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이 3월21일 서울 중구 삼성전자 장충사옥에서 진행한 51차 정기주주총회에 참석해 안건 심의와 의결을 진행했다. <호텔신라>
호텔신라는 면세부문에서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내는데 코로나19 이후 악화한 영업환경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사장이 과거 승부수를 띄워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비즈니스호텔 브랜드 신라스테이가 그나마 호텔신라의 실적 방어에 기여하고 있지만 전체 실적을 회복하려면 면세부문의 반등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4일 증권가에서는 앞다퉈 호텔신라의 투자의견 및 목표주가를 하향조정했다.
이날 호텔신라의 목표주가를 제시한 9곳의 증권사 모두 목표주가를 낮춰잡았다. 9곳 가운데 4곳은 투자의견마저 기존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면세점 업황 악화가 이어지며 3분기 시장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을 낸 영향이다. 면세부문과 함께 호텔신라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호텔부문도 수익성이 뒷걸음질했다.
호텔신라는 3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1조162억 원, 영업손실 170억 원을 냈다. 지난해 3분기보다 매출은 0.4% 늘었으나 영업손익은 적자로 전환됐다.
면세유통(TR)부문의 수익성 악화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호텔신라는 3분기 면세유통부문에서 매출 8448억 원, 영업손실 387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보다 매출은 0.1% 줄었으며 영업손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업계에서는 면세점 업계 부진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재 면세점 업계의 이용객 수는 회복세에 접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9월 국내 면세점 이용객 수는 251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19.0% 증가했다. 이 가운데 내국인은 166만 명, 외국인은 85만 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9월 국내 면세점 매출은 1조1940억 원으로 8월보다 10.0% 감소했다. 내국인 매출은 10.4% 증가한 2726억 원을 기록했으나 외국인 매출은 9215억 원으로 14.7% 줄었다.
외국인 관광객의 1인당 구매액이 크게 줄어든 영향으로 분석된다. 실제 올해 9월 외국인 관광객의 객단가는 108만 원이다. 지난해 9월보다 60만 원가량 줄었다.
서정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국내외 월별 여행객수는 회복세를 지속하고 있으나 면세 매출은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 보따리상(따이궁)의 매입이 이전 수준만큼 회복되지 못하고 있어 이에 따른 후유증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연구원은 “달라진 영업환경에 적합한 판매 전략을 재정비하고 실적으로 이를 증명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제나 DB금융투자 연구원도 “면세 산업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며 “중국 소비 경기 부진, 다이공 수요 회복 부진, 고가 화장품 소비 둔화 트렌드가 장기화되며 실적 반등을 이끌만한 소재가 부재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사장이 유일하게 기대해볼만한 사업은 ‘신라스테이’뿐일 것으로 추정된다.
3분기 호텔신라의 사업 가운데 외형성장을 이룬 부문은 신라스테이와 레저부문 등 두 곳이다. 호텔신라의 호텔·레저 부문에서 신라스테이와 레저부문 매출은 지난해보다 각각 9.6%, 3.3% 증가했다.
▲ 제주시에 위치한 신라스테이 플러스 이호테우점. <호텔신라>
부진한 상황에서도 신라스테이는 10%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하며 호텔신라 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호텔신라에 따르면 신라스테이는 지난해 평균 투숙률 83.3%를 달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신라호텔과 제주신라호텔의 평균 투숙률은 각각 69.8%. 73.5%를 기록했다. 신라스테이의 호텔사업부문에서 신라스테이가 적지 않게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라스테이는 2014년 호텔신라 내 사업부에서 분사해 현재는 ‘신라에이치엠’이라는 독립법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호텔신라가 신라에이치엠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신라스테이는 이 사장의 승부사적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사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호텔신라의 주요 수익원인 면세부문이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신라스테이에 꾸준히 투자해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사장은 팬데믹 기간에도 2020년 신라스테이 삼성점, 2021년 신라스테이 서부산점, 2022년 신라스테이 여수점 등을 잇따라 개장하며 공격적 투자를 진행했다. 그 결과 2020년을 제외하고는 지속적 외형확장을 이루며 업황 부진을 극복했다.
신라에이치엠은 2015년 매출 321억 원을 기록한 이후 2016년 605억 원, 2018년 941억 원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2019년에는 출범 5년 만에 매출 1천억 원대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20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매출이 835억 원으로 소폭 감소했으나 2021년 965억 원으로 회복에 성공했다. 이후 2022년 1302억 원, 2023년 1491억 원으로 지속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사장은 실제로 빠른 속도로 신라스테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올해 5월 신라스테이 제주점이 문을 연 데 이어 11월에는 전주점 개장이 예정된 상태다.
이 사장은 2013년 경기 동탄점을 시작으로 역삼, 서대문, 마포, 광화문, 제주, 울산 등 16개의 신라스테이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산술적으로 보면 매년 1개 이상의 점포를 꾸준히 개장했다는 얘기다. 국내 주요 호텔법인 가운데 신라스테이처럼 공격적으로 지점을 늘리는 곳은 사실상 없다.
해외로도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 사장은 올해 6월 중국 장쑤성 지역에서 신라스테이를 위탁 경영하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미국 산호세 지역에도 신라스테이 개관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호세 지역의 경우 2021년 문을 열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장기화로 일정이 미뤄진 상태다.
다만 신라스테이 사업 확장만으로는 호텔신라의 근본적 체질개선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호텔신라가 이전 수준의 실적을 회복하려면 면세유통부문의 정상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호텔신라의 대부분의 매출을 차지해온 사업은 면세유통부문이며 호텔레저부문에서도 신라스테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 수준이다. 올해 3분기 전체 매출에서 신라스테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5.6%에 불과하다.
서현정 하나증권 연구원은 “호텔신라의 실적개선을 위해서는 면세 수요 회복이 가장 관건”이라며 “면세점 산업의 중장기 성장여력에 대한 신뢰가 회복돼야 호텔신라의 실적 추정치와 기업가치의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