 밀 생산국 프랑스는 올해 전체 수확량이 지난해와 비교해 2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프랑스 농무부는 강수량 변화와 이상고온 등 기후 여건 변화를 주요 원인으로 짚었다.
시장분석업체 'BMI 리서치'는 여타 유럽 국가들도 상황이 비슷하다며 올해 유럽연합 전체 밀 생산량을 지난해보다 7.2% 감소한 1억2390만 톤으로 전망했다.
▲ 일본 도쿄에 있는 한 식품매장에 쌓여 있는 쌀 포대. <연합뉴스>
일본 사이타마현에서는 일부 농부들이 고온에 강한 벼 품종인 '에미호코로'를 실험하고 있고 영국에서는 존 이네스 연구센터가 중국과 협력해 과거 수집한 종자들을 배합해 기후에 강한 밀 품종을 연구하고 있다.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감자 농가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만 봐도 지난 6월 한국 맥도날드는 공급량 부족을 이유로 감자튀김 판매를 잠시 중단했다. 이어서 7월에는 써브웨이가 웨지감자와 감자칩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국제 프렌차이즈 업계로 주로 미국에서 냉동 감자를 수입해와 판매하는 업체들인데 기후변화로 감자 공급량이 줄면서 국내로 제품을 수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이먼 헤크 국제감자연구소 사무총장은 중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감자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향상시키는 것에 있어 혁신이 필요하다"며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생명공학에서 얻은 발전을 감자 재배에 반영하기 위한 부문간 협력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국제감자연구소 시설에서는 이상기후에 강함 감자 2종을 개발해 개량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연구시설이 위치한 허베이성 원래 기온보다 3도 더 높은 상황이 조성된 실험실에서 재배한 결과 해당 감자 종들은 기존 감자들보다 고온에 더 강한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진이 기온을 3도 더 높은 상황을 가정한 이유는 유엔환경계획(UNEP) 발표를 참고했다. UNEP에 따르면 글로벌 기후 대응이 현 수준에 머무른다면 2050년에는 세계 기온이 3.1도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 한 맥도날드 매장 간판. <연합뉴스>
2023년 기준 중국은 연간 감자 생산량 약 1억 톤으로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2위 인도와 비교해도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생산량을 갖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아직 공식적인 통계는 내놓지 않았으나 로이터가 중국 농업계를 취재한 바에 따르면 올해 이상기후 여건으로 감자 작황 악화가 전망됐다.
중국 감자 농가의 한 관계자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더 새롭고 위협적인 이상기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에 대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요 감자 수출국인 캐나다에서는 지난해 8월 맥길대학이 감자 '전체 속(super pangenome)'의 유전적 특성을 정리한 자료를 발표하며 종자 개량을 본격화했다.
당시 마르티나 스트롬빅 맥길대 교수는 “우리 전체 속 자료는 감자의 유전적 다양성과 어떤 종류의 특성이 현대 작물에 도입돼 감자를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지를 알려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캐나다 학계는 해당 자료를 미국, 페루 등 주요 감자 생산국들과 공유해 효과적인 감자 종자 개선에 나설 계획을 세웠다.
스트롬빅 교수는 “기후변화와 극한 날씨에 적응할 수 있는 감자 종을 개발해 영양 품질을 향상하고 식량 안보를 개선해야 한다”며 “학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고 폭우, 서리, 가뭄 등 극한 날씨에 더 잘 견딜 수 있는 종자 개발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