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관세 인상에 K배터리 반사이익? '탈중국' 기조에도 유럽 장악 만만찮다

▲ 유럽연합(EU)의 전기차 관세인상을 비롯한 탈중국 정책기조에 따라 국내 배터리3사의 유럽배터리 시장 입지가 강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의 전기차 관세인상을 비롯한 탈중국 정책기조에 따라 국내 배터리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의 유럽시장 입지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전기차 가치사슬(밸류체인)에서 중국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미국과 달리 유럽은 중국 배터리기업들이 공략할 틈이 비교적 넓은 것으로 분석된다. 

유럽과 중국 사이 통상 관계의 복잡성까지 고려하면 강력한 대중국 제재가 지속되기 어려워 K배터리가 유럽시장을 탈환하기가 쉽지 않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14일 배터리업계와 해외 언론의 분석을 종합하면 유럽연합의 전기차 관세인상 조치로 유럽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 배터리업체들도 유럽시장에서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의 잠정 결론을 토대로 17.4%~38.1%포인트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한다는 계획을 중국 당국과 대상 업체들에 통보했다. 

기존 중국산 전기차에 적용된 관세율은 10%로 추가 관세가 부과되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는 27.4%~48.1%에 이르게 된다. 

업체별로 BYD와 지리는 각각 17.4%, 20%의 추가 관세를 적용받는다. 상하이자동차를 비롯해 유럽연합의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던 업체들에는 38.1%의 추가 관세가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유럽연합은 이번 관세 인상안을 7월4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중국 당국이나 이해 당사자들과 논의 과정에서 관세율이 조정될 여지는 남아 있다.

잠정 결론에 따라 책정한 관세율이 최종적으로 확정되면 중국산 전기차는 가격 경쟁력을 상당 부분 잃어버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기존에 3만 유로(4400만 원) 수준의 보급형 전기차에 17.1% 추가 관세가 부과된다고 가정하면 가격이 3만5250유로(5220만 원)로 오른다. 38.1%의 최고 관세율이 적용되면 가격이 4만1450유로(6100만 원)까지 껑충 뛴다.  

이 때문에 유럽시장에서 비중국산 전기차의 수요가 늘게 되면 비중국산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도 긍정적 효과가 미칠 수 있다. 

현재 글로벌 3대 전기차 시장(유럽, 중국, 미국) 가운데 유럽은 한국과 중국 배터리업체들이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이다. 

중국은 ‘홈어드벤티지’가 매우 강해 한국을 비롯해 비중국 업체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시장이다. 

미국에서는 ‘반중국 정서’가 강해 중국업체들이 좀처럼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쉽지 않다.  

이와 달리 유럽에서는 한국과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팽팽하게 점유율 경쟁을 하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 중국 업체들은 저가 경쟁력을 앞세워 유럽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기차·배터리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1~4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에서 중국 CATL이 시장 점유율 27.4%(사용량 27.7GWh)로 1위를 차지했다. 

2023년 같은 기간 가장 많은 사용량을 보였던 LG에너지솔루션은 점유율 25.7%(사용량 26.0GWh)에 머물며 2위로 밀려났다. 
 
EU 관세 인상에 K배터리 반사이익? '탈중국' 기조에도 유럽 장악 만만찮다

▲ 중국 CATL 배터리 제조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관련 작업을 하고 있다. < CATL >

미국에서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규제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CATL이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확대한 것으로 분석된다. 

2020년 10%대에 머물던 중국 업체들의 유럽 점유율은 2023년 40%를 웃돌았다. 같은 기간 국내업체들의 점유율은 70%대에서 57%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산 전기차 관세 인상은 국내 업체들로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유럽의 중국 전기차 관세 인상이 현지 배터리시장에 극적 변화를 주긴 어렵다는 분석이 만만치 않다. 우선 현재 제시된 유럽연합의 관세 인상안이 확정안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축소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유럽 내에서도 국가별로 관세 인상에 대한 의견 차이가 큰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독일과 같이 중국과 무역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는 중국 측의 경제보복을 우려하고 있다. 

폴커 비싱 독일 교통부 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X(옛 트위터)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징벌적 관세가 독일 기업과 제품에 타격을 입혔다”고 적었다. 

독일 자동차업계도 관세 인상안에 부정적 태도를 보인다. 독일 자동차업체들은 중국 시장의 비중이 큰 만큼 유럽의 중국산 전기차 관세 인상이 중국의 보복관세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어서다.

힐데가르트 뮐러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 회장은 중국 신화통신과 인터뷰에서 “관세 인상안의 잠재적 피해는 유럽, 특히 독일 자동차산업에서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해당사자별로 관세 인상에 따른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릴 수 있는 셈이다. 실제 중국이 보복 관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만큼 유럽 내에서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국 측과 협의해 관세율을 조정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세 인상안이 그대로 확정되더라도 중국 전기차의 경쟁력이 유지될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중국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이 꺾이려면 관세율이 50% 이상 돼야 유의미한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BYD를 비롯한 전기차 모델 상당수는 추가 관세를 적용하더라도 여전히 동급 경쟁 모델보다 저렴한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전기차업체들이 유럽 현지 생산체제를 수립하거나 현지 업체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여지도 있다. BYD와 니오 등은 이미 유럽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생산거점을 구축했다.

더구나 유럽의 중국 배터리에 대한 인식은 중국 전기차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관세 인상안이 확정되더라도 중국 배터리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 

유럽연합은 탄소중립을 위해 전기차 전환 속도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전기차 가격이 낮아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값싼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유럽의 전기차 전환을 늦출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인상하게 되면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값싼 중국 배터리 도입을 늘려 전기차 원가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으로 꼽힌다. 

에너지 분석업체 우드맥킨지에 “유럽 자체적으로 전기차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에는 저비용 배터리 제조가 핵심”이라며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면 단기적으로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고 바라봤다.

실제 중국 배터리업체 CATL은 독일에 연산 14GWh 규모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연산 100GWh 헝가리 공장을 신설해 2025년부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다수 중국 업체들이 유럽 주요국에 배터리 생산기지 구축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업체들이 유럽 내 전기차 가치사슬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는 만큼 향후 유럽 내 배터리 시장 점유율 확대는 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중국 업체들은 기술력을 강화해 성능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36kr 등 중국언론에 따르면 BYD는 하반기에 충전속도 6C의 리튬인산철(LFP) 블레이드 배터리 2.0을 출시할 예정이다. 여기서 C는 충전 배율을 뜻하는데 6C는 1시간에 6번 완전 충전이 가능한 수준을 말한다. 10분 만에 배터리를 완전 충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BYD가 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약점으로 지목된 충전속도 문제를 기술력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셈이다. CATL도 하반기에 6C 고속 충전 기능을 갖춘 모델 ‘기린배터리 2.0’을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