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뺏는 것을 방지하는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추진된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훔치기'는 해묵은 이슈인데 여소야대 국회에서 대안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 해묵은 문제 ‘대기업의 기술 뺏기’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게임 게발사인 모비아트의 ‘쉐이크팝코’와 네이버 라인의 ‘디즈니 츠무츠무’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모비아트의 서비스 제휴를 거절한 네이버 라인이 아이디어만 베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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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
이병선 카카오 부사장은 이날 카카오가 주차앱 아이파킹, 간편 송금앱 토스, 택시앱 리모택시 등 스타트업 O2O앱들의 기술을 배꼈다는 추궁을 받았다.
유동수 더민주 의원도 26일 산자위 국감에서 “비제이씨가 제공한 기술 자료가 현대차 논문과 특허에 사용됐다”며 현대차가 화학약품 제조회사 비제이씨의 기술을 탈취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유 의원은 현대차가 사업 협력을 이유로 비제이씨로부터 기술자료를 받아내 내부적으로 활용했을 뿐 아니라 해당 기술로 산학협력 특허를 냈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을 뺏는 ‘갑횡포’가 문제된 것은 한두해의 일이 아니다. 주로 계약을 미끼로 기술을 제공받은 뒤 중소기업의 기술을 이용해 상품을 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병관 더민주 의원은 “대기업에 기술을 뺏긴 중소기업들의 피해금액은 1조1천억 원을 넘는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이 28일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중소기업 기술분쟁 조정중재위원회 조정 신청 처리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기술분쟁에 따른 조정신청은 모두 35건에 이르렀다.
중기청이 매년 실시하고 있는 중소기업 기술탈취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중소기업 8219곳 가운데 7.8%인 644곳이 기술을 빼앗겼다고 응답했다. 피해금액은 1조1천억 원, 기술탈취 1건당 피해액수도 16억8천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LG하우시스는 2013년 하청회사로부터 정당한 이유없이 기술자료를 받아냈다가 적발됐지만 해당 기술을 유용했다는 증거가 없어 시정 명령만 받았다. 보안솔루션업체 비이소프트도 우리은행이 기술을 도용했다며 2년 째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LG화학 전지사업부는 배터리 라벨을 제조하는 하청회사에 기술 자료를 요구해 받아낸 뒤 하청회사와 거래를 끊고 중국법인에서 직접 배터리 라벨을 만들어냈다. 이 하청업체는 결국 라벨사업을 접게 됐는데 LG화학은 기술을 훔쳐낸 대가로 지난해에 고작 16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는 데 그쳤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SK텔레콤, SK커뮤니케이션즈, KT, 롯데피에스넷, 이베이코리아, 인터파크, LG화학, LG하우시스, 한전KDN 등에 대해 중소기업 기술탈취 및 기술유용으로 14건이 신고됐지만 과징금 및 시정조치가 이뤄진 것은 LG화학을 포함해 단 2건에 불과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하도급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크다"고 말했다.
◆ 20대 국회, 방지책 마련할까
유동수 더민주 의원은 7월 ‘중소기업 기술탈취 방지법’을 발의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인데 행정청의 조사 대상이 되는 부정경쟁행위 범위를 규정된 유형 전체로 확대하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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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
유 의원은 “현행법이 규정하고 있는 10가지 유형의 부정경쟁행위 가운데 정작 중소기업의 피해 유형이 공무원의 조사범위에서 빠져 대기업의 피해만 보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누락된 항목은 각각 ‘유사상품 모방’과 ‘타인의 성과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제윤경 더민주 의원도 기술편취 금지와 징벌적손해배상제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하도급법 개정안 2건을 1일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기술편취행위에 대한 규제를 확대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기술자료를 제공받은 경우 비밀유지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유용할 경우 손해액의 3배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지도록 했다.
징벌적손해배상의 범위도 확대했다. 물품 등의 구매강제 행위, 부당결제 청구, 보복조치 등도 적용대상에 포함했다. 현행 하도급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은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기술탈취 행위 등에 한해서 적용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중소기업들로부터 대기업 부당행위의 증명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대기업의 갑횡포를 규제하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로 입증이 어렵다는 점을 들어왔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입증책임을 원사업자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탈취 피해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기관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네이버 라인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장태관 모비아트 대표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센터, 중소기업청, 국회 등 여러 기관의 도움을 받았지만 기존 업무가 있다보니 역부족”이라며 “기술탈취 문제가 발생했을 때 끝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기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병관 의원도 “어렵게 개발된 기술이 대기업에 의해 쉽게 유용된다면 경제생태계의 양극화가 고착화될 것”이라며 “중기청 및 특허청에서 기술탈취 사례에 대해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피해구제 및 조정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